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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교회사 -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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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카타리나는 1347년 주님 탄생예고 축일에 이탈리아의 시에나에서 염색업자 자코모 베닌카와 라파의 25명의 자녀 가운데 막내딸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지혜롭고 생기발랄하였으며 깊은 신앙심을 갖고 있었다. 성녀는 성모님을 사랑하고 신뢰를 갖고 공경했으며 일생 성모님에게 의지하여 살았고, 성모님께서 그녀를 도우셨던 수많은 명백한 사례도 전해지고 있다.

여섯 살이 되던 해 어느 날 오빠와 함께 거리를 걷다가 하늘을 쳐다보았더니 갑자기 성 도미니코 성당의 지붕 위로 왕 중의 왕이신 주님께서 빛나는 옥좌에 앉아계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와 성 요한이 그분과 함께 있었다. 부드러운 사랑의 눈길로 어린 카타리나를 내려다보시던 그리스도는 마치 주교처럼, 성호를 세 번 그으시면서 천천히 그리고 엄숙하게 축복하셨다. 이 순간부터 카타리나는 더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영원히 사랑하올 구세주에게 사랑에 빠졌다. 그로인해 어린 카타리나는 동정의 서원을 하고, 평생 주님을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성 도미니코 제3회에 입회, 병자와 가난한 자 돌봐

나중에 카타리나가 성장하자 부모는 결혼을 시키려 했지만, 카타리나는 어린 시절 하느님과의 약속을 이야기하며 결혼하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러 머리를 자르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카타리나는 수많은 영적 유혹도 당하게 된다. 그녀 마음에 끊임없이 정결치 못한 생각이나 상상이 일어났다. 이에 카타리나는 이틀에 30분만 자는 고행에 나섰다. 멸망의 길로 빠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당연히 건강도 급속히 나빠졌다. 어느 날 카타리나가 고통으로 인해 거의 죽어가는 상태에서 예수님을 불렀을 때, 예수님께서 그녀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셨다. 그 생생한 대화가 카타리나의 저술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카타리나는 자신이 성적인 충동에 휩싸여 있을 때 당신이 어디에 계셨냐고 물었고 예수님은 늘 너와 함께 있었다고 대답한다. 카타리나가 놀라서 “어떻게 더러운 생각으로 가득 찬 저와 함께 있을 수 있었습니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오히려 카타리나에게 “성적 욕망에 휩싸였을 때 기뻤느냐 아니면 고통스러웠느냐”를 묻는다. 카타리나가 고통스러웠다고 하자, 예수님은 “그 고통 한가운데에 자신이 섭리하고 있었다”고 했다. 예수님은 그 고통, 그 슬픔 가운데 함께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카타리나의 내면에는 정신적 창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영적인 창고 즉 마음의 창고가 있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영적인 창고에 머무르고 계셨던 것이다. 카타리나는 이 말을 듣고 큰 위로를 느꼈으며 이후에는 어떠한 유혹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카타리나는 이후 3년간 기도, 묵상, 노동을 하면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준비를 하고, 18세 때 성 도미니코의 제3회에 입회했다. 이 회는 수도원에 들어가서 동료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지 않고 세속에 있으면서 성 도미니코의 정신을 따라 가능한 한 복음의 권고를 실천하며 영혼 구원을 위해 노력하는 회였다. 이후 20세에 카타리나의 영적 성장은 이미 높은 단계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성인들에 대한 환시를 자주 경험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부분 과부들로 구성되어 있던 도미니코 제3회는 빈민층에 대한 봉사가 주소임이었다. 카타리나는 주로 병자들을 보살폈고, 가난한 자들과 과부들을 돌봤다. 특히 1370년의 대 기근과 1374년의 흑사병이 전 유럽을 휩쓸던 시기에는 육체가 쇠진할 정도로 죽어가는 환자들을 돌보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카타리나는 이와 함께 엄격한 금욕생활도 이어나갔다. 그녀는 주위에서 염려할 정도로 식사량을 줄여나간 반면 영성체를 자주 했다.


예수님이 카타리나 손가락에 약혼의 금반지 끼워줘

1375년 그녀는 피사성당에서 미사에 참례하던 도중에 오상의 은총을 받았다. 이때 예수께서는 그녀에게 발현하여 “나는 네게 지식과 웅변의 은혜를 줄 것이니 여러 나라를 다니며 여러 지도자들에게 내 소망을 전하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 카타리나는 전 유럽을 돌아다니며 각 국의 군주들과 고위 성직자들을 방문하여 당시 심한 갈등과 대립으로 치닫고 있던 서유럽 세계에 평화를 도모할 것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프랑스에 머물고 계신 교황님을 로마로 돌아오도록 했으며, 교회의 쇄신을 이끌도록 했다. 카타리나는 또 일부 사치와 향락에 떨어진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어느 날 수많은 천사에게 둘러싸인 성모님과 사도 요한, 그리고 사도 바오로와 성 도미니코가 나타났다. 그리고 예언자 다윗이 하프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 성모님께서는 카타리나의 손을 사랑스럽게 잡아서 성자의 손에 쥐어주셨다. 그러자 예수님이 카타리나의 손가락에 금으로 된 반지를 끼워주며 말씀하셨다.

“나에 대한 사랑으로 나만을 찬미하기 위하여 너는 모든 세속적인 즐거움과 욕망을 억제했으므로, 나는 지금 너를 나의 약혼자로 맞이하여 신앙 안에서 신부로 삼겠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대는 신앙의 갑옷을 입고 모든 적과 맞서 이기리라.”

카타리나는 이후로도 성모님으로부터 초자연적인 도움을 받은 적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가족을 위해 빵을 구울 때였고, 또 한 번은 전염병이 돌고 난 후에 기근이 있었는데 약간의 질 낮은 밀가루로 도와주던 친구가 구운 빵보다 다섯 배나 더 많은 빵을 구웠는데, 그녀는 고해신부에게 쓴 편지에서 그것은 모두 성모님과 성인들과 천사들이 도와주신 덕분이었다고 했다.

이후로도 주님께 온전히 자신을 다 바치며 살았던 카타리나는 33살의 나이에 운명하였다. 그녀가 죽은 후에 그녀가 생애 마지막 시간 동안에 쓴 글들이 ‘대화집’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다. 그녀의 시신은 로마 판테온 뒤의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의 중앙 제단 아래에 안치되어 있고, 머리 부분은 시에나의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축일은 4월 29일이며, 도미니코회 수녀복을 입고 동정을 상징하는 백합과 함께 책, 십자고상, 심장, 가시 면류관, 오상의 성흔, 반지, 비둘기 등이 함께 그려지기도 한다.

1461년 6월2 8일에 카타리나는 교황 비오 2세에 의해 성녀로 시성되었고, 1866년 4월13일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로마의 수호 성녀로 반포되었고, 1940년 5월 15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와 함께 이탈리아의 수호 성녀로 선포되었으며, 1970년 4월 4일에는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하여 교회박사로 선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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