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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교회사 - 수도생활의 위대한 시조들 (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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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생활의 위대한 시조들

 

에집트의 금욕가들에게서 처음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처럼,

3세기 중엽에 초기의 공동체적 카리스마적 생활로부터 고독한 은수 생활로의 변화가 일어났으니

그래서 은수자隱修者들이 외딴 지방과 사막으로 은퇴하였다.

 

안또니오

 

역사상 우리에게 알려진 최초의 은수자로서, 그를 친히 알고 있던 大아타나시오는  그의 전기를 썼다(357).

안또니오는 251년경 중부 에집트 코메에서 태어나서 일찍 부모를 여윈 후 마태오 복음 19장 21절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 의 정신을 따라 그의 부유한 유산을 팔거나 선사하고, 그의 누이동생을 그리스도교적 동정녀 집단(수녀원)에

맡긴 다음 271년경, 그러니까 20대의 청년으로 고독을 찾아 은둔하였다.

 

처음 그는 그의 출생지 근방에서 살았고, 다음 사막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그러나 결국 거기서도 방문자들이 쇄도할 것이 염려되어 나일강 맞은 편의 접근하기 어려운 돌산으로 갔다.

아타나시오는 안또니오의 성덕을 얻으려는 노력과 악마와의 투쟁을 우리에게 전하였다.

또한 그는 안또니오가 모든 계층의 인간들에게 끼친 놀라운 매력을 묘사하였다.

 

그의 발자국을 따르고자 하는 청년들, 의지할 곳 없는 사람, 병자, 구령의 조언을 얻으려는

주교와 신부들이 그를 찾았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그의 아들까지도 그에게 의뢰했다.

안또니오는 사회동태에 관심을 갖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가로서가 아니라 카리스마의 소유자요 하느님의 뜻을 알리는 자로서,

하느님의 예언자로서 행동하였다.

그가 356년 105세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 이미 그의 주위에는 수많은 은수사들의 공동체가 있었다.

그는 은수생활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빠코미오(287~347)

 

그도 은수사로서 시작하였으나(308년경) 최초의 '수도원'을 세웠는데,

그것은 서로 근접해 있는 작은 방들을 합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공주생활共住生活을 시킨 것이었다.

이 최초의 수도원은 나일강변 타벤니시에서 탄생하였다.

그것은 작은 방이 많고 담으로 둘서 싸인 집이었다.

빠코미오는 또 7개의 남자 수도원과 2개의 여자 수도원을 창설하였고, 마침내 9천명의 수도자들을

그의 수도원연합으로 통합하였다. 그는 이 공동체에 기도와 일과에 대한 일정한 규칙을 만들어 주었고,

능숙한 조직력으로 공동체의 생계를 유지하는 일도 돌보았다.

 "수도자'(Monahus=혼자서 사는 사람)란 이름은 이미 이러한 생활양식에 맞지가 않았다.

그러나 이 이름이 단체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도 각기 작은 방에서 침묵과 명상 가운데 혼자서 생활해야 했기 때문이다.

빠코미오는 공주생활의 시조가 되었다.

 

이 두 종류의 수도생활이 에집트에서부터 동방 전역에 신속히 전파되었다.

大 바실리오(379)는 공주 수도생활에 규칙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것은 곧 동방 전역의 수도생활에서 유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은수생활도 동방에서 유지되었고, 여러 특이한 극단적 형식에서 지속되었다.

(기둥 꼭대기에 앉아 생활하는 고생자 등등)

 

서구는 아타나시오를 통해 처음으로 수도생활을 알게 되었다.

트리어로 추방되었을 때(355), 아타나시오는 2명의 수도자를 동반하였다.

그후 아타나시오의 성 안또니오 전기가 서방에 알려짐으로써 그 사상을 전파하게 되었다.

밀라노의 암브로시오 주교, 히에르니모, 아우구스띠노, 뚜르의 마르땡은 수도생활을 열심히 장려하였다.

아우구스띠노는 타가스테 내지 히뽀의 그의 성직자 공동체를 위해 서구에서 최초의

수도회 규칙으로 인하여 한때 밀려났었으나 그후 다시 큰 의의를 얻게 되었고,

오늘의 아우구스띠노의 규칙에서 존속되고 있다.

에집트를 방문한 바 있는 수도자 요한 가시아노는 그후 415년경 마르세이유 근방에

성 빅토리오 수도원을 세웠고, 2권의 귀중한 묵상서를 저술하였는데, 그것은 규칙서로 간주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형식의 수도회 규칙은 처음으로 누르시아의 베네딕도가 서구의 수도생활을 위해 저술한 것이다.

 

베네딕도(480~547)

 

누르시아 지방의 한 귀족의 아들이었다. 성인이 태어난 480년 경은 로마의 쇠락기였다.

나태와 향락이  해가 지지 않는 불멸의 제국을 쇠락시켰다고 생각한 베네딕도는

로마에서 공부하던 도중 고독한 생활로 은둔하였다.

그는 처음에 로마 근방의 아필렌에 있는 금욕가 단체에 속해 있었고, 

다음 수비아고의 아니오 계곡의 고지에서 3년간 은수사로 있었고,

마침내 은수사 공동체의 우두머리로서 슬픈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수도자들을 엄격히 지도할 수 있도록 그들을 수도원에 집합시켰다.

529년 그는 몬테카씨노로 이주하였고 거기서 열심과 심오함과 지헤와 절제를 입증하는

그의 수도회 규칙을 저술하였다. 그것은 곧 큰 의의를 획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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