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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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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 37 - 믿는 이들의 도움,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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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모님, 주님 은총의 보너스
 
 어느 성당이든지 정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안마당에 있는 성모상이다. 그 성모상 앞에서 절을 하는 가톨릭신자들을 보고 일부 개신교 신자들은 '성모당'에 다닌다고 비난한다. 여기에 성모상은 우상이고 성모 공경은 우상숭배라는 식의 판결(判決)을 꼭 덧붙인다. 나아가 자신들은 '그리스도'를 믿지만 가톨릭교회는 '마리아'를 믿는다며 매도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우상(偶像)'이라는 말을 바로 알아들어야 한다. 출애굽기 20장 4절 말씀에 의하면 우상은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서 새긴" 신상(神像)을 말한다. 그러니까 본래 '형상 없는' 하느님을 어떤 '모습'에 고정시키는 것, '제한 없는' 하느님을 어떤 '틀'에 가둬 두는 것, 그것이 우상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하느님에 대한 어떤 '고정된 관점'도 우상이다. 하느님을 어떤 틀에 가둬 놓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하느님 아닌 것을 하느님처럼 여기고 숭배하는 것, 하느님을 제멋대로 자기 식으로 정의내리고 그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것, 이것이 우상숭배다.

 그러나 '이미 존재했던' 어떤 사람을 기념해 석상이나 동상을 만드는 것은 우상이 아니다. 역사 속 주인공 예수님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상들은 우상이 아니다. 마리아의 실제 모습을 추정해 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도 우상이 아니다. 성상(聖像)도 성화(聖畵)도 우상이 아니다.

 만일 성상이나 성화를 하느님 자리에 갖다 놓았다면 우상이 될 수 있다. 마리아를 하느님 자리에 놓고 숭배한다면 그것은 우상숭배다. 그러나 일부 개신교에서 비판하는 것처럼 가톨릭은 마리아를 신(神)으로 숭배하지 않는다.

 우리가 숭배하는 것은 오로지 삼위일체 하느님뿐이다. 마리아는 다만 공경(恭敬)할 따름이다. 공경하되 다른 성인(聖人)들께 드리는 공경보다 더 정성껏 공경한다. 그래서 삼위이신 하느님께 '흠숭지례(欽崇之禮)'를 드린다 하고, 마리아에 대한 공경은 가장 존경한다 하여 '상경지례(上敬之禮)' 그리고 성인들에 대한 공경을 '공경지례(恭敬之禮)'라 한다. '흠숭'과 '공경'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훌륭한 신앙의 삶을 산 인물을 존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엘리사벳은 성모 마리아를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된"(루가 1,42) 여인이라 칭송했다. 그러니 마리아를 신앙의 모범으로서 크게 공경하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일이다.

 알베르토 성인(St. Albert the Great)의 말은 교파를 초월해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다.

 "성자께서는 당신 어머니를 무한히 존귀한 존재로 만드셨다. 열매 속에 무한한 완전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열매를 맺게 한 나무에도 어느 정도 무한한 완전함이 존재함을 드러낸다."

 마리아를 신격화하고 숭배하지는 않아도 가톨릭교회는 전통적으로 마리아를 '믿는 이들의 도움'이라 불러왔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어떤 의미에서 '믿는 이들의 도움'이신가? 크게 보아 마리아는 모범과  전구로써 '믿는 이들의 도움'이시다.

 첫째, 마리아는 '모범'이 되심으로 '믿는 이들의 도움'이시다.

 우선 성모 마리아는 믿음의 모범이시다.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에서 나타난 마리아의 '피앗'(Fiat: 이루어지소서)은 교회와 신앙인이 매순간 두고두고 본받아야 할 믿음의 정수이다.

 다음으로 성모 마리아는 기도의 모범이시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루가 1,46-55 참조)에도 기도하셨지만,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당신 아들에게 알린 가나에서(요한 2,1-3), 그리고 사도들과 함께 성령이 강림하시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사도 1,14) 기도하셨다. 지금도 스스로 끊임없이 전구해 주시며 우리 기도를 촉구하시는 '행동하는' 기도의 모범이시다.

 마지막으로 성모 마리아는 봉헌의 모범이시다. 마리아는 자신뿐 아니라 아드님을 하느님께 봉헌하셨다. 성전에서 그리고 갈바리아에서(요한 19,25 참조) 예수님을 봉헌하셨다(루가 2,22-35 참조). 하느님 뜻이 이뤄지는 일이라면 모든 것을 바치신 마리아에게 사사로운 욕망이나 목표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둘째, 성모 마리아는 전구로써 믿는 이들의 도움이 되신다. 가톨릭 신자들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하고 전구를 청하는 기도를 한다. 여기서 확실히 하고 넘어갈 것은 마리아가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기도를 예수님께 전구해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전구'라는 말은 단지 그냥 사무적으로 전해주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마리아의 전구는 우리가 우리 사정과 필요를 아뢸 때, 그것을 자비심과 연민으로 깊이 공감하시고 아드님이신 예수님께 '우리의 기도'에 '자신의 기도'를 보태서 전해 주시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전구를 청할 때 우리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전구를 청하는 기도는 성모님을 통한 '전달' 효과뿐만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변호' 나아가 '연대' 효과를 가져다주는 기도인 것이다.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시는 마리아께 함께 기도해 줄 것을 청하는 것은 결코 하느님께 '손실'을 끼쳐 드리는 일이 아니다. 우리들이 마리아에게 드리는 것은 조금도 줄지 않고 틀림없이 모두 하느님께 바쳐질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많이 불어나서 하느님께 바쳐진다. 성모 마리아는 충실한 전달자 이상 역할을 하는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유일한 중재자되시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성모 마리아가 구원에 이르는 길이 될 수는 없다. 성모님을 거치지 않고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는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도록 도와주신다. 성모님은 예수님께 우리가 나아가는 데 장애가 아니라 모범이요 안내자요 동반자이다. 굳이 성모님을 통하지 않아도 되지만, 통하지 않으면 그만큼 전구의 은혜를 못 누릴 따름이다. 성모님은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의 보너스이다. 그러므로 성모님을 거부하는 것은 크나큰 영적 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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