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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 1. 현대인 영적 갈증 채워줄 물 '여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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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 영적 갈증 채워줄 물 '여기있다'


2004년 성탄절 직후 지구를 강타한 남아시아 지진 해일 참사는 첨단과학시대의 21세기 인류에게 새삼'두려움'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모르긴 몰라도 당시 참변 과정을 포착한 비디오 기록물 영을 보았던 시청자들 반응은 그야말로 숙연(肅然) 그 자체였으리라.

덮쳐오는 자연의 힘 앞에 속수무책인 인간의 무력, 그리고 눈앞에 몰려오는 죽음의 노도(怒濤)를 바닷가 낭만거리로 여기다가 순식간에 익사했을 만큼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

 이번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무한(無限)을 꿈꾸던 인간이 유한(有限)을 새삼스럽게 절감하는 기회가 되었다. 생명을 창조하고 우주를 정복하려는 야망을 품고 있던 21세기 인류도 자연의 대재앙 앞에서는 겸허해 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온몸을 휘감는 저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창조주 하느님을 생각하도록 해주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그렇게 세상물정을 잘 알거든 말해 보아라. 누가 이 땅을 설계했느냐? 그 누가 줄을 치고 금을 그었느냐? … 바다가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 그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욥기 38,4-9) 

 다음으로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상들의 겉모습에 속지 않고 그 속모습 곧 그 실상(實相)을 볼 수 있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값진 가르침을 얻었다. 그동안 우리는 일상사를 얼마나 자주 피상적으로 판단해 왔으며 또 얼마나 자주 근시안적으로 살아왔는가. 사실이지 우리는 얼마나 자주 죽음의 징조를 죽음의 징조로 보지 못하고 생명의 길을 생명의 길로 여기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며 살고 있는가.

 수십만이 넘는다는 희생자들에게 주님의 가호를, 그 유족들에게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위로를 삼가 빌어드린다. 그리고 그 희생의 대가로 얻은 깨달음을 귀히 여기고자 한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기이한 현상이 하나 전개되고 있다. 이른바 탈세속화(脫世俗化: desecularization)라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곧 사람들의 세속적 관심이 점점 영적 관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이목을 끄는 대목이다. 한때는 세속화(世俗化)라는 말이 유행처럼 쓰였던 적이 있었다. 이는 20세기 후반기에 사람들이 점차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면서 과거에는 종교 및 교회에 집중했던 관심을 점점 세속에로 옮겨 가고 있음을 일컫던 말이었다. 동시에 신앙생활 자체를 점점 현세구복적으로 영위해 가고 있음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뒤집혀 역조(逆潮)의 물결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어떤 이들은 21세기를 '영성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는 특히 한국사회에서 이런 조류가 눈에 띄게 일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이 한창 고조되고 있던 20세기 후반기에 한국인은 현세구복과 물질의 풍요를 위해 종교생활을 하던 성향이 짙었다. 이때는 저마다에게 성공, 재산, 출세, 사회적 지위 등이 삶의 목표였다. 이 시기 사람들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종교의 힘이 크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기존 신앙생활을 영위하거나 종교에 입문하거나 했다. 

 그러나 20세기 한국인들은 이것들에서 만족과 행복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타락과 고갈을 체험했다. 사람들은 물질의 과도한 추구로 말미암아 정신적 황폐 증상, 인간 존엄성 실추, 환경 파괴 등 심각한 문제들만 더 조장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원하던 행복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상처투성이인 채 정신적 공허에 시달리며 갈증만 더 심해갔다.

 이런 배경에서 21세기 한국인들은 이제 새로운 동기에서 종교를 찾고 있다.
 첫째로 내적 평안을 위해 종교를 찾는다. 승전보를 기약하며 도도하게 전쟁터에 나갔던 용사들이 저마다 상처를 안고 지친 영육(靈肉)을 질질 끌면서 치유와 안식, 심기일전과 재충전을 꿈꾸며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 그 모습이 바로 신앙생활에 기대어보려고 종교를 찾고 있는 현대인 모습이다.

요컨대 현대 종교인이 갈구하고 있는 것은 현세적 축복이나 내세의 구원이 아니고 깊은 영성적 체험에서 오는 평안이다. 허무한 삶에서 느끼는 불안, 갈등, 위기감, 정체성 실종 등을 일소하는 것이 우선적 욕구인 것이다.

 둘째로 현대인들은 너무 고독해서 종교를 찾는다. 마음 터놓고 진정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웃을 찾아 종교를 기웃거린다. 삶이 분주하고 만남이 요란할수록 점점 고독의 늪은 깊어만 가는 것이 현대인 실상이다.

그래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실존적 고독을 벗어나고자 소속감, 아늑함, 가족적 유대를 얻을 수 있는 공동체를 찾아 종교의 문을 두드린다. 이를 우리는 '유랑하는 종교심'이라 부를 수 있다. 여기저기 더 만족스런 대안을 찾아서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영적 목마름이 점점 심해져 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인 나아가 인류의 현실임에는 틀림이 없다.
 서로 무관한 듯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위의 두 화제(話題)들에는 이미 앞으로 연재할 글의 실마리가 함의되어 있다.

 크게 말할 때,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종교심(宗敎心)이 21세기 정보사회에서는 어떻게 발로(發露)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해답은 어떠해야 할 것인지 구명(究明)하는 것을 주된 과제로 삼을 것이다.

 가급적이면 교의(敎義)신학적 관점이 아닌 사목(司牧)적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다. 오로지 이 시대 목마른 양들을 야훼의 '파란 풀밭'(시편 23)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소박한 사랑을 품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 볼 것이다.

 전반적으로 평화방송 TV강의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 「여기에 물이 있다」' 내용을 근간으로 한 지상(紙上) 강의 형식이 될 것이다. 바라건대 말로 하는 강의의 현장성 위에 글로 쓰는 강의의 논리력이 합하여 좋은 열매를 맺었으면 한다.

 다소 미진함이 있더라도 독자들께서 너른 사랑으로 품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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