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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 39 - 으뜸 성사,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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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사인 교회...예수님...하느님
 
 
필자는 15년쯤 전에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영국의 핀(Fynn)이 쓴 「어른들은 바보예요」(생활성서)라는 책을 번역한 적이 있다. 이 책에는 일곱살배기 안나가 맑고 순수한 눈으로 일상의 일들 속에서 기발하게 영적인 발견을 하는 일화들이 모여 있다.


안나는 하느님을 '미스터 하느님(Mr. God)'으로 부른다. 또 안나는 올챙이들을 무척 사랑한다. 안나는 자기가 올챙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올챙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래서 핀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올챙이들 있잖아. 나는 그들을 죽을 때까지 사랑할 수 있어. 그치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을 사랑한다는 걸 분명 모를 거야. 그치? 내가 그들보다 백만 배도 더 크잖아. 똑같이 미스터 하느님은 나보다 백만 배도 더 크지. 그치? 그러니까 미스터 하느님이 하는 일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

 이렇듯 안나는 사랑스런 올챙이를 보면서 하느님 사랑을 생각할 줄 알았다. 배우지 않아도 자연의 성사성(聖事性)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보이는 그 무엇 안에 보이지 않는 신적 은총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을 우리는 '성사성의 원리'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 원리에 입각해서 인간(人間) 안에서 신적(神的) 존재를 '보며', 유한(有限) 안에서 무한(無限)을, 물질(物質) 안에서 영(靈)을, 내재(內在) 안에서 초월(超越)을, 역사(歷史) 안에서 영원(永遠)을 '본다'. 이 세상 만물은 성사성을 지녔다. 곧 만물 속에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 현존이 스며 있다. 그래서 성 이냐시오가 그랬듯이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보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눈을 씻고 대자연 자태를 유심히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오늘도 삼라만상을 통해 사랑의 손길을 내밀고 계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어느 영성가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당신은 하늘을 보았는가? 당신은 바다를 보았는가? 태양과 달과 별들을 보았는가? 새들과 물고기들을 보았는가? 풍경과 식물, 곤충, 크고 작은 모든 생물들을 보았는가? 경탄을 자아내는 인간의 심성, 그가 지닌 능력, 남녀간 오묘하고 신비한 이끌림에 공명해 보았는가? 놀랍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모든 것들 뒤에 계신 그분을 보라."

 다시 안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안나는 또 어느날 이렇게 얘기했다.

 "잘 들어봐, 핀. 미스터 하느님은 우리와 달라. 왜냐하면 미스터 하느님은 모든 것을 완성할 수 있지만 우리는 못하잖아. 나는 아저씨를 끝까지 사랑할 수가 없어. 왜냐하면 나는 아저씨를 끝까지 사랑하기도 전에, 몇백만 년 전에 죽게 될 테니까. 하지만 미스터 하느님은 아저씨를 끝까지 사랑할 수 있거든. 그러니까 같은 사랑이 아니지. 안 그래? 예수님 사랑도 미스터 하느님 사랑하곤 같지가 않아. 왜냐하면 그는 우리가 미스터 하느님 사랑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 왔던 거잖아.”

 일곱살배기 안나는 성사(聖事)라는 말을 모르고 있었지만 그 말을 아는 어른들보다도 더 깊게 성사의 의미를 깨우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 사랑도 미스터 하느님 사랑하곤 같지가 않아. 왜냐하면 그는 우리가 미스터 하느님 사랑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 왔던 거잖아."

 이 말에 성사의 핵심적 의미가 담겨 있다. 곧 하느님 사랑을 눈에 보이도록 드러낸 것이 성사이고 그 성사의 전형이 바로 예수님 자신인 것이다. 영혼이 이슬처럼 맑았던 안나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이 사실을 환히 볼 줄 알았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셨기에 인간 역사(歷史)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기 이전 시기인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역사 속 사건들을 통해 당신 자신을 알려 주셨다. 그리고 마침내는 당신 사랑을 사람이 보고 듣고 만지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사랑을 드러내는 성사였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수난과 부활을 통해 당신의 그 사랑을 '완전히' 드러내 주셨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으뜸 성사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눈으로 '보고', 하느님 말씀을 귀로 '듣고', 하느님 사랑을 손으로 '만지게' 됐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자신 그리고 그분 사랑이 완전히 드러났고, 그 덕에 죄 많은 인간이 죄의 구덩이에서 벗어나 구원받게 됐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하느님의 성사였다.

 그래서 그분을 보는 이는 아버지를 보는 셈이 됐다(요한 14,9 참조) (계시헌장 4항).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성사라고 할 때, 문제가 하나 생긴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과 죽음,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하느님의 인류 구원 업적을 보여주셨고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셨지만 부활하신 후 40일째 되는 날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우리가 더 이상 예수님을 통해 직접 하느님을 만나 볼 수는 없게 됐다.

 하지만 예수님은 승천(昇天)하시기 전에 예수님을 대신해서 우리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는데, 그 길이 바로 '교회'다. 즉 예수님께서는 손수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가 교회를 통해 예수님과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회를 세워 주셨던 것이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마태 16,18-19).

 이렇듯이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따르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시몬 베드로를 반석(盤石)으로 삼아 교회를 설립하셨다. 이로써 '매고 푸는' 권한을 위임받은 교회가 예수님 구원 활동을 계속하게 됐다. 곧 교회가 하는 일이 곧 예수님이 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인 셈이 됐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성사라 부른다(가톨릭교회교리서 1118항).

 잊지 말자. 예수님은 하느님의 성사다. 우리가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위대한 성사가 바로 예수님인 것이다. 또 교회는 예수님의 성사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기본적 성사가 바로 교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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