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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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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 44- 십계명 속 보물찾기: 제1계명
name 운영자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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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벗어날 수 없는 존재, 하느님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는 제1계명에는 "우상을 섬기지 마라"는 것이 포함돼 있다. 참고적으로, 개신교에서는 이를 따로 떼어내서 두 번째 계명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제1계명은 야훼는 하나뿐인 하느님 곧 유일신(唯一神)이시니 오로지 이 분만 섬기는 것이 당연하고, 이 소중한 하느님을 미신과 우상숭배에 빠져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왜 야훼 하느님만 섬겨야 하는가? 그것은 야훼께서 든든한 빽이시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가장 절실하게 체험한 사람이 바로 다윗 왕이었다. 그는 블레셋 장군 골리앗과 대결, 그 전임 왕 사울의 집요한 질투, 최측근에 의한 쿠데타 등 절체절명의 궁지에서 하느님이 빽이시라는 것을 극적으로 체험했다. 그래서 그는 입을 열었다 하면 야훼를 자신의 '바위'(시편 31,2), '성채'(시편 71,3), '피난처'(시편 27,1) 등으로 고백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그분께 몸을 피하는 자 모두 다 복되어라"(시편 2,12).

 다윗뿐이 아니다. 하느님의 신실하신 도움을 겪은 다른 믿음의 사람들도 증언한다.

 "복되어라, 야곱의 하느님께 도움받는 사람! 자기 하느님 야훼께 희망을 거는 사람!"(시편 146,5).

 "그러나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으리라.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개울가로 뿌리를 뻗어 아무리 볕이 따가워도 두려워하지 않고 잎사귀는 무성하며 아무리 가물어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으리라"(예레 17,7-8).

 야훼를 '믿고 의지한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그리하면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아무리 가물어도 걱정 없이 열매를 맺는다고 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좋으신 하느님을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고 산다. 이것은 비극이다. 하느님을 등지고 하느님 없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각별한 연민(憐憫)과 안타까움을 구상 시인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시방 세계는 짙은 어둠에 덮여 있다./ 그 칠흑 속 지구의 이곳저곳에서는 구급을 호소하는 비상 경보가 들려온다.

 온 세상이 문명의 이기(利器)로 차 있고/ 자유에 취한 사상들이 서로 다투어/ 매미와 개구리들처럼 요란을 떨지만/ 세계는 마치 나침반이 고장난 배처럼/ 중심과 방향도 잃고 흔들리고 있다.

 한편 이 속에서도 태평을 누린달까?/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는 무리들이/ 사기와 도박과 승부와 향락에 취해서/ 이 전율할 밤을 한껏 탐닉하고 있다"(구상, 「인류의 맹점(盲點)」).

 시인은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너무도 잘 그려내고 있다. 웰빙이니 뭐니 하며 호의호식하는 삶을 살고들 있지만, '자유에 취해' '요란을 떠는' 세계는 영락없이 '나침반이 고장난 배' 꼴로 방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배가 표류하고 있다는 비극적 사실도 모르고 모두가 '태평'하게 '전율할 밤'을 탐닉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 지경이 됐을까? 한 마디로 하느님을 등지고 하느님 없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버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20세기 초 영국 시인 프랜시스 톰슨은 자신의 시 '하늘의 사냥개'에서 기막히게 노래했다.

 "나는 그로부터 도망쳤다./ 밤과 낮과 오랜 세월을/ 그로부터 도망쳤다. (중략) 그리고 나는 푸른 희망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 올라갔다가/ 그만 암흑의 수렁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틈이 벌어진 공포의 거대한 어둠으로부터/ 힘센 두 발이 쫓아왔다. (중략) 이어 그보다도 더 절박하게 들려 오는 한 목소리,/ -나를 저버린 너는 모든 것에 저버림을 당하리라!"

 신으로부터 도망치고픈 심정이 어찌 이 시인에게만 해당한다고 할 수 있으랴. 오늘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신은 없다', '신은 죽었다'는 감미로운 유혹에 덜컹 빠져들고 있는가. 하느님 존재를 곧잘 믿었던 이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동시대인들이 '그(=하느님)로부터 도망치는' 도망자로 이 거리 저 골목을 헤매고 있는지 모른다. 죄가 너무 크고, 절망이 너무 깊어서 감히 하느님을 바라보지도 못하는 사람들, 마음이 너무 굳어서 불행한 자신의 현실을 보지 못하고 여기저기 배회하고 있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또 실제 삶에서 하느님을 등지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하느님을 살해해 매장해 버리고 '하느님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 하느님 행세를 하려는 영적 반란(=신흥영성운동)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하느님은 마치 하늘의 사냥개처럼 아무리 달아나고 뿌리치고 숨어도 자꾸 따라온다. 멀리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고, 벗어나고 싶어도, 따라오고 뒤쫓아오니 벗어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하느님이다. 톰슨이 고백하듯이 하느님을 저버린다는 것은 모든 것에 저버림을 당하는 것이다.

 다시 다윗은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복되어라. 허수아비 우상에 속지 않고 야훼만 믿는 사람이여"(시편 40,4).

 우상에 속지 않는 사람이 참으로 복된 사람이다. 왜냐하면 우상은 허수아비이기 때문이다. 허수아비가 뭔가. 가짜 형상이다. 거짓이다. 아무런 내용도 힘도 없는 눈속임이다.

 그러므로 헛된 우상이나 잡신 등을 신격화해 섬기거나 공경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또 하느님이 아닌 것에 의지해 점술이나 사주 등으로 무엇을 알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거짓 기적이나 예언 등에 현혹되는 일과 인간 권력을 절대화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 모두가 허수아비요 헛것이다.

 야훼만이 참 하느님이시다. 야훼만이 실제로 존재하며 살아 계시며 참 도움의 손길을 베푸시는 유일한 하느님이시다. 그러니 전심전력으로 사랑해야 마땅하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신명 6,5).

 하느님을 흠숭하고, 하느님께 기도하고, 그분께 마땅한 예배를 드리고, 하느님께 드린 약속과 서원을 지키는 것은 첫째 계명을 준수하는 경신 행위들인 것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2135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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