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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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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이야기]14- 우리를 변화시키는 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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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변화시키는 성서

 

 

요즈음 매주 월요일 저녁이면 춘천엘 간다. 춘천교구 명도학당 2기생들에게 「여기에 물이 있다」를 강의하기 위해서다. 장소는 죽림동 주교좌성당 말딩회관이다. 명도학당은 장익 주교님이 신자들에게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강의하실 때 붙인 이름인데 그것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정규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에서 꼬박 출석을 하는 형제님 자매님들도 있다. 신부님들도 수녀님들도 오시어 응원을 해주신다. 진지하게 청강하는 모습들을 보노라면 구약성서에 나오는 '남은 자'들 얼굴을 보는 듯 대견(?)스럽게 느껴진다. 간식거리를 준비하시어 쉬는 시간이면 꼭 챙겨주시는 정성에서는 따뜻한 인정이 묻어나온다.

말딩회관 맞은 편에는 교우가 운영하는 감자탕집이 있다. 어느날 너무 일찍 당도하여 시간 보낼 곳이 마땅치 않았던 터에 신부님들을 만나 그 집엘 함께 가게 되었다. 그날 신부님들이 얼마나 맛있게 드시던지 평소 외식을 일체 못하던 필자이지만 나중에 일부러 시식을 해봤다. 막 문을 닫으려던 참에 늦손님을 맞은 주인 자매님은 식사를 마칠 때까지 옆에서 말동무가 되어 주셨다. 얘기를 들어보니 음식점 말고 다른 사업도 벌여 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을 쪼개어 살고 계셨다. 필자가 감동을 받은 것은 그런 바쁘고 피곤한 중에도 매일매일 성서를 필사하고 계시다는 말이었다. 서울에 직장을 두고 있는 아들이 자정 가까이에나 귀가를 하는데 그 아들이 올 때까지 TV를 일체 안보며 무슨 일이 있어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서를 필사한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말상대를 해드렸지만 그 얘기를 들으면서 얼굴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거룩한 어머니, 치열한 구도자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온화하게 미소를 짓는 표정이었지만 자매님은 준엄하게 일갈하시는 듯했다. "시간이 없어서 성서를 못 읽는다는 말은 핑계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장군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은 한 전투에서 적이 쏜 탄환에 왼쪽 가슴을 맞았다. 쓰러지는 그를 참모들이 부축했다. 죽은 줄만 알았던 그는 마치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부스스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총탄을 맞은 갑옷 부위를 더듬다가 탄환을 찾아내었다. 이 탄환은 갑옷 속을 뚫고 들어가다가 그가 늘 몸에 지니고 다니던 성서에 꽂혀 있었다. 탄두가 더 이상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멈춰선 부분은 전도서 12장 1절이었다고 한다. 거기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돼 있었다.

"그러니 좋은 날이 다 지나고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구나!' 하는 탄식 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오기 전, 아직 젊었을 때에 너를 지으신 이를 기억하여라"(전도 12,1).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 크롬웰 장군이 그랬듯이 늘 성서를 가까이 지니고 읽으면 어떤 형식으로든지 은총이 크다는 사실이다. 물론, 크롬웰 장군이 방패막이로 성서를 지니고 다녔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미 평소에 성서 말씀을 읽으면서 거기서 용기와 지혜 그리고 위로와 격려를 얻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뜻밖에도 성서가 그의 목숨을 구해 주는 기적의 도구로 작용했던 것이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주시는 방법이다. 당신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둘째, 탄두가 멈춰선 위치의 성서 말씀이 주는 메시지가 신선한 자극을 준다. "아직 젊었을 때에 자신을 지으신 이를 생각하라! 때를 놓치고서 땅을 치지 않도록 일찌감치 하느님을 우러르고 그 하느님 뜻을 조심스레 물으며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결국 이 두 가지 교훈은 같은 내용을 가리킨다. 항상 성서를 곁에 두고 읽으며 묵상하라는 것이다. 어디를 가든 품에 지니고 다니면서(첫째 것), 하느님과 하느님 말씀(둘째 것)을 기억하며 그 가르침대로 살라는 것이다. 그것이 참으로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성서를 읽으면 무엇보다도 우리 삶이 변화된다. 성서를 규칙적으로 읽거나 체계적으로 공부한 신자들 경험담을 모아 보면 '한마디로 성서는 삶을 변화시킨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신앙이 무미건조해서 갈등하던 신자들이 성서 읽기나 공부를 통해서 신앙의 활력을 얻는 경우를 수없이 보았다. 성서를 읽으면 자신의 삶이 바뀔 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을 바라보는 눈도 바뀌게 된다. 평범한 것들 속에서 기적을 발견하는 혜안(慧眼)으로 말이다.

이렇듯이 성서를 읽으면 우리 삶에 여러 가지 좋은 일이 생긴다. 우리는 그 효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성서 말씀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 "삼가 말씀을 따라 살면 행운의 열쇠를 얻고 야훼를 믿고 살면 행복의 문이 열린다"(잠언 16,20).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가장 행복할지 알고 계시다. 그러기에 하느님 말씀을 따름이 바로 행복의 비결이다.

둘째, 성서 말씀은 우리에게 인내와 희망을 갖게 해준다. "우리는 성서에서 인내를 배우고 격려를 받아서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로마 15,4). 성서 말씀은 좌절에 처한 사람에게 희망을 준다. 이는 성서 안에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곤경을 이겨낸 숱한 믿음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체험담을 들려주는 증언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말씀의 힘으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적을 만났다.

셋째, 성서 말씀은 우리가 갈 길을 비추어 준다. "당신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나의 길에 빛이옵니다"(시편 119,105).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혼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 말씀의 빛으로 그것들을 비춰 보자. 옳고 그름이나 우선순위를 식별하는 데 큰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넷째, 성서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 준다.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로마 10,17). 무엇보다도 믿음이 쑥쑥 자라나야 하느님을 깊이 만날 수 있다. 큰 믿음의 사람이 되려면 말씀을 자주 들어야 한다.

말씀은 참으로 '순수하고 신령한' 양식이다.

"갓난아이처럼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으로 자라나서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1베드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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