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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18 - 창조하시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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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하시는 하느님

1) 세상을 초월하시는 하느님

성경과 사도신경은 하느님과 세상의 관계를 ‘창조’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창조의 하느님”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창조의 하느님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종교들도 많습니다.
유교, 불교, 도교, 힌두교와 같은 동양 종교들은 창조주 하느님이나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대해 언급하지 않습니다.
동양 종교들은 하느님과 세상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동양 종교들에 있어서는 자연이 곧 하느님이고, 하느님이 자연입니다.
자연 안에, 사람들 안에 신성(神性)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느님과 세상 사이에 분명한 구별이 있다고 믿습니다.
하느님은 창조주이시고, 세상은 그분이 만든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예술 작품이 예술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술 작품이 곧 예술가는 아닙니다.
엄연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세상과 하느님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양 종교들은 인간이 자신의 내면을 깊이 성찰함으로써 하느님께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곧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교에서는
인간이 자기 명상을 통해서 하느님께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인간이 아무리 하느님을 닮았다고 해도 인간은 어디까지나 피조물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느님을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지만, 그분을 속속들이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하느님은 세상과 인간을 완전히 초월하시는 분이시고, 그러기에 그분은 신비입니다.

이처럼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무한하신 분”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하느님은 신비이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무지를 고백하고 겸손되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업적보다 무한히 위대하시다.
“주님께서는 하늘 위 높다랗게 엄위를 떨치셨나이다”(시편 8,2),
“그 위대함은 측량할 길 없나이다”(시편 144,3) (가톨릭교회교리서 300항).

2) 시작이요 목적이신 하느님

자연이 곧 하느님이라고 생각하는 동양 종교들은 순환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질서와 세상살이는 항상 반복되는 것입니다.
해가 뜨고 지고, 꽃이 피고 지고, 계절이 바뀌고….
아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순환론적인 세계관에서는 출발점도 없고, 목표도 없으며,
그러기에 발전이나 퇴보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항상 돌고 도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교는 목적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처음”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습니다.
세상은 시작이 있습니다. 또한 세상은 목표점도 있습니다.
창조하신 하느님의 의도대로 발전하는 것이 창조된
세상의 목표가 됩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 목표를 향해서 잘 나아갈 때도 있지만,
때로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합니다(타락).

세상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무신론자들은 세상이 저절로 생겨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면 나도 이 세상에 우연히 생겨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 잘 먹고 잘 입고 살다가 죽으면 그만입니다. 의미도 목적도 없습니다.
이런 삶을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창조의 하느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인간이 하느님께로부터 기원했고, 하느님이 정하신 목표를 향해서 가야 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의미가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고,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행복입니다.

창조에 관한 교리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이 교리는 인간과 그리스도인 삶의 근본 그 자체와 관련된다.
왜냐하면 창조 교리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의 기원은 무엇인가”,
“우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모든 존재하는 것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모든 시대에 걸친
인간들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대답을 분명하게 제시하기 때문이다.
기원과 목적에 대한 두 질문은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둘은 우리의 삶과 행동 방식의 의미와 방향을 결정짓는다(가톨릭교회교리서 282항).

3) 창조는 희망의 노래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창세 1,1) 성경을 펼치자마자 마주치게 되는
이 구절은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세상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임을 성경은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우리 신앙인은 이 말씀을 믿습니다.
이 믿음에 근거하여 우리는 모든 종류의 무신론,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사회의 엄청난 부조리 앞에서, 초라한 내 모습을 바라보며,
고집스런 내 이웃들을 생각할 때 절망을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났다고 체념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이 구절은 강렬한 빛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태초에 어둠과 혼돈 속에 하느님의 영이 감돌고 계셨다.”(창세 1,2)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울려 퍼집니다.
“빛이 생겨라!” 하느님의 창조는 어둠 속에 비치는 불빛이고, 절망 속에 울려 퍼지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세상과 나를 하느님께서 무(無)로부터 창조하셨습니다.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에 절망하는가? 하느님만 함께 하신다면 우리 사회, 우리 이웃,
나 자신은 새로운 창조를 맛보게 될 것인데….

더 나아가 창조 신앙은 부활 신앙으로 승화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전능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음을 믿게 된다면,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새로운 창조, 즉 부활의 삶을 희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에서 창조하실 수 있으시므로, 성령을 통해서 죄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에게 영혼 생명을 주실 수도 있으며,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로마 4,17)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에게 부활을 통해서 육신 생명을 주실 수도 있다.
또,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어둠에서 빛이 생기게 하실 수 있으므로 당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신앙의 빛을 주실 수 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98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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