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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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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30- 묻히심과 저승에 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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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히심과 저승에 가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셨다!” 이것이 교회가 세상에 전파해야 할 기쁜 소식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사도신경은 예수님의 죽음과 그분의 부활 사이에 “묻히셨음”과 “저승에 가셨음”을 추가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만큼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오늘은 이 대목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의 묻히심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고만 말해도 되는데, 그분이 묻히셨다고 하는 것은 불필요한 군더더기 말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유가 있습니다. 초대 교회 시절에 그리스도교를 공격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진짜로 죽으셨다는 사실을 의심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다른 사람(예를 들어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키레네 사람 시몬)과 바꿔치기 했고,
그래서 예수님은 죽음을 모면하셨다”거나(사기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으신 것이 아니어서
곧 소생하셨다”(가사설)는 식의 의혹이 제기되었던 것입니다.
사도신경은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묻히셨다”고 말함으로써
“예수님께서 참으로 죽으셨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계획 안에서 당신 아들이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도록”(1코린 15,3)
마련하셨을 뿐 아니라, ‘죽음을 맛보도록’, 곧 죽음의 상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신 순간과
부활하신 순간 사이에 그의 영혼과 육신이 분리된 상태를 경험하도록 하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의 상태는 그분께서 묻히시고 저승에 가신 신비이다.
… 이것이 성토요일의 신비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624항).

2) 저승에 가시어

이 구절을 설명하기에 앞서서 “저승” 개념부터 명확히 해야 합니다.
사도신경에서 말하는 저승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지옥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지옥은 악인들이 죽어서 가는 곳인데, 저승은 악인이든 의인이든 상관없이 죽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 “망자들의 나라”입니다. 왜 악인과 의인이 구별되지 않을까요?
천국문이 닫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올바른 삶을 산 의인들이라고 할 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하느님께로 가지 못하고 저승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승은 희망이 없는 상태입니다.
“죽으면 아무도 당신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저승에서 누가 당신을 찬송할 수 있으리이까?”(시편 6,6)

예수님께서는 저승에 가심으로써 당신의 육화 사건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자 하느님이시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을 낮추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으시고 당신을 더욱 낮추셔서 죽은 이들의 땅에까지 내려가셨고,
죽은 이들에게까지 구원을 가져다 주신 것입니다.

“죽은 이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졌습니다”(1베드 4,6).
예수님께서 저승에 가심은 구원의 복음 선포의 충만한 완성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634항).

예수님께서 저승에 가셨다는 것이 의인이건 악인이건 구별없이 죽은 이들
모두를 구원하시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승에 가 구해 내신 것은 아브라함의 품에서 자신들의 해방자를 기다리던
거룩한 영혼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지옥에 떨어진 이들을 구하거나 저주받은 지옥을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보다 먼저 간 의인들을 해방시키고자 저승에 가신 것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633항).


3) 고성소(古聖所, 림보)

예전에(1997년까지) 사용하던 사도신경에서는 “저승에 가시어
” 대신에 “고성소에 내리시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신자들이 “고성소가 무엇인지”,
 “왜 번역을 바꾸었는지” 궁금해 하시므로 참고적인 설명을 하겠습니다.
고성소는 림보(limbo)를 번역한 말입니다. 림보는 두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구약 시대의 의인들이 기다리던 곳
(=성조들의 림보, 앞에서 설명한 저승과 같은 개념)과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어린이들이 머무르는 곳(어린이들의 림보)입니다.
구원을 기다리던 구약의 의인들은 예수님께서 저승에 가심으로써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세례를 받지 못한 채 죽은 어린이들의 구원 문제입니다.
교회는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요한 3,5)고 믿습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세례를 받지 않고 죽은 어린이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더 나아가 지옥에 가야 합니다.
연옥도 못갑니다. 연옥 영혼들도 결국에는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낙태된 태아들이나 이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유아들은 자기 스스로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세례받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들이 지옥에 간다는 것은 하느님의 공정하심과 자비하심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신학자들은 이런 어린이들이
천국에는 들어갈 수 없지만, 그렇다고 지옥에 가지도 않고, 림보라고 하는 특별한 곳
(천국, 연옥, 지옥과 구별되는 제4의 상태)에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림보에서 이 어린 영혼들은 행복한 상태를 누릴 수 있지만,
이 행복은 천국의 행복에는 미치지 못하는 불완전한 행복입니다.
아무튼 세례받지 않고 죽은 어린이는 천국에 못가는 것이므로 부모들은 낙태를 해서는 안 되고
유아세례를 서둘러야 한다는 실천적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림보(고성소)에 관한 내용은 교회의 공식적인 교리가 아니라, 일부 신학자들의 생각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에서는 림보에 관한 언급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고성소에 내리시고”라는 표현이 잘못된 번역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그래서 “저승에 가시어”로 개정하게 된 것입니다.

참고로, 2007년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에서는 “세례 받지 않고 죽은 유아의 구원에 대한 희망”이라는
문헌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세례 받지 않고 죽은 어린이들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희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구원을 “세례를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보다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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