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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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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 42-송이꿀보다 단 야훼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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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의 법, 행복의 지혜
 
 
중국산 식료품 위생문제로 시끌하다. 생선류에서 검출되는 독성물질, 빨간 벽돌을 갈아 섞은 가짜 고춧가루, 김치 속 기생충 알 등 최근 뉴스는 서민들 마음을 불안케 한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 체내 잔류 중금속이 기준치를 훨씬 웃돌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모두가 식품위생과 관련된 일들이다.

이 얘기들은 결국 '법'과 관련된 사안들이다. 그런데 세계를 여행해 보면 준법정신 수준이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별해 주는 기준이 된다는 사실에 동의하게 된다. 의식 수준이 높을수록 법을 존중한다. 서로 교통질서를 지켜 주니까 혼잡하지 않고, 상도덕이 서 있으니까 '가짜'에 대한 불안감을 갖지 않게 된다. 가까운 나라 일본만 가 봐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된다. 어디를 가든 줄 선 사람들이 보이고, 교통 신호등을 교과서처럼 지키는 모습들을 만나게 된다.

반갑지 않은 얘기이지만 한국인 준법정신은 낙제 점수에 해당한다. 한국 사람은 왜 준법 정신이 없을까? 아마도 법에 대한 교육이 부실했던 것도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이거니와 법에 대한 안 좋은 추억도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법 적용이 정의롭지 못했던 편이다. 그래서 강자는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법망을 피해 갈 수 있었고 약자는 작은 죄를 짓고도 법의 철퇴를 맞아야 하는 억울한 일들을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겪었다. 있는 사람들에게는 법이 치부 도구였고 없는 사람들에게는 법이 불이익의 주범인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법은 꼭 지켜야 할 공동선이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요령껏 피해야 할 애물단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사실 법은 좋은 것이다. 공동 선익을 담보해 주는 합의된 규정이 바로 법이다. 법은 부담스런 제약이 아니고 서로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주는 파수꾼이다. 모두가 지키면 저절로 공동선이 성취되는 지름길이 바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법이 무엇인지를 잘 드러내 주는 것이 法(법)이라는 한자이다. 法은 삼 수(水)변에 갈 거(去)가 더해져서 이뤄진다. 곧 법의 뜻은'물 흘러가듯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물 흘러가듯이 진행시켜 주는 것이 바로 법이다.

 이 세상은 하느님께서 지으셨다. 모든 것이 하느님 지혜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야 제대로 돌아가는지를 아시는 유일한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다. 흥망성쇠의 열쇠를 쥐고 계신 분, 만사형통의 비밀을 알고 계신 유일한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다. 그런 까닭에 야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법이야말로 성공적이고 복된 삶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야훼의 법대로 살아서 크나큰 은총을 체험한 다윗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야훼의 법은 이지러짐이 없어 사람에게 생기를 돌려주고 야훼의 법도는 변함이 없어 어리석은 자도 깨우쳐 준다. 야훼의 분부는 그릇됨이 없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야훼의 계명은 맑아서 사람의 눈을 밝혀 준다. 야훼의 말씀은 순수하여 영원토록 흔들리지 아니하고 야훼의 법령은 참되어 옳지 않은 것이 없다. 금보다, 순금 덩이보다 더 좋고 꿀보다, 송이꿀보다 더욱 달다"(시편 19,7-10).

 하느님 법은 인간이 선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해주는 최선의 길이다. 마치 부모가 자녀에게 "얘야, 이빨 닦고 자야지. 손도 깨끗이 씻고" "길을 다닐 때는 항상 길조심해야 해" "불량식품 같은 건 아예 사 먹지 말고" 하며 말해 주는 것이 사랑하는 자녀를 구속하려는 것이 아니라 건강과 행복을 위한 것이듯, 야훼 법은 사람에게 생기를 돌려주고 어리석은 자를 깨우치며 마음을 즐겁게 하고 눈을 밝혀 영원토록 흔들리지 않게 한다. 그래서 야훼의 법은 꿀보다 더 단 것이다.

 십계명을 외워 보라고 하면 가톨릭 신자들은 바로 "일,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하며 외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똑같은 주문을 하면 그들은 다음과 같이 서문(序文)부터 외운다고 한다.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하느님이다"(출애 20,2) 그런 연후에 첫 번째 계명부터 주욱 외운다는 것이다. 왜 그들은 서문까지 외울까? 그럴 만큼 서문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불쑥 첫 번째 계명부터 외우면 뭔가 강압적 느낌이 든다. 다짜고짜로 "~해라", "~마라"는 식으로 명령받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먼저 서문을 외우게 되면 뭔가 하느님께서 십계명을 주시는 이유랄까 목적이랄까가 친절하게 설명되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처럼 십계명 서문은 우리에게 마음을 준비시키고 우리를 정제된 논리로써 설득하는 역할을 한다.

 십계명 서문은 야훼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내용이다. 우리는 이 속뜻을 다음 두 가지로 알아들을 수 있다.

 첫째, 출애굽 체험을 상기시킴으로써 하느님이 해방시켜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준다. 이 말 뜻은 이렇다. "돌이켜봐라. 내가 너희를 어떻게 했느냐? 너희가 종살이하면서 나에게 살려 달라고 울부짖었을 때 너희를 구해내지 않았느냐. 억압에서 자유로, 죽음에서 생명에로, 절망에서 희망에로, 불행에서 행복에로 이끌어 내오지 않았느냐.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명한다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겠느냐." 결국 이 말씀은 야훼께서 무엇을 위해 십계명을 주시는지를 설명해 주는 셈이다. 곧 십계명은 바로 자유와 생명 그리고 희망과 행복의 길이라는 선언인 것이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이 가야 할 목적지 가나안 땅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로드맵(road map) 곧 길잡이를 제시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씀을 들은 것은 시나이 산(山)이었다. 그곳은 목적지가 아니었다. 목적지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출애 3,17) 가나안이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이 말씀을 이집트와 가나안 사이, 그 중간 지점에서 들은 것이다. 결국 이 말씀의 의미는 지금까지는 야훼 하느님 도움으로 잘 왔는데 이제 가나안 땅에 무사히 도착하려면 야훼께서 제시하는 십계명을 길잡이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서문은 '내가 가라는 10가지 길을 가 봐라. 그러면 반드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이르리라'하는 속뜻을 가지고 있다. 야훼께서 주신 법이 바로 행복의 지혜임을 깨달은 현자들은 선언한다.

 "마음 속으로 지혜의 길을 찾고 그 신비를 깊이 묵상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는 사냥꾼과도 같이 지혜를 뒤쫓고 지혜가 가는 길목을 지킨다"(집회 14,21-22).
 지혜를 뒤쫓는 사냥꾼이 돼 순간마다 지혜가 가는 길목을 지켜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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