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home
  2. 가톨릭상식

가톨릭상식

가톨릭 일반상식과 간단한 교리를 담는 게시판입니다.

게시판 상세
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29- 제자의 길
name 운영자 (ip:)
grade 0점
"그를 따르라"
 
 비엔나 유학시절에 유학생들 몇 명과 돈을 모아 렌트카를 타고 메주고리에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그곳 주요 프로그램이 고해성사였다. 서로 반 토막 독일어로 대화하는 가운데 고해사제가 내게 준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성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곳을 방문하는 이는 하나도 예외 없이 성모님이 초대해서 온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빈손으로 보내지 않겠노라'고."

 이 메시지는 이후 예수님과 제자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풍요로운 영감이 됐다. 독자들께서 한번 음미해 보시면 예수님과 관계가 한결 은혜롭게 느껴질 것이라 믿는다.  

 유다인 전통에서 '제자(그: mathetes)'는 엄격하게 '전문가인 스승'의 권위에 '순종'해야 했다. 예컨대, 율법을 중히 여겼던 바리사이인의 제자는 문헌과 구전으로 전해진 율법에 헌신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스승인 랍비의 해석과 지도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그러니까 여기서 사제 관계는 율법에 대한 '학습 과정'에 한정돼 성립됐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들의 '삶 전체'를 스승을 따르는 데 바쳤다. 이들은 스승 세례자 요한을 따라 금식도 하고 기도도 했고(마르 2,18; 루가 11,1 참조), 스승이 투옥된 기간에도, 그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도 변치 않고 충성을 다했다(마태 11,2; 마르 6,29 참조). 바리사이인 제자들과는 달리 그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배웠을 뿐 아니라 스승을 위해 기꺼이 투신했다.

 예수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세례자 요한의 제자가 된다는 것과 거의 비슷하면서 새로운 차원을 지니고 있다. 예수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

 첫째, 예수님이 '먼저' 부르셨다. 랍비 세계에서는 제자가 스승을 선택해 그 학교에 자발적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을 부르셨다.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대단히 비싸고 전인적 희생을 요구하는 부르심이었다. 이에 기꺼이 응한 이들만이 제자가 될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요한 6,60) 하고 예수를 떠났다. 끝까지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격려 말씀을 주신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요한 15,16).

 이 말씀을 잘 알아들어야 한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의 단점과 한계를 아시고도 부르셨다는 말씀이시다. 오로지 '속마음'(1사무 16,7) 하나 보시고 부르셨다는 말씀이시다. 소명(mission)도 당신께서 주시고 능력도 당신께서 주시고 책임도 당신께서 져주신다는 보증의 말씀인 것이다.

 둘째, 제자들이 따를 것은 '예수님 자신'이었다. "'나를' 따르라!" 대체 예수님 말고 누가 감히 이 엄청난 요구를 할 수 있을까? 유다 랍비는 율법에 대한 자신들의 가르침을 따를 것을 제자들에게 요구하는 정도였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철학 노선을 따를 것을 제자들에게 기대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 가르침뿐 아니라 당신 삶 전체를 따르는 전인적 추종을 요구하셨다.

 이 요구에는 두 가지 비상한 것이 담겨 있다.

 - 먼저, 완벽한 삶의 예형인 자신감이 담겨 있다. 당신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 참조)이니 당신 자신을 따르면 자아성취, 인격완성에 완전을 기할 수 있다는 권고인 것이다.

 - 다음으로, 그와 인격적 만남이 중요하다는 점이 함의돼 있다. 단지 '가르침'만을 따르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살고 함께 죽는 공동운명체로서의 유대관계라는 점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당신이 책임져 줄 것이니 그저 당신을 떠나지 말고 당신 안에 머물러 있으라는 당부인 것이다.

 요컨대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다음 말씀들과 연관지을 때 올바로 이해된다.

 "그 동안에 오직 멸망할 운명에 놓인 자를 제외하고는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요한 17,12).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한 15,5).

 자고로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아야 한다"고 했을 만큼 제자가 스승에게 드리는 예(禮)는 엄격했다. 하물며 하느님 아들이시요, 영원한 생명의 주관자이신 예수님께는 어떻게 해야 마땅하겠는가?

 오늘 예수님은 우리를 당신 제자로 부르고 계신다. 미천한 어부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듯이, 열성당원 시몬을 부르셨듯이, 세리 마태오를 부르셨듯이, 셈에 밝은 유다를 부르셨듯이, 박해자 사울을 부르셨듯이 어중이떠중이 같은 우리를 부르신다.

 "나를 따르라."

 능력이나 집안이나 학벌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부르신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세속적 견지에서 볼 때에 여러분 중에 지혜로운 사람, 유력한 사람, 또는 가문이 좋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습니까?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 있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을 택하셨으며, 강하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또 유력한 자를 무력하게 하시려고 세상에서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멸시받는 사람들, 곧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1고린 1,26-29).

   제자의 길은 분명하다
 
   스승이 가신 길을 따르는 것이다.

 스승을 닮는 것이다.

 그분 눈으로 그분이 바라보던 것들을 바라보며,

 그분 마음으로 그분이 아파하던 것을 아파하며,

 그분 손으로 그분이 행하던 것을 행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것을 위해 그분 안에 머무는 것이다. 그분의 사랑 안에서, 그분을 향한 사랑 안에서, 그분의 명령과 돌보심 안에서 사는 것이다.



file
password 수정 및 삭제하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댓글 수정

비밀번호 :

/ byte

비밀번호 : 확인 취소



    help desk

    032-655-4714 / 010-5788-4714

    월-금 am 9:30 - pm 6:30

    점심 am 11:50 - pm 12:50

    토요일, 주일, 공휴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