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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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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 40- 성사는 의무가 아니라 은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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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사의 은총을 누려라
 
 
자동차 회사에서는 자동차에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 주려고 '서비스 센터'를 설치해 애프터 서비스를 한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도 인간이라는 제품을 만들어 놓고 '서비스 센터'를 동네마다 세워 놓았다. 성전(聖殿)이 바로 그것이다. 성전은 공인된 영적(靈的) 주유소요, 서비스 센터다. 거기 가면 하느님이 직접 채용한 직원(성직자, 수도자, 사도직 봉사자 등)들이 애프터 서비스를 해준다.
가장 중요한 애프터 서비스 프로그램으로 7성사가 제공되고 있다. 그러니까 7성사는 의무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하느님 배려라는 말이다. 나고, 자라고, 성장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단계마다 우리를 영적으로 돌보아 주시기 위한 하느님의 배려가 바로 7성사라는 말이다.

하느님께서 교회를 통해 베푸시는 완벽한 토털 서비스! 이것이 바로 7성사가 지니는 의미이다. 7성사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한 사람의 영적 일생을 동반해 준다. 삶의 각 단계에서마다 결정적 은총을 베풀어 줌으로써 그 사람의 영적 생명이 생명과 기쁨이 충만한 삶이 되도록 도와준다. 이에 대해 교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이 일곱 성사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중요한 모든 단계와 시기에 관계된다. 성사들은 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을 탄생시키고 성장시키며, 치유하고 사명을 부여한다. 이 점에서 자연적 삶의 단계들과 영적 삶의 단계들은 어느 정도 유사하다"(가톨릭교회교리서 1210항).

 그 일련의 과정을 우리는 태어남(세례성사) → 양육됨(성체성사) → 성숙함(견진성사) → 타인을 위한 봉사 1(혼인성사) 또는 타인을 위한 봉사 2(성품성사) → 용서(고해성사) → 치유(병자성사) 또는 죽음(병자성사)의 도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7성사는 개신교와 대치 중에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를 통해 공식적 구원 통로로 선언됐고 이후 제1차 바티칸공의회(1869~1870)를 통해 이 입장이 더욱 공고하게 확인됐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 7성사를 구원을 위한 유일한 통로라는 입장을 완화했다. 이는 개신교와 오랜 대화와 일치 운동을 추구해 온 결과였다.

 확실한 것은 이런 관점 변화는 7성사 중요성이 약화됐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은총의 통로라는 말이다. 다만 가톨릭 교회 밖에서는 그 상황에 맞게 다른 방식으로 역사하시는 하느님 섭리를 인정하기 위해 종래의 독점적 자세를 수정했을 따름인 것이다.

 참고로, 개신교에서는 가톨릭 교회와 다른 성사관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에서는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의 일부 요소만 인정한다. 나머지 다른 성사들은 예수님이 회복시킨 하느님과 관계를 부정하는 교리라 여기고 우상숭배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는다.

 성체성사 경우에도 성변화와 성체 안 예수 그리스도의 실재 현존에 대한 가르침을 거부한다. 따라서 개신교 관점에서 성체성사는 '최후의 만찬'을 단지 기념하는 차원이지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의 의미가 아니다. 또 밀떡과 포도주가 성령의 힘으로 예수님 몸과 피로 변화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따라서 '성체성사'가 아니라 단지 '성찬 예식(성만찬식)'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신교는 고해성사를 인정하지 않고 하느님 앞에 일 대 일로 자신의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한다. 개인적으로 용서를 청하고 나서 그 죄가 사해졌는지 사해지지 않았는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지 궁금하지만 사죄권이 오직 그리스도 한 분께만 있다고 주장한다.

 개신교는 말씀 전례만을 중요시한다. 이런 의미에서 가톨릭을 '성사의 교회'라 부르는 반면에 개신교를 '말씀의 교회'라고 부른다.

 성사를 잘못 이해하면 '짐'으로 여기기 쉽다. 특히 '고해성사'는 신심이 깊지 않은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성사는 '은총'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짐을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덜어 주기 위해서 성사를 제정하신 것이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마태 11,28).

 이것이 우리에게 성사를 제정하신 예수님의 한결같은 의중이었다. 그러므로 성사의 불편함이나 번거로움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성사를 통해 얻게 되는 무한한 은총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믿음이 깊어질수록 이 은총에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이 성사의 은총은 다시 우리 믿음을 굳건하게 해준다.

 "성사는 신앙을 전제할 뿐 아니라 하느님 말씀과 업적으로 신자들의 신앙을 기르고 굳건하게 하고 드러낸다. 그래서 신앙의 성사라고 한다"(전례헌장, 59항).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1고린 11,26) 주님의 신비를 기념한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열렬히 기다리면서 성사를 거행하는 것이다. 이토록 엄청난 선물인 성사도 새 하늘 새 땅에서 누릴 천상 전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교회 성사들에서 그 천상 복락을 앞당겨 맛보는 것이다.

 성사의 은총은 누리는 자의 몫이다. 성체를 자주 영하는 사람은 그만큼 은총을 많이 누린다. 같은 신자라도 매일 미사를 봉헌하는 신자에게서 더 진한 그리스도의 향기가 배어나온다. 성체를 자주 영하는 사람은 그만큼 성체 체질이 형성돼 인격과 신앙이 남달라지는 것을 흔히 확인하게 된다.

 고해성사를 자주 보는 사람은 그만큼 기도 생활이 잘 이뤄진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마태 5,8)는 약속이 있거니와 고해성사를 자주 보아 마음의 깨끗함을 유지하는 사람이 기도할 때 '하느님을 뵙는' 은총을 누린다.

 요즘 우리 자신의 게으름이나 무관심 때문에 주변에 있는 세례ㆍ 견진ㆍ혼인ㆍ병자성사 대상자들이 은총에서 멀어진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이 다시 성사의 은총을 누리는 수혜자(受惠者)들이 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은 가장 훌륭한 사랑의 행위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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