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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교회사 -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미국에서의 발전 ( 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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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미국에서의 발전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기는 도처에서 교회의 성장도 가져왔다. 프랑스에서는 수도자들이 그들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미 평신도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국가는 교회재산의 관리를 신설된 '교구위원회'에 넘져 주었다. 이제 수많은 새 성당이 세워지고, 전국이 가톨릭 학교 망으로 덮이게 되었다. 관연 전례운동과 성서운동은 늦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특히 파리에 '전례사목센터'가 설립된 때부터(1943) 비상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때 지나친 국가주의가 위험을 나타내는 듯했으나 1926년 비오 11세의 금지령으로 제거되었다. '가톨릭 액션'은 1927년 이래 더욱 활발해졌다. 그 목표는 프랑스를 다시 개종시키고, 환경을 그리스도교화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위해 많은 새로운 직업단체와 청년단체들이 활동하였다. 성공은 지대하였다. 제2차 대전 후 프랑스는 가톨릭 대정당과 그리스도교적 노동조합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활발한 사목활동을 통해 전례와 성서운동에서 표준이 되고 있고, 그의 신학자들을 통해 가톨릭신학에서 영도적인 구실을 하고 있다.

 

가톨릭 운동(라틴어: Actio Catholica) 또는 가톨릭 액션(영어: Catholic Action)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평신도들이 사회적으로 가톨릭 정신 선포를 장려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든 평신도의 조직적 사도직에 속하는 여러 활동과 그러한 기독교 가톨릭 운동은 특히 19세기 스페인, 이탈리아, 바이에른, 프랑스, 벨기에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탈리아와 서독 등지에 대두된 공산주의 이탈리아에서는 1922년에 설립된 가톨릭 액션이 파시즘의 정권하에서도, 또 전쟁후기에 있어서 특수한 의미를 획득하였다. 라테라노 조약에 의한 '로마문제'의 해결과 1929년 1월의 정교조약은 더욱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였고, 곧 그것이 전 교회생활에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영국에서는 가톨릭신도의 수가 날로 증가하였다. 사제 성소율이 좋았고 오늘날에도 놀란만큼 좋다. 가톨릭의 뛰어난 학교제도와 명망있는 가톨릭 신문은 영국의 가톨릭교를 유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평신도 사도직은 아직 크게 발전되지 않았다. 전례의 쇄신도 시초에 불과하다.

 

북합중국에서는 독립선언(1776)으로 보장된 종교의 자유가 19세기에 있어서 가톨릭 교세의 높은 신장을 초래하였고, 20세기에 와서도 지속되었다. 오늘날 전 인구의 5분의 1이 가톨릭이다. 미국 가톨릭 신도의 희생적 정신과 활동은 특히 가톨릭의 초등하교와 고등학교의 광범한 발전에서 확증되었다.최소한 23개의 가톨릭대학이 설립되었고, 국가의 보조금 없이 신도들 스스로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결사 자유의 보장은 수도회에 도움이 되었다. 제2차 대전 이래 북미 선교사들의 활동도 아주 중요해졌다. 이미 19세기에 가톨릭 포교의 새로운 전성기의 기초가 마련되었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가 붕괴된 후 1622년에 설립된 로마의 포교성성이 결정적으로 세계포교의 최고 감독을 이어받았다. 많은 새 수도회가 창설되었고 또한 새 포교지역을 담당하였다. 아프리카, 인도, 중국, 남태평양의 도서들이 주요 포교지가 되었다. 제1차 대전 이후 특히 본방인 교회의 설립과 그 강화가 중시되었다. 1926년 최초의 본방인 주교들이 성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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