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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상식

가톨릭 일반상식과 간단한 교리를 담는 게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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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교회사 - 트리엔트 공의회 ( 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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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이 회의는 개신교의 진전과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의적·도덕적·행정적 기준 확립의 필요성에 의해 열렸다. 회장(會場)이 한때 이탈리아의 볼로냐로 옮겨지곤 하여 긴 시간을 끌어 3개의 시기로 나뉘는데, 이는 당시 교회·정치적인 여러 난제들을 반영하고 있다. 중요한 결정은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를 신앙의 기초로 재확인한 일, 성서와 교회의 전통을 등가치(等價値)로 삼은 것, 교회가 계시 해석의 유일한 권리를 갖는 것, 구원은 하느님의 은혜와 신앙의 실천에서 생겨난다는 것, 7개의 성사, 성찬에 관한 성변화(transubstantiation)의 확인, 직위의 겸임을 금지한 일 등이다. 가톨릭교회는 신학적·교회적인 근본적 재정비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근대 가톨릭교회의 기반이 확립되었다.[1]


진행 과정[편집]


제1기[편집]

1545년 개회되어 1548년 정회될 때까지 약 3년간의 기간으로 이 동안 공의회는 성서만이 기독교 신앙의 유일한 원천이 된다고 한 곧 믿음의 원천은 전통이나 교의가 아니라 성서라는 개신교의 오직 성서로만(Sola Scriptura)사상을 이단으로 배척하고, 전통적인 해석에 따라 성서와 전통 모두가 기독교 신앙의 원천임을 재확인하였다. 아울러 라틴어로 된 불가타 성서의 권위를 인정하였고, 성서의 해석권은 교회만이 갖는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다. 또한 개신교의 오직 은혜로만(Sola Gratia) 곧 사람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는 길은 하느님의 자비와 은혜라는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을 배척하고 원죄와 의화에 대한 정의를 명백하게 규정하였다.

성사에 대한 교리도 제1기에 규정되었다. 황제 카를 5세와 교황 사이의 관계 악화로 중단되었다.[2]


제2기[편집]

교황 바오로 3세의 후계자 교황 율리오 3세가 1551년 개회하여 다음 해 독일 제후들의 봉기로 좌절될 때까지 약 1년간의 기간으로 성체성사에서의 ‘그리스도의 현존’과 ‘실체변화’, 고해성사, 병자성사, 사죄, 비밀고해, 보속 등의 교리가 정의되었다. 제2기에는 제1기에 참여하지 않았던 독일지방의 주교들이 참석하였고, 황제의 입김으로 개신교에서도 참석하였다.[2]


제3기[편집]
가장 성과가 많았던 회기로 제2기가 끝난 뒤 약 10년 후인 1562년에 개회되어 이듬해 폐회되었다. 이 회기 중 가장 중요한 심의대상은 성체성사와 미사, 사제서품, 혼인성사에 관한 것 들이었고 이에 관한 교리가 규정되었다. 그밖에도 모든 성인의 통공(사도신조 참조), 성인유해의 공경, 연옥, 대사, 성화상의 사용, 교구신학교 설립, 주교의 임명, 교구 시노드, 강론 등에 관한 교령이 반포되었다.[2]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과[편집]
* 70인역성서에 따라 구약성서가 제2경전인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기 상·하권, 집회서, 지혜서를 포함한 46권임을 확인하였다. 프로테스탄트 측에서 마소라 본문에 있는 39권만을 구약성서로 인정할 수 있다며 제2경전을 경전에서 빼어버리자. 이를 명확히 한 것이다. 이후 1950년대에 출토된 사해 문서에서 제2경전의 일부가 히브리어 판본으로 발견되자 “히브리어로 기록된 것만 구약성서로 인정할 수 있다”는 프로테스탄트의 입장은 입지가 약해지게 되었다.
* 미사집전 시 라틴어만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 만인제사장설, 성변화 부정설 등 프로테스탄트 교리들을 이단으로 단죄하였다.
* 면죄부 판매라며 중상의 대상이 되었던 각종 대사(大赦)가 대폭 폐지되었고, 사제의 독신이 강조되었다.
* 성찬 전례에서의‘그리스도의 현존’과 ‘성변화’, 고해성사의 비밀, 병자성사, 보속, 신품성사, 혼인성사 등의 교리가 명확히 정의되었다.
* 모든 성인의 통공, 성인유해의 공경, 연옥, 대사, 성화상의 사용, 교구신학교 설립, 주교의 서임, 교구 시노드, 강론 등에 관한 교령이 반포되었다.
* 프로테스탄트에 맞서 로마 가톨릭교회 자신이 스스로를 개혁한 것이 아닌 반종교 개혁의 일환으로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탄압을 공식적으로 결의한 공의회로 평가된다.
* 이 공의회 이후 가톨릭 교회의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탄압은 날로 극심해져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과 30년전쟁의 원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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