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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교회사 - 십자군 운동 (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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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운동

 

십자군 운동의 종교적 핵심에 대하여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그레고리오의 개혁을 통하여 각성되었던 서구의 새로운

그리스도교적 공동체의식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또한 기사적인 충동력이 강력히 작용하고 있어서,

때때로 전혀 비그리스도교적인 유혈도취을 야기시키고, 중세의 난폭한 사건들을 유발시키게 되었다.

이 두가지는 내면적으로 항상 비교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지만 명백히 공존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서구의 기사도는 성지의 탈환 및 회교에 대한 투쟁의 사상을

첫째로 또한 근본적으로 그리스도교적이고 포교적인 것으로 파악하였다.

터어키인의 예루살렘의 정복(1071)과 성지의 새 주인들에 의해 벌어진

여러가지 방해에 대한 순례자들의 감동적인 불평은 마치

첫째 그리스도교적 양심에 대한 호소같은 인상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콘스탄티노플에 대한 압박이 절박하여지고,

황제 알렉시우스 1세(1081~1118)가 로마의 서구교회에 간절하게 도움을 호소하였을 때,

교황 우르바노 2세(1088~1099)가 1095년 삐아첸자와 글레르몽의 교회회의에서 행한

라틴 그리스도교계에 대한 호소는 마침내 불을 붙이고 놀라운 힘을 일으켰다.

 

위대한 종교적 이념은 모든 국가적 장병을 넘어서 동방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구하러가고,

그리스도께서 살으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갖다 준 땅을 마호메트교도로부터 탈환하고,

그리스도교적 서구의 제민족을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었다.

교황은 "하느님의 뜻이다"라고 외치며 군중을 사로 잡았고, 직접 운동의 선두에 나섰다.

때는 프랑스 왕 필립 1세와 마찬가지로 황제 하인리히 4세가 파문되어

교회공동체에서 제외되어 있었던 그러한 순간이었다.

그리하여 이전 서구적 운동의 통솔권은 교황에게로 돌아갔다.

교황의 외침은 예상외의 반향을 일으켰다.

교황은 종교적 집단운동을 일으켰는데, 그것은 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1세기 동안 활발하게 지속되었고,

중세 중기말에 서구 통일의 붕괴와 더불어 비로소 그 호소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십자군 운동의 의의는 전체적으로 논쟁되고 있다.

피와 용기로 인한 엄청난 희생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성공이 미미하였으나 그러나

그 이념적인 이득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원정들은 서구의 공동체의식을 크게 강화하였고, 유럽의 시야를 넓혔으며 비잔틴과 동방,

특히 회교의 문화와 접촉함으로써 학문을 촉진하였다.

온갖 문명재와 경제재의 활발한 교류가 시작되었다.

스콜라학에 있어서 서구의 철학과 신학의 혁혁한 진보는 동방과의 이러한 접촉이 없이 상상될 수 없는 것이다.

 

십자군 운동은 서구의 신심생활을 아주 깊게 또 영속적인 것으로 형성하였다.

십자군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그리스도 때문에 십자가를 졌고,

말할 수 없는 위험과 고생을 이겨냈고, 종교적 순례을 통해 십자가를 진 구세주의 가난한 생활을 감수하였고,

청빈과 속죄정신에서의 그리스도의 모방사상을 고향에도 보급시켰다.

완전히 개인적인 신심이 중세 초기의 종교적 공동체적 체험을 대신하여 나타났다.

사람들은 성서를 새로운 눈으로 대하였다. 청빈운동이 환기되었다.

 

Tip: 제1차 십자군 원정; 1096~1099. 제2차;1147~1149. 제3차; 1182~1192. 제4차; 1202~1204.

      제5차; 1228~1229. 제6차; 1248~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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