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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교회사 - 슐라이에르마허의 종교론 ( 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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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라이에르마허의 종교론

1. 종교의 본질


F.Schleiermacher(1768-1834)의 <종교론>은 비신앙적인 교양인들에게 변증하기 위해 계몽주의 종교관의 비판을 출발점으로해서 서술한다. I.Kant와 같이 종교를 도덕으로 Hegel과 같이 형이상학에 종속시키는 입장을 비판하고, 종교가 직관과 감정임을 주장했다.


형이상학과 도덕은 종교와 동일한 대상, 즉 우주와 우주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갖고 있다. 바로 이러한 면이 형이상학과 도덕이 종교에 스며들게 되고, 종교에 속하는 것들이 형이상학과 도덕안에 부적당한 형태로 숨어있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종교는 이 양자와 구별되어야 하고, 그 대상 또한 다르게 다루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종교가 지닌 독특한 본질과 고유한 존재를 나타낼 수 있다고 말하면서 1)종교는 형이상학이 아니다. 2)종교는 도덕이 아니다. 3) 종교는 형이상학과 도덕의 혼합물이 아니다. 4)종교는 형이상학과 도덕개념의 병행관계에 대한 지각이 아니다. 5)종교는 교의가 아니다라고 비판한다.


그럼 종교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유한자에서 무한자(das unendlich), 즉 무한자의 사상(Abdruck)과 표현을 인식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 속에서 종교, 형이상학 그리고 도덕의 관계에 일관성을 견지하지는 핞는다. 처음에는 그가 종교의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극단적인 견해를 취했으나, 형이상학과 도덕으로부터 구별되는 종교의 영역을 분명하게 한 후에는, 이 양자의 관련성을 어느정도 인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종교의 본질을 <우주에 대한 직관과 감정>으로 파악하고 있다. 직관은 자기의식의 객관적인 측면이요, 감정은 주관적인 측면이라 하 수 있다. 이와의 관계는 직관에 우위를 두고 있기는 하나, 동시에 종교에 대한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감정이야 말로 종교를 지적인 신념이나 철학으로부터 구별하고 있는 살아 있는 종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는 직관(Anschauung)이 종교의 본질과 한계를 규정하는 주요한 것이라 한다. 이에 대해서 그는 “직관은 직관하는 자에 대한 직관되는 것의 영향에서, 즉 직관되는 본원적이며 독립적인 행위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직관하는 자는 직관되는 대상을 그것의 성질에 따라 받아들이며, 총괄하며,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직관을 종교적인 직관에 연결시커 종교적인 직관은 우리에 대한 우주의 행동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 종교적인 직관은 우주에 대한 해석이기는 해도 능동적이고, 사변적이고, 변증적이지 않고 수동적이며 관조적이다. 이것은 또한 전 우주를 하나의 체계로 이해하는 것이며, 사건들을 그 체계안에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는 모든 직관이 종교의 일반적인 형상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 본질상 감정과 결합되어 있다고 한다. 그 결합은 직관의 내용에 의해 감정이 결정되는 결합이다.

그럽 감정이란 무엇인가? 그는 감정을 <우주의 직접적인 영향>, <직접적인 자기의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은 사물이나 인간이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닌, 인간앞에 또는 인간위에 있는 어떤 것에 의해서 의존적으로 가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감정의 강도가 종교의 정도를 결정한다. 그러나 그 자신은 종교적인 감정과 감각적인 감정을 뚜렷하게 구별하지 않았는데 이는 인간의 감정적인 본성을 종교의 토대로 강조한 결과 때문에 나타난다.

이 직관과 감정의 관계성에 대해 그는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이 우주의 체험으로 나타낼 수 있는 한 공동적 사건(einheittiche Sache)의 양면”이라 말한다. 이는 직관과 감각의 통일성을 말하는 것인데, 대립물의 통일이라는 것의 이해는 정다하다고 보겠다.


그의 종교철학사적인 공헌은 도덕화 되고, 이성화 되었던 계몽주의 시대의 종교에 반기를 들고 직관과 감정을 종교의 본질로 주장하여 종교의 독립적인 위치와 고유의 가치를 확보한 것이다.

1) 인간의 감정과 직관을 종교의 본질로 규정한 것은 Kant나 Hegel과 마찬가지로 일방적인 것이다.

2) 종교적인 감정과 감각적인 감정을 명확히 구별하지 않았으므로 종교를 주관적인 기분의 문제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가능하게 했다.

3) 그는 우주에 대한 직관이 하난의 계시이다. 그러나 <자기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우주의 직관과 신의 계시는 구별되어야 하며, 이러한 그의 독자적 재해석은 인간 중심적인 종교관을 형성하게 한다.



2. 종교 연구의 방법


그는 <종교론>에서 명확한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고, 방법론의 원칙은 있으나, 세부사항은 없는 듯 하다. 먼저 G.Wbbermin의 <종교의 본질>에 기초해 종교본질의 연구방법을 살펴보자.


종교의 본질에 대한 해명을 단지 종교기원의 연구에서 얻을 수 있다는 신념에 근거한다. 그러나 발생에 관한 이해는 본질에 대한 이해와 동일시 할 수 없고, 이 방법은 종교발생의 태고시대에 대한 이해가 정확하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으나, 이 가정은 불가능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은 도움이 된다.


역사상에 존재했던 종교들을 비교함으로써 본질을 규명하려는 것이다. 즉, 역사적 종교의 공통분모를 종교의 본질로 간주한다. 완전한 객관성을 추구하는 특색속에서, 전체 종교사를 공평하게 추구하는 공적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인 종교의 공통성이 관습적인 것인지, 종교적인 것인지 구별할 수 없다.


자신의 확신에 따라서 진정한 종교로 간주되는 종교에 근거해 종교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이다. 이 방법의 옹호자들은 아무리 객관성을 추구해도 그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고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의 연구는 어떤 신념을 배제해야 한다.


앞의 세 방법들은 정당한 진리를 포함하고 있으나 어떤 통일적인 전체의 방법에로의 결합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상호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종교심리학적방법은 앞의 세가지 장점을 포함한 반면, 편파성과 결점을 피하는 방법이다. 이방법의 근본적인 성격은 종교적인 경험의 관찰에서 종교를 연구하는데 있다. 그리고 종교생활의 표현양식의 공통적인 근본동기에서 종교의 본질을 고찰한다. 이러한 면에서 보버민은 Schleiermacher가 종교심리학적 방법을 사용햇다고 주장한다. 즉 그는 종교와 같은 정신현상은 인간본성의 심층에 그 출발점과 중심점을 갖고 있으므로 여기에서 종교의 개념이 발견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또한 그는 종교사적인 자군에 의해 그의 종교이론을 전개한다. 결국 그의 종교방법론은 명료하지는 않으나 경험적인 사고와 사변적인 사고를 병행했다.



3. 종교와 교육


그의 교육사상은 그의 교육학 강의록 유고, 설교집 그리고 <종교론> 제3장 “종교의 교육”에서 발견된다.

그는 종교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며, 계발되는 것이기에 전통적인 교육방법과 암기위주의 방법을 거부하고 직접적인 체험을 강조한다.


철학은 존재하는 것의 근거를 추구하여 그 궁극적인 원인을 밝히는 것이며, 도덕은 의무의 체계를 전개하며, 행위를 명령하거나 금지하는 것이다. 종교는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아닌 직접 의식하며 느끼는 것이다. 즉 종교는 우주 자신의 표현과 행위 안에서 경건하게 우주에 귀 기울이는 수동적인 태도요, 감동으로 직관과 감정으로 종교의 본질을 파악한다. 그리고 직관과 감정은 본질상 결합되어 있다.


그는 종교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깨우쳐지는 것이므로 종교를 가르칠 수는 없으나 그것을 전하고 깨닫게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교리문답이나 찬송가의 암기를 배격하고, 자기의 종교적 삶을 보여줌으로써 경이스럽고 초자연적인 것을 동경하는 젊은 마음을 일깨워주려고 했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의 자각을 위한 조력자로 규정한다. 종교의 경험이 학생에게 발견되면 교사의 역할은 종료되는데 이는 학생 안에서 소생한 종교가 자유롭게 활동하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경이롭고 초자연적인 세계에 대한 아이들의 동경심을 높이 평가해서 종교교육에 있어서 상상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 상상력이 현상계 밖의 초월적인 것을 직관하고 감각하는 것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의 합리적 분석과 이해라는 계몽주의 교육관을 비판하는데, 이는 <설명과 이해의 습관>이 상상 속에 있는 <계몽과 발견>의 정신을 도외시하고, 그들이 의문시하는 모든 것을 <직관>이 아닌, <하고의 대상>으로 전환시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학생의 개체성을 중시했다. 그는 보편적 인간에게 적용되는 제도적인 교육을 반대하고, 각 개인의 특수성에 맞는 운명에 맡기는 방안을 제시 했다.


F.Schleiermacher는 인간의 정신을 Knowing, Doing, Feeling 으로 구성되었다는 신념에 근거하여, 당시의 철학과 도덕에 종속된 계몽주의 종교관을 부정하고, 감정에서 종교의 본질을 규명하여 종교의 독자성을 확립했다. 이런 종교관에서 종교교육도 배우는 것이 아닌, 깨닫는 것이라 확신하여 암기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비판하고, 스스로 자각하는 계발식 교육을 제시한다. 따라서 교사는 자각에 도움이 되는 실재를 보여주는 조력자이다. 직접적인 체험을 강조하는 그의 교육관은 모라비안 경건주의의 영향으로 생긴 것 같다. 그는 교육방법에 있어서 상상력을 강조했는데 이는 상상력이 종교에 접근케하고, 깨닫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가 종교교육에 있어서 상상력.개인.자유를 중시한 것은 낭만주의의 영향때문이며, 이러한 면은 그를 진보주의자의 대열에 서게 한다.



끝으로, 이 책을 읽고 느낀점을 기술한다.

술라이에르마허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계몽주의가 무너지고 이성의 한계성에 대한 자각으로 경험론이 등장하였고, 합리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낭만주의가 등장하여 베를린을 중심으로 발전하던 시기였는데 그는 칸트와 같이 종교를 도덕을으로 환언하거나 헤겔과같이 종교를 형이상학에 종속시키는 입장을 비판하고 부정하는 한편 종교가 직관과 감정임을 주장하는 독창적인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종교의 독자성을 확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의 생각이라면 좀 당돌하겠지만 종교의 독자성만을 강조하고 그 종교에 수반되는 도덕성과 형이상학적인 측면을 배제한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가 아니라 일종의 종교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슐라이에르마허의 종교관


A 종교의 본질


1. 서 론

슐라이에르마허는 도덕적이고 이성화된 즉 계몽주의적 종교관에 반기를 들고 직관과 감정을 종교의 독립적 위치와 고유의 가치를 확보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종교를 형이상학이고 -존재의 근거를 확인 하고 체계화 시키는 학문 - 도덕적인 -인간의 행위를 규정함 - 것으로 종교를 이해하고 있었다.물론 종교가 직관과 감정이라고 주장함으로 인해 많은 모순을 보여주지만 당시의 계몽주의적 사고를 비판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가진다.


2.계몽주의적 종교의 비판

슐라이에르마허는 비판적입장에서 부정적용법을 사용하여 종교의 본질이 직관과 감정임을 밝히고 있다.

첫째 종교는 형이상학이 아니다

형이상학은 우주를 분류하여 각기 본질에따라 구분하고 존재의 근거

추구하지만 종교는 본질을 정립하거나 궁극적인 원인을 탐구 영원한 진리 를 선언 해서는 안된다고봄

둘째 종교는 도덕이 아니다.

도덕이 추구하는 선과 종교가 추구하는 선이 다를때도있으므로 종교가 도덕적인 해위와 동일시 될수없다고 함

섯째 종교는 형이상학과 도덕의 혼합물이 아니다.

당시 사람들이 신개념을 형성하기위해서 형이상학적인 종교의 개념과 도덕적인 선의 개념을 결합시고있음에 반기를 들고 있다.

넛째 종교는 형이상학과 도덕개념의 병행관계에 대한 자각이 아니다

다섯째 종교는 교의가 아니다.

그는 종교에대한 직접적인 체험을 강조함으로써 교의는 종교의 본질 아니며 제 2차적인 것에 불과 하다고 주장

이와같이 종교가 형이상학과 도덕의 영역에서 완전한 이탈에서 있다고 보고 본질을 직관과 감정이며 그럼 과연 이것들이 종교적으로 분류가 가능 한가 ?


3. 직관과 감정으로서의 종교

1) 종교적 직관이란 ?

슐라이에르마허는 감정을 주관적 측면이라고하는데 반하여 직관은 객관 은 객관적이고 이들은 종교적 개념에 중추적 역활을 하고 있다.

실례로 만일 빛의 반사가 우리의 감각에 닿지 않은다면 물체의 작은 부분들이 우리의 손가락을 자극 하지않는다면 중력의 압력이 우리의 힘저항과 한계를 보여주지않는다면 우리는 직관과 지각을 하지못한다.따라서 직관과 감각은 사물의 본성 아니요 우리에 대한 사물의 행동인데 어떤 사물을 알거나 밑는것은 지관 밖의 영역인것이다.- 직관이 이루어지는 곳은 심정이라고 봄

2) 감정 이란 무엇인가 ?

감정은 ‘우주의 직접적인 영향’,혹은‘직접적인 자기의식’으로 생각하고 사물이나 인간이 직접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앞의 또는 인간위에 있는 어떠한 것에 의해서 의존적으로 가지게 되는 것이다.

4. 슐라이에르마허의 종교관의 모순점

감정을 종교의 본질로 봄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감성적인 감정과 종교적인 감정이 구별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자신이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종교가 주관적인 감각기관에 의해서만이 가능함을 엿보여 준다. 이러한 종교관의 몇가지 모순점이 있는 데,

첫째는, 종교를 인간의 내면적인 것에 국한 시켰다는 점

둘째는, 종교적 감정과 감각적인 감정을 구별하지 않았다는 점

세째로, 우주에 대한 직관이 하나의 계시라고 함으로써 우주의 직관과 신의 계시를 구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계시를 독자적으로 재해석함으로 인간 중심적인 종교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B.종교연구의 방법

1.보버민(G.Wobbermin)에 따르면 종교의 본질의 규정을 위해 전통적 3가지 방법이 사용 되고 있는데

첫째는 종교의 기원으로 부터 본질를 규정하는 방법이다.

종교의 발생을 알면 종교의 본질을 알수있다는 견해인데

발생에 대한 질문이 본질과 동일하다는 문제점과 태초시대

종교를 알수 잇는 확실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종교사적인 방법인데 종교의본질을 역사속에 존재했던 여

러 종교와 비교함으로 공동적인 특징을 종교의 본질이라고

완전한 객관성을 추구하는것이 이방법의 특징이다.

그러 종교적 공통성 진정 종교의 본질인지는 분간하기 힘

이든다.

섯째는 규범 개념의 방법인데 종교의 본질을 규정하기 위해 인간

자신의 확신에 따라 진정한 종교로 간주되는 종교에 따라

타종교의 판단근거를 하므로 자신의 종교적 신렴을 배재

하지 못한다는 맹점이 있다.

넛째는 이세가지 단점을 해결하고 제시한 보버민의 방법인데 종교

심리학적인 방법이다.

이방법의 근본적인 성격은 종교적인 경험의 관찰에서 종교

를 연구하는 데 있다.즉 독득한 종교심을 종교의 본질로

보는 것이다.

보버민은 슐라이에르마허는 이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함


2. 슐라이에르마허의 종교 연구 방법

인간정신의 모든 사물은 두관점에고찰또는 인식될수 있다고 보고

즉 인간의 내적인 본질로부터 고찰하는 것과 인간외적인것으러 부

터의 연구 방법이다.

후자는 당시 사람들의 종교에 대한 개념인데 종교를 경험적으로이

해하고 종교는 공허하더고 경멸 하였다.

종교는 외부적인 조건으로 발생 하는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부에 출

현하고 이다고 함으로 새로운 차원의 종교를 발전시켰다.


c .종교 와 교육


1. 종교관

슐라이에르마허는 인간의 종교를 아는것 행동하는것 느끼는 것으로

구성되어있다고 주장 17/8 세기의 독일계몽시대에서의 종교 연구는

도덕적 규범에서 찾으려고 한 결과 종교를 철학과 도덕에 예속 시

키려는 경향이 일어났다고함 - 종교의 독자성 확보에 노력

2. 종교 교육

종교의 본질을 우주에 대한 직관과 감정으로 파악하고 종교는 가르

칠수 있다는 전통적 견해와 암기위주의 교육방법을 거부 종교는 직

접적인 체험에 있다고 봄

3. 종교 교육에서의 종교 교육관

종교 차체를 교육을 통해서 가르칠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경

험을 통해서깨우쳐지고 교사는 단지 안내자의 역활 만을 할 뿐이

리고한다.

아이들의 상상력의 역활을 강조하고 그것을통해 종교에 자연스런

접근할수있고 그래서 계몽주의적 교육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억제하

고 금지함 으로 인해 종교적인 성장을 방해하고있다.

그는 개개인의 인간을 획일적이고 규준에 맞추는 교육이아니라 개

개인을 독특한 방법으로 교육시켜아한다고 봄으로 교육이론의 진보

주의자적 역활을 했다.



결 론


슐라이에르마허는 종교의 본질에서 계몽주의 종교관이 종교를 철학과 도덕의 범주안에 묶어놓은것에 반기를 들고 종교의 본질은 새로운차원에서 인간의 내재 되어 있는 직관과 감정 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종교관은 “모순의 동굴”이 있다. 종교의 본질을 내면화시킴으로서 보편성이 있느 종교가 아닌 주관적인 종교로 격하 시킨 느낌마져 든다

종교의 본질인 감정에 있어서도 종교적 감정과 감정적인 감정의 구분이 모호해서 단지 자신만이 그 구분을 할수있다고 함으로 종교를 주관적인 기본의 문제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가능 하게 했다.

종교의 연구 바법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연구방법의 난점을 수용하고 종교 심리학의 바법으로 연구함으로 인해 종교를 외부적 조건에서 발생 한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부에서 출현 했다고 주장 한다.

교육에 있어서는 전통적종교이론에 대한 가르침 암기위주의 교육 방법을 거부하고 종교의 직접적인 체험을 강조 헉 유아적 상상력이 종교 개발에 있어서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다시말해 종교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것 이라 하고 교사는 교육에 있어서 학생의 개체성을 중시하고 교육해야 한다.

개인의 발전의 위한 교육의 방법은 이론적이고 억압적인 교육방법이아님을 주장하여 교육이론의 진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1. 종교의 본질


F.Schleiermacher(1768-1834)의 <종교론>은 비신앙적인 교양인들에게 변증하기 위해 계몽주의 종교관의 비판을 출발점으로해서 서술한다. I.Kant와 같이 종교를 도덕으로 Hegel과 같이 형이상학에 종속시키는 입장을 비판하고, 종교가 직관과 감정임을 주장했다.


형이상학과 도덕은 종교와 동일한 대상, 즉 우주와 우주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갖고 있다. 바로 이러한 면이 형이상학과 도덕이 종교에 스며들게 되고, 종교에 속하는 것들이 형이상학과 도덕안에 부적당한 형태로 숨어있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종교는 이 양자와 구별되어야 하고, 그 대상 또한 다르게 다루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종교가 지닌 독특한 본질과 고유한 존재를 나타낼 수 있다고 말하면서 1)종교는 형이상학이 아니다. 2)종교는 도덕이 아니다. 3) 종교는 형이상학과 도덕의 혼합물이 아니다. 4)종교는 형이상학과 도덕개념의 병행관계에 대한 지각이 아니다. 5)종교는 교의가 아니다라고 비판한다.


그럼 종교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유한자에서 무한자(das unendlich), 즉 무한자의 사상(Abdruck)과 표현을 인식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 속에서 종교, 형이상학 그리고 도덕의 관계에 일관성을 견지하지는 핞는다. 처음에는 그가 종교의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극단적인 견해를 취했으나, 형이상학과 도덕으로부터 구별되는 종교의 영역을 분명하게 한 후에는, 이 양자의 관련성을 어느정도 인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종교의 본질을 <우주에 대한 직관과 감정>으로 파악하고 있다. 직관은 자기의식의 객관적인 측면이요, 감정은 주관적인 측면이라 하 수 있다. 이와의 관계는 직관에 우위를 두고 있기는 하나, 동시에 종교에 대한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감정이야 말로 종교를 지적인 신념이나 철학으로부터 구별하고 있는 살아 있는 종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는 직관(Anschauung)이 종교의 본질과 한계를 규정하는 주요한 것이라 한다. 이에 대해서 그는 “직관은 직관하는 자에 대한 직관되는 것의 영향에서, 즉 직관되는 본원적이며 독립적인 행위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직관하는 자는 직관되는 대상을 그것의 성질에 따라 받아들이며, 총괄하며,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직관을 종교적인 직관에 연결시커 종교적인 직관은 우리에 대한 우주의 행동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 종교적인 직관은 우주에 대한 해석이기는 해도 능동적이고, 사변적이고, 변증적이지 않고 수동적이며 관조적이다. 이것은 또한 전 우주를 하나의 체계로 이해하는 것이며, 사건들을 그 체계안에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는 모든 직관이 종교의 일반적인 형상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 본질상 감정과 결합되어 있다고 한다. 그 결합은 직관의 내용에 의해 감정이 결정되는 결합이다.

그럽 감정이란 무엇인가? 그는 감정을 <우주의 직접적인 영향>, <직접적인 자기의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은 사물이나 인간이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닌, 인간앞에 또는 인간위에 있는 어떤 것에 의해서 의존적으로 가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감정의 강도가 종교의 정도를 결정한다. 그러나 그 자신은 종교적인 감정과 감각적인 감정을 뚜렷하게 구별하지 않았는데 이는 인간의 감정적인 본성을 종교의 토대로 강조한 결과 때문에 나타난다.

이 직관과 감정의 관계성에 대해 그는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이 우주의 체험으로 나타낼 수 있는 한 공동적 사건(einheittiche Sache)의 양면”이라 말한다. 이는 직관과 감각의 통일성을 말하는 것인데, 대립물의 통일이라는 것의 이해는 정다하다고 보겠다.


그의 종교철학사적인 공헌은 도덕화 되고, 이성화 되었던 계몽주의 시대의 종교에 반기를 들고 직관과 감정을 종교의 본질로 주장하여 종교의 독립적인 위치와 고유의 가치를 확보한 것이다.

1) 인간의 감정과 직관을 종교의 본질로 규정한 것은 Kant나 Hegel과 마찬가지로 일방적인 것이다.

2) 종교적인 감정과 감각적인 감정을 명확히 구별하지 않았으므로 종교를 주관적인 기분의 문제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가능하게 했다.

3) 그는 우주에 대한 직관이 하난의 계시이다. 그러나 <자기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우주의 직관과 신의 계시는 구별되어야 하며, 이러한 그의 독자적 재해석은 인간 중심적인 종교관을 형성하게 한다.



2. 종교 연구의 방법


그는 <종교론>에서 명확한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고, 방법론의 원칙은 있으나, 세부사항은 없는 듯 하다. 먼저 G.Wbbermin의 <종교의 본질>에 기초해 종교본질의 연구방법을 살펴보자.


종교의 본질에 대한 해명을 단지 종교기원의 연구에서 얻을 수 있다는 신념에 근거한다. 그러나 발생에 관한 이해는 본질에 대한 이해와 동일시 할 수 없고, 이 방법은 종교발생의 태고시대에 대한 이해가 정확하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으나, 이 가정은 불가능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은 도움이 된다.


역사상에 존재했던 종교들을 비교함으로써 본질을 규명하려는 것이다. 즉, 역사적 종교의 공통분모를 종교의 본질로 간주한다. 완전한 객관성을 추구하는 특색속에서, 전체 종교사를 공평하게 추구하는 공적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인 종교의 공통성이 관습적인 것인지, 종교적인 것인지 구별할 수 없다.


자신의 확신에 따라서 진정한 종교로 간주되는 종교에 근거해 종교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이다. 이 방법의 옹호자들은 아무리 객관성을 추구해도 그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고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의 연구는 어떤 신념을 배제해야 한다.


앞의 세 방법들은 정당한 진리를 포함하고 있으나 어떤 통일적인 전체의 방법에로의 결합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상호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종교심리학적방법은 앞의 세가지 장점을 포함한 반면, 편파성과 결점을 피하는 방법이다. 이방법의 근본적인 성격은 종교적인 경험의 관찰에서 종교를 연구하는데 있다. 그리고 종교생활의 표현양식의 공통적인 근본동기에서 종교의 본질을 고찰한다. 이러한 면에서 보버민은 Schleiermacher가 종교심리학적 방법을 사용햇다고 주장한다. 즉 그는 종교와 같은 정신현상은 인간본성의 심층에 그 출발점과 중심점을 갖고 있으므로 여기에서 종교의 개념이 발견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또한 그는 종교사적인 자군에 의해 그의 종교이론을 전개한다. 결국 그의 종교방법론은 명료하지는 않으나 경험적인 사고와 사변적인 사고를 병행했다.



3. 종교와 교육


그의 교육사상은 그의 교육학 강의록 유고, 설교집 그리고 <종교론> 제3장 “종교의 교육”에서 발견된다.

그는 종교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며, 계발되는 것이기에 전통적인 교육방법과 암기위주의 방법을 거부하고 직접적인 체험을 강조한다.


철학은 존재하는 것의 근거를 추구하여 그 궁극적인 원인을 밝히는 것이며, 도덕은 의무의 체계를 전개하며, 행위를 명령하거나 금지하는 것이다. 종교는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아닌 직접 의식하며 느끼는 것이다. 즉 종교는 우주 자신의 표현과 행위 안에서 경건하게 우주에 귀 기울이는 수동적인 태도요, 감동으로 직관과 감정으로 종교의 본질을 파악한다. 그리고 직관과 감정은 본질상 결합되어 있다.


그는 종교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깨우쳐지는 것이므로 종교를 가르칠 수는 없으나 그것을 전하고 깨닫게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교리문답이나 찬송가의 암기를 배격하고, 자기의 종교적 삶을 보여줌으로써 경이스럽고 초자연적인 것을 동경하는 젊은 마음을 일깨워주려고 했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의 자각을 위한 조력자로 규정한다. 종교의 경험이 학생에게 발견되면 교사의 역할은 종료되는데 이는 학생 안에서 소생한 종교가 자유롭게 활동하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경이롭고 초자연적인 세계에 대한 아이들의 동경심을 높이 평가해서 종교교육에 있어서 상상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 상상력이 현상계 밖의 초월적인 것을 직관하고 감각하는 것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의 합리적 분석과 이해라는 계몽주의 교육관을 비판하는데, 이는 <설명과 이해의 습관>이 상상 속에 있는 <계몽과 발견>의 정신을 도외시하고, 그들이 의문시하는 모든 것을 <직관>이 아닌, <하고의 대상>으로 전환시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학생의 개체성을 중시했다. 그는 보편적 인간에게 적용되는 제도적인 교육을 반대하고, 각 개인의 특수성에 맞는 운명에 맡기는 방안을 제시 했다.


F.Schleiermacher는 인간의 정신을 Knowing, Doing, Feeling 으로 구성되었다는 신념에 근거하여, 당시의 철학과 도덕에 종속된 계몽주의 종교관을 부정하고, 감정에서 종교의 본질을 규명하여 종교의 독자성을 확립했다. 이런 종교관에서 종교교육도 배우는 것이 아닌, 깨닫는 것이라 확신하여 암기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비판하고, 스스로 자각하는 계발식 교육을 제시한다. 따라서 교사는 자각에 도움이 되는 실재를 보여주는 조력자이다. 직접적인 체험을 강조하는 그의 교육관은 모라비안 경건주의의 영향으로 생긴 것 같다. 그는 교육방법에 있어서 상상력을 강조했는데 이는 상상력이 종교에 접근케하고, 깨닫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가 종교교육에 있어서 상상력.개인.자유를 중시한 것은 낭만주의의 영향때문이며, 이러한 면은 그를 진보주의자의 대열에 서게 한다.



끝으로, 이 책을 읽고 느낀점을 기술한다.

술라이에르마허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계몽주의가 무너지고 이성의 한계성에 대한 자각으로 경험론이 등장하였고, 합리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낭만주의가 등장하여 베를린을 중심으로 발전하던 시기였는데 그는 칸트와 같이 종교를 도덕을으로 환언하거나 헤겔과같이 종교를 형이상학에 종속시키는 입장을 비판하고 부정하는 한편 종교가 직관과 감정임을 주장하는 독창적인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종교의 독자성을 확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의 생각이라면 좀 당돌하겠지만 종교의 독자성만을 강조하고 그 종교에 수반되는 도덕성과 형이상학적인 측면을 배제한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가 아니라 일종의 종교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슐라이에르마허의 종교관


A 종교의 본질


1. 서 론

슐라이에르마허는 도덕적이고 이성화된 즉 계몽주의적 종교관에 반기를 들고 직관과 감정을 종교의 독립적 위치와 고유의 가치를 확보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종교를 형이상학이고 -존재의 근거를 확인 하고 체계화 시키는 학문 - 도덕적인 -인간의 행위를 규정함 - 것으로 종교를 이해하고 있었다.물론 종교가 직관과 감정이라고 주장함으로 인해 많은 모순을 보여주지만 당시의 계몽주의적 사고를 비판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가진다.


2.계몽주의적 종교의 비판

슐라이에르마허는 비판적입장에서 부정적용법을 사용하여 종교의 본질이 직관과 감정임을 밝히고 있다.

첫째 종교는 형이상학이 아니다

형이상학은 우주를 분류하여 각기 본질에따라 구분하고 존재의 근거

추구하지만 종교는 본질을 정립하거나 궁극적인 원인을 탐구 영원한 진리 를 선언 해서는 안된다고봄

둘째 종교는 도덕이 아니다.

도덕이 추구하는 선과 종교가 추구하는 선이 다를때도있으므로 종교가 도덕적인 해위와 동일시 될수없다고 함

섯째 종교는 형이상학과 도덕의 혼합물이 아니다.

당시 사람들이 신개념을 형성하기위해서 형이상학적인 종교의 개념과 도덕적인 선의 개념을 결합시고있음에 반기를 들고 있다.

넛째 종교는 형이상학과 도덕개념의 병행관계에 대한 자각이 아니다

다섯째 종교는 교의가 아니다.

그는 종교에대한 직접적인 체험을 강조함으로써 교의는 종교의 본질 아니며 제 2차적인 것에 불과 하다고 주장

이와같이 종교가 형이상학과 도덕의 영역에서 완전한 이탈에서 있다고 보고 본질을 직관과 감정이며 그럼 과연 이것들이 종교적으로 분류가 가능 한가 ?


3. 직관과 감정으로서의 종교

1) 종교적 직관이란 ?

슐라이에르마허는 감정을 주관적 측면이라고하는데 반하여 직관은 객관 은 객관적이고 이들은 종교적 개념에 중추적 역활을 하고 있다.

실례로 만일 빛의 반사가 우리의 감각에 닿지 않은다면 물체의 작은 부분들이 우리의 손가락을 자극 하지않는다면 중력의 압력이 우리의 힘저항과 한계를 보여주지않는다면 우리는 직관과 지각을 하지못한다.따라서 직관과 감각은 사물의 본성 아니요 우리에 대한 사물의 행동인데 어떤 사물을 알거나 밑는것은 지관 밖의 영역인것이다.- 직관이 이루어지는 곳은 심정이라고 봄

2) 감정 이란 무엇인가 ?

감정은 ‘우주의 직접적인 영향’,혹은‘직접적인 자기의식’으로 생각하고 사물이나 인간이 직접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앞의 또는 인간위에 있는 어떠한 것에 의해서 의존적으로 가지게 되는 것이다.

4. 슐라이에르마허의 종교관의 모순점

감정을 종교의 본질로 봄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감성적인 감정과 종교적인 감정이 구별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자신이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종교가 주관적인 감각기관에 의해서만이 가능함을 엿보여 준다. 이러한 종교관의 몇가지 모순점이 있는 데,

첫째는, 종교를 인간의 내면적인 것에 국한 시켰다는 점

둘째는, 종교적 감정과 감각적인 감정을 구별하지 않았다는 점

세째로, 우주에 대한 직관이 하나의 계시라고 함으로써 우주의 직관과 신의 계시를 구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계시를 독자적으로 재해석함으로 인간 중심적인 종교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B.종교연구의 방법

1.보버민(G.Wobbermin)에 따르면 종교의 본질의 규정을 위해 전통적 3가지 방법이 사용 되고 있는데

첫째는 종교의 기원으로 부터 본질를 규정하는 방법이다.

종교의 발생을 알면 종교의 본질을 알수있다는 견해인데

발생에 대한 질문이 본질과 동일하다는 문제점과 태초시대

종교를 알수 잇는 확실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종교사적인 방법인데 종교의본질을 역사속에 존재했던 여

러 종교와 비교함으로 공동적인 특징을 종교의 본질이라고

완전한 객관성을 추구하는것이 이방법의 특징이다.

그러 종교적 공통성 진정 종교의 본질인지는 분간하기 힘

이든다.

섯째는 규범 개념의 방법인데 종교의 본질을 규정하기 위해 인간

자신의 확신에 따라 진정한 종교로 간주되는 종교에 따라

타종교의 판단근거를 하므로 자신의 종교적 신렴을 배재

하지 못한다는 맹점이 있다.

넛째는 이세가지 단점을 해결하고 제시한 보버민의 방법인데 종교

심리학적인 방법이다.

이방법의 근본적인 성격은 종교적인 경험의 관찰에서 종교

를 연구하는 데 있다.즉 독득한 종교심을 종교의 본질로

보는 것이다.

보버민은 슐라이에르마허는 이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함


2. 슐라이에르마허의 종교 연구 방법

인간정신의 모든 사물은 두관점에고찰또는 인식될수 있다고 보고

즉 인간의 내적인 본질로부터 고찰하는 것과 인간외적인것으러 부

터의 연구 방법이다.

후자는 당시 사람들의 종교에 대한 개념인데 종교를 경험적으로이

해하고 종교는 공허하더고 경멸 하였다.

종교는 외부적인 조건으로 발생 하는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부에 출

현하고 이다고 함으로 새로운 차원의 종교를 발전시켰다.


c .종교 와 교육


1. 종교관

슐라이에르마허는 인간의 종교를 아는것 행동하는것 느끼는 것으로

구성되어있다고 주장 17/8 세기의 독일계몽시대에서의 종교 연구는

도덕적 규범에서 찾으려고 한 결과 종교를 철학과 도덕에 예속 시

키려는 경향이 일어났다고함 - 종교의 독자성 확보에 노력

2. 종교 교육

종교의 본질을 우주에 대한 직관과 감정으로 파악하고 종교는 가르

칠수 있다는 전통적 견해와 암기위주의 교육방법을 거부 종교는 직

접적인 체험에 있다고 봄

3. 종교 교육에서의 종교 교육관

종교 차체를 교육을 통해서 가르칠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경

험을 통해서깨우쳐지고 교사는 단지 안내자의 역활 만을 할 뿐이

리고한다.

아이들의 상상력의 역활을 강조하고 그것을통해 종교에 자연스런

접근할수있고 그래서 계몽주의적 교육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억제하

고 금지함 으로 인해 종교적인 성장을 방해하고있다.

그는 개개인의 인간을 획일적이고 규준에 맞추는 교육이아니라 개

개인을 독특한 방법으로 교육시켜아한다고 봄으로 교육이론의 진보

주의자적 역활을 했다.


결 론


슐라이에르마허는 종교의 본질에서 계몽주의 종교관이 종교를 철학과 도덕의 범주안에 묶어놓은것에 반기를 들고 종교의 본질은 새로운차원에서 인간의 내재 되어 있는 직관과 감정 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종교관은 “모순의 동굴”이 있다. 종교의 본질을 내면화시킴으로서 보편성이 있느 종교가 아닌 주관적인 종교로 격하 시킨 느낌마져 든다

종교의 본질인 감정에 있어서도 종교적 감정과 감정적인 감정의 구분이 모호해서 단지 자신만이 그 구분을 할수있다고 함으로 종교를 주관적인 기본의 문제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가능 하게 했다.

종교의 연구 바법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연구방법의 난점을 수용하고 종교 심리학의 바법으로 연구함으로 인해 종교를 외부적 조건에서 발생 한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부에서 출현 했다고 주장 한다.

교육에 있어서는 전통적종교이론에 대한 가르침 암기위주의 교육 방법을 거부하고 종교의 직접적인 체험을 강조 헉 유아적 상상력이 종교 개발에 있어서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다시말해 종교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것 이라 하고 교사는 교육에 있어서 학생의 개체성을 중시하고 교육해야 한다.

개인의 발전의 위한 교육의 방법은 이론적이고 억압적인 교육방법이아님을 주장하여 교육이론의 진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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