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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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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20-최후의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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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 보시니 '참' 좋았다
 
 요즈음 한국 사회의 '얼짱' 문화가 초등학교에까지 번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초등학교 여자 어린이들이 얼짱이 되려고 화장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몇년 전부터 여대 주변 거리에 서점이나 복사집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미장원이 즐비하게 성업 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한국의 미래를 안타까워했던 터였는데 이제는 말문이 막힌다. 이 모두 한국의 외모 지상주의가 가져온 병폐이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유럽의 젊은 여성들과 아시아권 젊은 여성들 사이에 눈에 확 띄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유럽의 젊은 여성들은 화장을 하지 않는 반면 아시아권 젊은 여성들은 화장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주관적 판단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인 화장이 제일 짙었으며 그 다음이 한국, 일본 순이었다.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욕심을 어찌하랴만 사람의 관심이 온통 외모에만 집중되면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에 소홀해지기 쉽다. 내면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분명히 있다. 성품으로 환히 빛나는 풍모, 마음씀씀이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매력, 지혜에서 발산되는 흡인력이라는 것이 확실히 있다. 아니 존재에서 발산되는 존엄성의 후광(後光)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있다.

 필자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내면에서 묻어나오는 인격의 향기라는 것이 사람을 감동시키고 여운을 남긴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된다. 진실이다. 신앙이 됐건, 인품이 됐건, 지혜가 밴 연륜이 됐건 내면에 뭔가 '참 사람'의 향취가 나는 사람이 필자에게는 최고 미인(美人)이다.


 창세기 1장의 창조과정을 보면 하느님께서 사람을 최후의 걸작(傑作)으로 만드셨음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은 먼저 3일 동안 창조물들을 위한 터전 곧 장(場)을 창조하셨다. 그 다음에 3일 동안 그 터전에 창조물(創造物)들을 만드셨다. 여기에 창조 질서가 잘 나타나 있다. 즉 첫째날은 빛을 만드시어 우주환경(宇宙環境)의 터전을 마련하셨고, 둘째날은 창공과 물을 만들어 생태환경(生態環境)의 터전을 만드셨고, 셋째날은 땅과 바다와 식물을 만들어 주거환경(住居環境)의 터전을 만드셨다. 이처럼 모든 터전이 먼저 마련됐을 때 비로소 구체적 창조 활동에 임하셨다. 그래서 넷째날에는 우주환경의 창조물(빛, 해, 달, 별)을 지어내셨고, 다섯째날에는 생태환경의 창조물(창공, 바다, 물고기, 새)을 지어내셨으며, 그리고 그 위에 여섯째날 주거환경의 창조물(땅, 식물, 짐승)을 지어내셨다.

 이렇게 삶의 모든 조건을 갖추신 연후에 마지막으로 최후의 걸작인 인간을 만드신 것이다. 창조의 클라이맥스에 사람의 창조가 있었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음미할 가치가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매일 창조를 마쳤을 때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 표현은 도합 여섯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하느님은 작품을 만드시는 6일 동안 내내 만족해하신 것이다. 나아가 하느님께서는 엿새날 인간의 창조로 모든 창조 활동을 마감하시면서 "좋았다"라는 표현에 각별히 '참'이라는 부사를 덧붙여 당신이 하신 모든 일에 대해 감탄하기까지 하셨다. 공동번역에서는 '참'이라는 강조 부사가 앞 부분에서도 튀어나오는데 사실 원문에는 마지막에만 등장한다.

 "참 좋았다"하신 이 말씀은 오늘날 모든 사람 하나하나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그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이를 믿어야 한다. 우리는 때때로 열등감으로 괴로워하며 어리석은 비교 게임을 한다.

 "난 세련되지 못했어…. 난 저 사람보다 더 강하지도 못하고 더 아름답지도 못해. 그 사람은 나보다 더 노래를 잘해…" 등등.

 그러나 하느님 눈에는 내가 그분의 걸작(傑作)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作品)이다. 우리가 이러한 각자의 유일성을 진실로 감사하게 받아들이면 이 끝없는 괴로운 비교 게임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창조주 하느님은 당신을 향해 말씀하신다.

 "너는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존재이며, 나는 영원히 너를 사랑할 것이다. 새로운 것도 낡은 것도 더 보태지 않겠다. 그래서 너에 관한 생각만이 내 마음 속에 가득 차 있고 너의 이미지는 언제나 내 마음 속 특별하고 따스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너는 나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너는 세상을 위하여 내가 보내는 유일한 구원의 메시지이고, 유일한 노래이며, 유일한 사랑이다. 이 메시지, 이 노래, 이 사랑은 오직 너에게만 부여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지금 모습과 다른 낯선 당신을 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이 사랑하는 것은 현재의 당신일 뿐이다.


 '창조하다'는 동사로 '바라(히: bara)'가 쓰인다. 성서에 47번이나 나오는 동사 '바라'의 주어는 언제나 하느님이다. 이 단어가 쓰일 때는 주어가 사람이나 사물로 나오는 적이 없고 '무엇으로 만들었다'는 표현도 없다. 이 단어에는 전혀 힘들이지 않고 아무런 재료도 없이 만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곧 새롭고도 예외적이며 놀라운 창조(創造)라는 말이다. '하늘과 땅(1절)', '짐승(21절)', '사람(26-27절)'을 만들 때 이 동사가 쓰인다. 특히 인간 창조 때에는 세번이나 반복된다(창세 1,27).

 여기에 깊은 뜻이 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창조는 오로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무(無)에서 유(有)를 이끌어내시는 이 '바라'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었을 때 하늘과 땅을 만드신 것도 이 '바라'의 절대적(絶對的) 창조였고, 단순한 생물들보다 한 단계 높은 '동물'을 만드신 것도 이 '바라'였다. 이윽고 최후의 걸작 인간을 만드실 때는 '바라'가 세번이나 등장할 만큼 대작업(大作業)이었다.

 하느님께서 특별히 공을 들여서 만든 존재가 바로 사람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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