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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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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15-생명의 정보,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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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주는 하느님 말씀 성서
 
근래 몇년간 지속되고 있는 한국경제의 부진 속에서 삼성전자 홀로 연간 12조 순익을 올렸다는 소식은 '첨단정보'의 가공할 가치를 유감없이 드러내주었다. 이제 정보, 특히 고급정보는 돈이요 힘이다.

필자는 B형 만성간염을 앓고 있다.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정확한 정보에 근거한 식이요법 식단을 만들어 그것에 의존하여 지금까지 현상유지를 해왔다. 그나마 그만한 게 큰 은총이라 여기고 있다. 하지만 주변에서 같은 병명으로 함께 고생하던 적지 않은 지인들이 그만 세상을 떠났다. 대부분 '정확한 정보'가 아닌 주변사람들의 '뭐가 좋더라'는 식의 권고를 따르거나, 먹거리의 중요성을 몰라서 그렇게 됐던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려도 무방할 것이다. 정보, 특히 정확한 정보는 건강이요 생명이다.  

세상에는 온갖 정보들이 나돌아 다닌다. 그래서 현대인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더 많은 그리고 더 값진 지식을 얻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결국, 정보가 운명을 가름한다. 영적으로든 육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제대로 만나면 살고 잘못 만나면 죽는다.  

과연 나는 무엇을 배워야 하고 무엇을 알아야 할까? 이는 각자가 자신의 전공 및 삶의 영역에서 줄곧 물어야 할 물음이다. 이 물음과 관련된 풍자(諷刺) 하나가 있다.

한 선비가 강을 건너게 해주고 있는 사공에게 으스대며 물었다.

"자네 글을 지을 줄 아는가?"/ "모릅니다."/ "그럼 세상사는 맛을 모르는구먼."// "그러면 공맹(孔孟)의 가르침은 아는가?"/ "모릅니다."/ "저런, 인간의 도리를 모르고 사는구먼."// "그럼 글을 읽을 줄 아는가?"/ "아닙니다. 까막눈입니다."/ "원 세상에! 그럼 자넨 왜 사는가?"

이 때 배가 암초에 부딪혀 가라앉게 됐다. 이번엔 반대로 사공이 선비에게 물었다.

"선비님, 헤엄치실 줄 아십니까?"/ "아니, 난 헤엄칠 줄 모르네."/ "그럼 선비님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많은 정보를 향유하고 있는 현대인을 꼬집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선비'의 모습은 어쩌면 많은 지식을 자랑하며 살지만 정작 인생의 '암초'에 부딪쳤을 때 '살아남는 법'은 모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지 않을까? 설령 세상 지식은 모자라더라도 살아남는 법을 아는 사공이 오히려 실제적 지혜를 가진 자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언젠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던 것이 아닐까?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태 16,26).

세상에 아무리 중요한 일이 많더라도 먼저 '자기 목숨을 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죽더라도 살아남을 길을 제시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

이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언하고 있는 것이 성경이다. 성서 전체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됐다. 구약은 신약으로 완성됐고 구약에서 전개된 모든 사건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사건에로 모아졌던 것이다. 결국, 성서 전체는 단지 하나의 책이며, 그 하나의 책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성경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알고 파고들거니와 그 성경은 바로 나를 증언하고 있다"(요한 5,39).

이런 이유로 예로니모 성인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던 것이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날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성경을 읽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탁월한 지식"(필립 3,8)을 얻도록 간곡히 그리고 특별히 권고한다.

베드로 사도의 고백은 오늘 우리 모두의 고백이 돼야 한다.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요한 6,68)

우리는 언제든 성경 말씀을 떠나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서말씀을 읽는 것이 바람직할까? 여러 가지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알폰소 성인(1696-1787년)이 우리에게 주는 조언에 귀 기울여볼까 한다. 그는 조용한 곳을 찾아 기도하려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수칙을 가르쳤다.

 ─모든 것을 가지고 들어가라(intrate toti)
 ─혼자 머무르라(manete soli)
 ─다른 사람이 되어 나가라(exite alii)

 
성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성경을 읽을 때 그저 호기심에서 기웃기웃하는 심정으로 성경을 읽으면 안 된다. 성경 시대, 성경의 장소로 들어가서 그 시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성경 안으로 들어가되 '모든 것'을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성경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삶의 모든 것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그들 가운데 얽혀 있는 문제들을 말씀의 비추임으로 풀 수 있다.

 
그리고 말씀 안에 '혼자' 충분히 머물러야 한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고요 속에서 오로지 나와 성경 속 주인공들 사이, 그리고 나와 하느님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영혼의 깊은 곳에서 말씀을 온전히 만나게 되면 변화가 생긴다. 부정적 자아가 점점 긍정적 자아로 바뀐다. 이리하여 온전히 치유받고 '다른 사람이 되어' 성경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대인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바빠서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바쁘지 않은 시간, 또는 여가 시간에 성경을 읽으려고 한다면 성경 읽기에 성공할 수 없다. 성공하려면, 하루 생활 계획의 첫 자리에 성경 읽기를 위하여 하느님께 봉헌할 시간을 정해 놓고 꼭 지키도록 힘써야 한다. 매일 신문, TV를 보는 시간보다 먼저 정하고 가급적이면 다른 이의 방해를 받지 않도록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시간을 15~30분 정도만 내어서 읽는다면 1년에 신ㆍ구약성서을 한번은 읽을 수 있다.

 시작을 위한 가장 좋은 때는 지금이다.

 "지금이 바로 자비의 때이며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2고린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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