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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교회사 - 마르틴 루터 ( 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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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아이스레벤의 시골 가정에서 태어났고, 만스펠트에서 성장하였으며 ― 아버지 한스 루터가 광부로서 새로운 생계의 기초를 세웠었다. ―  중세후기의 민중신심의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였다. 마녀망상과 악마 신앙이 다른 많은 미신과 함께 여기서 현저한 역활을 한다. 그런데 그것들은 완전히 교회와 관련되어 있었다. 교회가 민중 안에서 민중과 더불어 생활하고 있던 것처럼, 사람들도 교회 안에서 교회와 더불어 생활하고 있었다.루터의 교육도 완전히 교회생활 속에서 진행되었다. 만스펠트에서 기본학교(1489~1495), 막드부르크에서 라틴어 학교(1496~1497) ― 이때 공주생활 형제회에 기거하면서 그들로부터 '데보시오 모데르나(근대 신심운동) 정신을 배웠다 ― 다음 아이제나히에서(1498~1501) 여기서 특히 브라운 보좌 신부와 친구가 되었고, 1501년에는 에르푸르트 대학으로 가서 거기서 1505년 학사가 됨으로써 철학의 기본과정을 끝냈다.

 

에르푸르트는 그의 신학의 방향을 결정짓는데 매우 큰 의의가 있었다. 그곳에서 가르치던 철학과 신학에서의 오컴주의적 '새 방법'은 젊고 개방적 인간인 그를 신과 인간사이의 종교적 긴장영역으로 끌어 넣었다. 그는 神의 뜻의 위대함과 절대성을 체험하였고 ―그 앞에서 가련한 인간은 허무가 되어 버린다 - 모든 것을 신의 뜻과 판단에서 이해하는 것을 배웠다. 죄와 은총, 선과 악은 인간이 아니라 神에게 매인 것이다. 신이 인간을 은총에서 바라보면 인간은 착한 것이고, 신이 인간을 노여움에서 보면 인간은 악한 것이다. 원하면 신은 죄인도 자비롭게 간주할 수 있다. 그러면 이 죄인은 의화(義化)되고, 따라서 '의인(義人)'이 된다. 물론 그는 죄인으로 남는다. 그러나 신은 그를 의화된 것으로 간주한다.(의인인 동시에 죄인).

 

신은 그의 은총을 부여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자유이고, 아니 자의적이다. 인간은 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다만 신이 그에게 은총을 내리도록 바라고 신뢰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신에게 무조건 의탁할 수 밖에 없다. 성사도 교회도 구원매체로서 인간을 돕지 못한다. 그것은 인간 자신의 주관적 자세와 관련되는 것이다.

 

1505년 여름 에르하르트로 돌아가던 도중 7월 2일 무서운 뇌우를 만나 벼락이 그의 곁에 떨어졌을 때, 그는 수도원에 들어갈 맹세를 하였다. 그는 서둘러, 그러나 마음의 준비가 안된 채 7월 17일 에르푸르트의 엄격한 아우구스띠노의 은수사회의문을 두드렸다. 거기서 수련을 끝낸 후 1507년 4월 3일 사제품을 받고, 에르푸르트에서 본연의 신학공부를 시작하였다. 그 신학도 가브리엘 비일의 엄격한 유명론적인 것이 그 기초를 이루고 있었다. 후일 그는 수도자 시절에 그를 엄습하였던 무서운 내면적 투쟁에 관해 자주 이야기하였다.

 

그의 수도회의 창설자인 아우구스티노의 은총설과 예정설에의 몰두, 자기자신의 죄의 체험 및 오컴주의적, 유명론적, 철두철미 주의주의(主意主義)적인 신관(神觀) 등이 그를 종교적 신학적 파멸의 막다른 곳으로 이끄는 데 함께 작용하였다. 예정에 대한 불안이 그를 엄습하였다. 그는 자신의 위반(違反)을 느끼고, 하느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저주받은 것으로 믿고, 깊은 정신적 침울에 잠기게 되었다. 자주 보는 고백성사도, 그밖의 성사도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는 성사에 대해 원래 그의 유명론적 기반 때문에 올바른 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는 다만 그의 수도회의 원장 요한 슈타우피츠의 안심시키는 말에서 위로를 찾았는데 그는 루터에게, 그가 예정되었는지의 여부를 골똘히 생각하고 숙고할 것이 아니고 다만 우리를 위해 죽고, 우리를 위해 그의 속죄적 수난을 성부께 바친 그리스도의 상처를 바라보도록 가르쳤다.

 

그간 루터는 비덴베르크에서 신학연구를 계속하였고(1508~1509), 거기서 한때 로마여행(1510~1511)으로 공부를 중단한 후 신학박사 학위를 획득하였다. 1512년 그는 그때까지 슈타우비츠가 비덴베르크 대학에서 점유하고 있던 성서학 교수직을 넘겨 받고, 시편, 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 또 시편에 관한 강의를 하였다. 그중 그 자신의 원고로 또는 학생의 노트로 보존된 이 초기의 강의들은 그후 종교개혁가로 발전하는 내적과정을 설명해 준다.

 

이 범위에서 무엇보다도 비덴베르크 수도원 탑 안에 있는 방에서 일어난 '탑의 체험'이 한 구실을 하는데, 이때 그는 로마서 1장 17절―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 이는 성경에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 을 묵상하고 있던 중 돌연 신의 '의화(義化)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깊은 종교적 책임에서 그는 "나는 자비로운 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에 끊임없이 몰두하였다. 그의 문제는 자기자신의 심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신학적인 것이었다. 신에 대한 그의 신앙이 흔들리게 되었고 그래서 그는 새로운 신상(新像)을 얻으려고 노력하였다. 이제 그는 로마서 1장 17절에 언급된 '하느님의 정의'가 하느님이 불쌍한 죄인에 대해 냉혹하게 엄한 심판을 내리는 저 재판관적 엄격한 정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속죄적 수난 때문에 순 자비에서 믿는 죄인을 자비롭게 바라봄으로서 '의인'으로 만드는 은총의 정의임을 발견하였다.

 

나아가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적 죽음을 믿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당신에게 접근하는 자에게 그의 은총의 정의를 선물하고, 그의 아들의 공로를 그에게 가산(加算)한다는 것을 추리하였다. 루터의 '탑의 체험'에서 새로운 것은 신상(新像)만이 아니라 또한 신에 대한 루터의 새로운 내적 자세이다. 즉 하느님의 말씀, 다시말해서 성서의 구원약속을 기초로 하는 신앙적 신뢰만이 결정적인 것이다. '다만 신앙'과 '다만 성서'는 함께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 구원기관으로서의 교회, 은총의 중재자로서의 성사가 퇴색하고 표면에서 사라졌다. 하느님 말씀에서 구원의 특별한 약속에 근거한 신앙만이 영원한 구원을 결정짓는다. 오직 성서에서만 인간은 신앙과 은총을 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만 성서'를 프로테스탄티즘의 형상원리(形相原理)로 '다만 신앙'과 '다만 은총'을 질료원리(質料原理)로 부른다.

 

토마스학적 스콜라 신학설에 의하면 성사는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된 표지로서, 그것을 신앙에서 받고, 은총을 방해하지 않는 한 '사효적 효력(事效的 效力)에서 은총을 지니고 중재한다. 신앙은 성사를 받는데 필요하다. 그러나 성사적 표지가 은총을 중재한다. 루터는 표지를 제거하고, 은총의 중재가 신앙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고, 그래서 신앙이 새 모습을 갖게 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앙을 지성(知性)과 밀접하게 졀부시켰다. 그에게 있어서 '신앙'이란 무엇보다도 계시진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이 인정이 또한 마음의 용건이라는 사실이 후기 스콜라학에서 너무나 뒷전으로 물러 났다. 루터는 '탑의 체험에서 그것을 자신을 위해 새로 발견하였고, 여기서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로마 10.10)는 결론을 유도하였다. 신앙은 신뢰문제가 되고, 이전의 신앙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왜냐하면 루터는 다만 모호하고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있던 것을 발견한 때문이다.그러나 루터는 그것을 전체로서 장악하였다.

 

이 새로운 인식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적 경향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주관적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루터가 종교개혁가가 된 것은 새로운 종교적, 신학적 위치를 발견한 때문이다. 그것은 성사적 교회 밖에 자리하고 있었고, 구교회의 교회생활과 양립될 수 없는 것이었다. 바로 여기서 에라스무스와 그밖의 종교가들에게서와는 달리 교회 자체가 문제시되었다. 그것은 이미 교회의 대내적 정화라는 뜻에서의 개혁이 아니라 종교개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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