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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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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16 - 미사의 은총 백배 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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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중 찾아오는 미사의 은총
 
 미사의 은총 백배 누리기. 이는 2005년 '성체성사의 해'를 기하여 바오로딸 수녀님들 제의로 만들게 된 '미사의 은총'에 대한 테이프 강의 두번째 표제였다. 신자들이 '미사'에 대해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르고 있는 숨은 은총이 너무 많기에 그것을 담아내기 위해, 좀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제목을 달아봤던 것이다. 그 무진장한 은총에로 독자들을 초대하기 위해 이 글 제목도 똑같이 달아본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과 미국 연합군 포로들 이야기가 우리에게 감동을 전해준다. 다음은 그들이 맨발에 누더기를 걸친 초라한 모습으로 일본인 포로수용소에서 60마일이나 되는 길을 걸어 태평양에 있는 수용소로 옮기게 되었을 때 이야기이다.

 새로운 수용소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기진맥진해 있었다. 그때 그들은 자신들의 대표로 윌레이 중위를 뽑아서 자기들의 가장 긴요한 요구사항을 간곡하게 전했다. 그런데 그들이 첫번째로 요구한 것은 놀랍게도 먹을 것이나 입을 것, 목욕, 붕대나 진찰 등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였다.

 그들 요구는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목욕이나 굶주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제대 앞에 무릎을 꿇고는 모두 미사에 참례했다. 그들은 어느 때보다도 경건하게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영했다 (Lawrence G. Lovasik, 「예화로 쉽게 엮은 가톨릭 교리③」).

 이 얼마나 힘있는 웅변인가! 도대체 미사가 무엇이기에 저들은 식량이나 옷, 의약품보다도 미사를 먼저 청했을까? 정녕 미사와 성체가 무엇을 공급해 주기에 지친 군인들이 적지에서까지 그것을 청했을까?

 오늘 신자들도 평소에 특별히 의식을 못해서 그렇지 사실은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하루하루를 성체의 능력으로 '거룩한 사람'(히브 10,10 참조)이 되어 감지덕지 살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일들에 치이고 어려움 때문에 활력을 잃을 때마다 미사를 통하여 기력을 회복하여 생활 해나갈 수 있게 된다 (교황교서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 17항 참조).

 모든 희망을 잃고 슬픔에 잠겨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말씀과 빵 나눔을 통하여 그분이 예수님임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다음과 같이 외쳤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루가 24,32)

 이 함성은 오늘 우리가 미사를 드리고 나서 그 벅찬 은총에 감동하여 지르는 환호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먼발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미사는 화끈한 열정이나 재미가 느껴지지 않는 맹숭맹숭한 형식적 전례로만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그윽함에 맛들인 사람들은 미사에서 가장 큰 내면의 정화, 가장 큰 평화ㆍ용서ㆍ축복, 영원한 생명, 가장 감동적 사랑, 가장 힘있는 기도, 가장 친밀한 친교, 가장 큰 치유라는 엄청난 은총을 실제로 체험하게 된다.

 같은 신자라도 매일 미사를 봉헌하는 신자에게서 더 진한 그리스도의 향기가 배어나오고 성체를 자주 영하는 사람은 그만큼 성체체질이 형성되어 인격과 신앙이 남달라지는 것을 흔히 확인하게 된다.

 성 베드로 율리아노 예마르는 성체의 은총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그대들이 구하는 모든 것은 (은총, 도움, 위로) 성체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듣고자 하는 따뜻한 말들, 또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적들…. 예, 그렇습니다. 성체 안에는 기적들까지 담겨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누릴 줄 모르면 소용이 없다. 미사의 은총을 제대로 누리려면 가장 먼저 필요로 하는 것이 침묵(고요, 집중)이다.

 오늘날 젊은 세대가 미사를 재미없어 하고 따분하게 여기는 이유는 그들이 바로 침묵(고요, 집중)에서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속도와 변화에 더 익숙한 이들, 잠깐의 짬도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대화로 메우지 않으면 안절부절 못하게 되는 이들에게는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미사시간이 여간 고역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침묵(고요, 집중)을 몸에 익히게 되면 그들이 이제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열리게 될 것이다.

 침묵을 통해 우리는 고요함에 이르게 된다. 침묵한다는 것은 말과 행동으로 정숙하면서 생각과 분심을 끊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미사가 시작되기 전 조금 일찍 와서 쓸데없이 둘러보거나 불필요한 것들을 생각하거나 공연히 책을 뒤적거릴 것이 아니라, 침묵을 통해 고요함에 이르도록 마음을 모아야 한다.  

 고요함이란 단순히 외적으로 침묵하고 말을 하지 않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참된 고요함은 생각, 감정, 마음까지도 평안한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한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온전히 미사를 거행하고, 하느님을 공경하며 관상을 할 수 있다.

 집중은 세상의 다양한 사물과 사건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주의력을 되찾아 혼란해진 정신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우리가 미사 전례나 성체조배를 할 때에는 언제나 집중을 필요로 한다. 집중하지 못하는 전례는 단순한 구경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사에 참여할 때 다음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이다. "지금 나는 여기에 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성찬례에 참여하는 것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고, 나는 온전히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 여기에서'(here and now)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미사와 성체조배를 통하여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침묵 가운데 내적 고요함과 집중을 이루는 사람은, 매 미사 또는 성체조배 안에서 하느님을 깊이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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