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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상식

가톨릭 일반상식과 간단한 교리를 담는 게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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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 36 - 수험생들을 위해 기도해 줍시다.
name 운영자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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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심으로 기도하지 마라
 
 요즈음 대입수험생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두 발 뻗고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부모들에게 자녀 대입시험이 출가시키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생각하기 나름으로 어느 부모들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기까지 하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라면 집도 옮길 수 있고, 직장도 바꿀 수 있고, 심지어 국제적 별거(이름하여 기러기 아빠 신세)까지 감행할 수 있다.

이 시기가 되면 모든 종교들이 바쁘다. 불교에서는 백일 불공을 드려주고 개신교에서는 수험생들을 위한 특별 기도회가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날짜가 임박하면 잠실 체육관을 빌려 목회자들 인도 하에 뜨거운 '중보기도'를 해주기도 한다.

 아예 부모들 불안심리를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점쟁이들까지 있다. 점집들은 불안하기만 한 부모들로 북적거리고 200~300만원을 호가하는 부적은 불티나듯 팔린다. 이것은 분명 문제이며 해악이다. 이런 짓을 소위 '기복기도'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수험철에 비교적 초연한 종교가 가톨릭교회이다. 특별히 수험생 미사를 봉헌해 주는 본당들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험생 기도를 적극적으로 독려하는 본당은 많지 않다. 절두산성지, 남양성지 등지에서처럼 특별미사가 봉헌되는 곳들도 있지만 기회가 그렇게 다양하지 못한 형편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기복기도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그 취지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기복기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너무 강조할 때 초래되는 부작용도 생각해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얼핏 생각해도 금세 두 가지 부작용이 보인다.

 첫째는 신자들이 가톨릭교회 밖에서 답을 찾으려는 부작용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급할 때가 있다.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우선 '답'이 될 것 같으면 무조건 잡으려 할 만큼 생존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때 교회가 도움을 주지 못 하면 이들은 실망을 하고 교회를 떠나기까지 한다.

 이런 우려는 실제로 통계에도 나타나고 있다.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곳'으로 자신의 교파 교회를 지목한 경우가 개신교 신자에게서는 72.8%에 달했으나 가톨릭 신자는 27.0%에 불과했다(한울아카데미, 「한국 개신교와 한국 근현대의 사회 문화적 변동」, 2003). 참고로 불교 신자는  51.2%로 나타났다. 가톨릭 신자 대부분이 교회에 대해서 별스런 기대를 걸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누가 처음부터 기대를 접겠는가! 하도 실망스러우니까 살면서 점점 그렇게 길들여지게 된 것이 아니라면 이를 어떻게 달리 설명할 수 있을까.

 둘째는 신자들이 '기복기도' 노이로제에 걸려서 실제 기도를 전혀 못하게 된다는 부작용이다. 그러면 그냥 기도문이나 읽고 형식적으로 기도할 뿐 전혀 하느님체험을 하지 못해 기도는 공허하고 무미건조하고 따분하기까지 하다는 결론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마침내는 30년 이상 신앙생활을 했으면서도 "하느님이 정말 계신가요?"하는 한심한 물음이나 던지게 되는 것이다.

 신자들이 어떤 형태로든 중압감에 시달리고 고통을 받을 때는 교회가 반드시 손을 잡아줘야 한다. 복음을 읽어 보라. 예수님께 달려들어 기적을 만난 사람들이 다 이처럼 다급한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은 이들 청을 모두 들어주셨다. '기복기도' 논리로 쫓아 보내지 않았다. 급할 때는 무조건 도와주고 그 이후에 그들 영성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수준높은 접근을 꾀하셨다.

 수험생을 돕는 것도 사목이다. 수험생 부모를 돕는 것도 사목이다. 대입수험은 그들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다. 교회가 이런 때 신자들을 돕지 않는다면 언제 도울 것인가. 예수님께서 그러셨듯이 발등에 불을 먼저 꺼주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의'(마태 6,33)를 구하는 영성생활에 힘쓰도록 독려해 주는 것이다. 사업문제, 진급 문제도 마찬가지다.

 차제에 '기복기도'라는 용어에 대해 우리 교회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많은 경우 신자들에게는 "기복기도하지 마라"하는 말이 삶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기도하지 마라"라는 말로 오해되어 각인돼 있지 않나 싶다.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대신에 "사행심을 가지고 기도하지 마라"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교회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위해 합심해 기도해 주면 그것이 실효를 거둔다는 확신은 '성인들의 통공'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 사도신경에서 우리는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나이다" 하고 고백한다. 이는 가톨릭 신앙의 백미(白眉)다.

 여기서 성인들은 '성도들'을 말한다. 이 성도들은 '교회' 구성원을 말하며, 여기서 '교회'는 전통적으로 지상 교회, 연옥 교회, 천국 교회로 구분된다. 지상 교회, 연옥 교회, 천국 교회 구성원들은 모두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의 공로에 힘입어 그리스도께 합치된 이들이다. 어느 단계에 있건 이들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는 이들"(1고린 1,2), "그리스도 예수 안의 성도들"(필립 1,1)이다. 그러니 모두가 '한 교회'의 일원이다.

 '통공(通功)'이란 단어의 원어는 'communio'이다. 이는 '친교'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눔'이나 '교환'을 의미하기도 한다. '통공'은 말 그대로 공(功)을 통(通)한다는 뜻을 지닌다. 즉 누군가 다른 성도를 위해서 기도, 선행, 희생 등을 통해서 대신 공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이 '통공'을 다음과 같이 구분해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천국 교회' 성인들 전구(轉求)를 통한 통공이 있다. 우리는 천상에 있는 성인 성녀들을 공경하며 그들 '전구'를 청하고, 그들은 우리를 위해 은총을 빌어 줄 수 있음을 믿는다.

 둘째, '지상 교회' 성도들이 '연옥 교회' 성도들을 위해 드리는 통공이 있다. 연옥 영혼을 도울 수 있는 방법에는 그들을 위해 자주 미사를 드리고, 대사(大赦)를 자주 얻어 그들에게 공을 넘겨주며, 기도와 고행, 자선을 행하는 것 등이 있다.

 셋째, '지상 교회' 성도들이 서로를 위해 공을 나눌 수 있다. 지상 교회에서 교우들끼리 서로 통공하는 방법은 둘째 경우와 똑같다.

 사도 바오로 권고를 우리는 마음 깊이 새겨들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자기 좋을 대로 하지 말고 믿음이 약한 사람의 약점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이웃의 뜻을 존중하고 그의 이익을 도모하며 믿음을 북돋아 주어야 합니다"(로마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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