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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교회사 -이슬람교(회교)의 발흥 (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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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회교)의 발흥

 

콘스탄티노플 비잔틴은 '신로마'로서 서로마제국의 멸망(476) 이래 로마제국에서의 유일한 합법적 통치권을 이어 받았다. 황제 유스티아누스 1세(527~565)는 반달족과 동공도트족을 정복한 후 다시 한번 로마제국의 제권의 광영과 품위를 만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벌써 다음 세기에 새로운 위험이 나타났다. 슬라브족과 아비아르족이 발칸으로부터 제국을 괴롭혔다. 또한, 페르시아인과의 묵은 적대관계가 되살아 났다. 페르샤는 사산왕조 때 605년 보스포루스까지 돌진하고, 다음 615년 이래 에집트까지 지중해 지방을 정복하고 마침내 619년 에집트마저 점령함으로써 비잔틴의 멸망을 위협했다. 물론 헤라클이우스 1세(610~641) 황제는 627년 니니베의 '성전'에서 페르시아인을 격파하는 데 성공했고, 동시에 예루살렘에서 약탈했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그들로부터 빼았았다.(십자가영광축일). 그러나 수년 후 그들은 다시 더욱 강력한 압박을 가해 왔고, 그것은 더이상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시기에 아라비아인과 이슬람교가 결정적으로 지중해권 세계를 침략하였다. 그들은 고대의 희랍·로마의 문화적 통일체를 파괴하고, 정치적, 문화적 효력을 예상외로 발휘하였다. 1천년 이래 인근 민족들을 결합시키는 무대였던 지중해는, 아라비아인이 근동과 북아프리카를 정복하는 동안, 한편으로는 회교세계,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교 서구세계를 분리시키는 울타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비잔틴은 그리스도교 서구의 전위지가 되어, 동쪽에서 유럽을 이슬람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 양진영 사이의 분쟁은 점점 치열해졌다.

 

비잔틴 제국은 이 강력한 아라비아의 팽창력에 대비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의 영토가 대부분 상실되는 것을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콘스탄티노플만은 다년간의 영웅적인 전쟁으로(674~678) 성공적으로 버틸 수 있었다. 이때문에 콘스탄티노플은 서구를 아라비아인의 침범에서 구하였다. 육해로 공격해 온 회교도들은 717~718년에 또 한번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였으나 격퇴되었다.

 

이러한 곤경에서 비잔틴이 이미 로마와 이탈리아를 랑고발드족으로부터 보호할 처지가 되지 못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랑고발트족은 북부 이탈리아에서 빠비아를 수도로 왕국을 세우고, 그들의 영토를 재빨리 남쪽으로 확장해 나아갔다. 로마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2개의 랑고발드족의 공작령이 탄생하였다. 아라비아인이 곧 남부 이탈리아를 정복하였으므로, 비잔틴에 속하는 이탈리아의 영토는 로마 주변 지역으로 축소되었다. 592년 랑고발드족이 로마까지 포위하였을 때, 로마는 비잔틴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깨 그레고리오 대교황(590~604)은 일찌기 레오 대교황이 훈족과 반달족을 물리쳤던 것처럼 랑고발드족과 담판을 하여 그들을 로마에서 퇴거시킬 수 있었다. 이어 그는 가톨릭 여왕 테오드린데의 도움으로 랑고발드인을 가톨릭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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