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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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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42- 육신의 부활을 믿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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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의 부활을 믿나이다
 
1)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해 왔던 사도신경의 모든 내용들이 다 중요한 것이지만,
중에서도 첫째가는 것을 꼽는다면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그리스도 신앙의 주춧돌입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는 자들이다”(테르툴리아누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죽 은 이들의 부 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1코린 15,12-14.20).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분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도 흘러 넘칩니다.
우리 모두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입니다. 사도신경의 마지막 부분에서

 “육신의 부활”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들의 부활”에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로마 8,11).
 
2) 육신의 부활
 
그런데 왜 사도신경은 “인간의 부활”이라고 말하지 않고, “육신의 부활”이라고 표현했을까요?

그것은 많은 이들이 인간의 부활에 대해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인간의 부활”이라고만

말하면 오해를 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에 관한 잘못된 생각 : 인간이 영혼과 육신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그리고 죽음으로 말미암아 육신은 썩어 없어지고

영혼은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영혼만 부활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은 무가치하거나 악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고 말했습니다).

부활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믿음 : 인간은 영혼과 육신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결합된 것입니다.
영혼만의 인간도 없고, 육신만의 인간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부활도 영혼만의
부활이 아닙니다.
영혼과 육신의 전인적인 부활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부활을 영혼만의 부활로 오해하기 때문에,

사도신경은 “육신의 부활”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육신까지 포함한

완전한 부활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부활’이란 무엇인가? 육신과 영혼의 분리인 죽음으로 사람의 육신은 썩게 되지만

그의 영혼은 하느님을 만나, 영광스럽게 된 그 육신과 다시 결합되기를 기다린다.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전능으로, 예수 부활의 능력을 통해, 우리 육신을
우리 영혼에 결합시키심으로써 영원히 썩지 않는 생명을 육신에 돌려주실 것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 997항).

육신의 부활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육체가 재생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몸은 다 썩어 없어질 것입니다. 육신의 부활은 영적인 새로운 몸으로의 부활을 뜻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육신의 부활은 “우리의 지상생활이 영원한 생명과 연결된다”

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중한 기억, 소중한 사람들, 흘린 땀방울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허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서까지 보존되고

완성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영원한 생명을 믿으면서도 이 지상 생활에서

충실히 살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죽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가톨릭교회의 교리 내용들(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존재나

사람이 되신 성자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 등)을 이해하고

믿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믿기 힘든 교리는 “우리들의 부활”일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죽음을 회피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전제는 죽음입니다. 죽음이 있어야 부활이 비로소 의미가 있습니다.

런데 죽음이 너무나도 무서운 것이기에, 우리 모두는 알게 모르게 죽음이 마치 나와는

무관한 일인양 외면하려고 합니다. 죽음이 나의 일이 아니니,

부활도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자신의 죽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내가 죽는다”는 엄연한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성모송을 바칠 때마다 “우리 죽을 때”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가 죽는다”는 관점에서 나의 욕심, 분노, 기쁨, 보람, 고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나의 인생이 전혀 다른 모습,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죽음은 지상 생활의 마침이다. 우리의 삶은 시간으로 계산되며,

그 시간 안에서 우리는 변하고 늙어가므로, 지상의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죽음은 생명의 정상적인 끝마침으로 보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죽음은 우리의 삶에 긴박감을 준다.

죽음을 염두에 두는 것은 삶을 실현하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한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007항).

그러나 신앙인은 죽음 앞에서 좌절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그리스도의 부활의 빛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그리스도 덕분에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필리 1,21).

“이 말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입니다”(2티모 2,11).

그리스도인의 죽음이 지닌 본질적 새로움은 바로 이것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1010항).

그러므로 죽음을 넘어서 육신의 부활을 고백하는 교회는 위령미사 때마다 다음과 같이 간청합니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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