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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상식

가톨릭 일반상식과 간단한 교리를 담는 게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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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 57-대가들에게 배우는 기도(1)
name 운영자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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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기게 싸워 얻어내는 것, 기도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깨달은 사실이다. 논문 주제를 정하고서 자료수집에 착수했다. 자료가 "이 정도면 되겠다" 싶었을 때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얼개를 잡고 관계 분야 전문학자들의 견해를 빌려가면서 논문의 대강을 작성해 갈 무렵, 논문 주제와 관련된 인식의 경계(境界)가 보이기 시작했다. 파악된 영역과 미지의 영역을 가름하는 선(線)이 보이는 듯했다.

그런데, 논문이 거의 종료 상태에 이르렀을 때, 필자는 우연히 이제껏 보지 못했던 논문 주제와 관련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이 책 한 권은 논문 내용을 대폭 수정하게 할 만큼 그 분야 최고의 식견을 담고 있는 책이었다.

그때 필자는 깨달았다. 대가(大家)라는 것이 있긴 있구나! 지난날 읽었던 수백 권 책을 합친 견해보다 어떻게 이 책 한 권에 실린 견해가 그렇게 탁월할 수 있을까? 수십 명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숙의해 도출한 결론보다 한 명의 '대가'가 집대성한 결론이 이렇게 다른 격을 보일 수도 있는 것이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대가'를 찾는 것이구나.

기도에도 대가들이 있어 왔다. 사도로부터 이어온 교회에는 뛰어난 기도의 대가들이 많다. 성경에도 역경을 이겨낸 기도 대가들이 많다. 이제부터 기도 대가들에게서 기도 자세와 방법을 배워보기로 하자. 편의상 성경에 나타난 대가들에 국한해 대표적 인물만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야곱의 기도를 통해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을 알아보자.

성경에서 야곱만큼 파란만장하게 산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일생은 늘 하느님께서 동행(同行)하시는 삶이었다.

형 에사우가 받아야 할 이사악의 축복 기도를 몰래 가로채어 받은 야곱은 '죽이겠다'(창세 27,41)고 벼르는 형을 피해 고향을 떠나 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하란으로 길을 떠난다. 그 길은 장장 300여㎞에 해당하는 사막의 길이었다. 얼마나 험하고 위험했겠는가. 가는 길에 베텔에 이르러 하룻밤 머물게 되는데 그는 '돌베개'를 베고 잤다고 기록돼 있다(창세 28,12).

돌베개! 이것으로 그가 처한 사정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 셈이다. 길을 떠날 때 웬만하면 괴나리봇짐 정도는 챙겨서 떠나는 법이다. 그리고 잠을 잘 때는 보통 그것을 베고 잠을 청하게 돼 있다. 그런데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잤다는 사실은 옷 보따리 하나도 손에 들고 있지 못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얼마나 성급하게 도망 나왔으면 그랬겠는가. 여하튼 그는 잠을 청한다. 워낙 피곤에 지친 몸이라 들짐승을 두려워할 겨를도 없이 잠이 든다. 그런데 꿈에 하늘에 닿은 층계가 보이고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된다. 꿈을 통해 야곱은 하느님께서 자신과 함께 계시며, 후손의 복과 땅의 복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약속을 받는다(창세 28,12-15 참조). 그는 잠에서 깨어나 말한다.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이 말은 방금 돌베개를 베고서 잠을 청하던 때의 심정과 절묘한 대조를 이룬
다. 그때의 심정은 모든 것으로부터 절연된 절대 고독,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는 고립감, 하느님의 부재에서 느끼는 불안감 등이 교차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장소에, 그리고 바로 그 시간에 주님 야훼께서 함께 하고 계셨다니, 이 얼마나 기막힌 은혜인가!

오늘 우리도 살다 보면 달랑 '돌베개'를 베고 잠을 청해야 할 때가 있다. 아무것도 의지할 것 없는 빈털터리 신세가 될 때가 있다. 꼭 물질적으로 얘기하지 않아도 정신적으로 그런 정황에 처할 때가 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바로 그때가 야훼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 때이다.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느님은 비단 야곱을 위해서만 나타나신 것이 아니다. 야곱과 비슷한 곤경에 처한 모든 사람을 위해 나타나신 것이다. 이것을 믿자.

이렇듯 절망에 처해 있을 때 홀연히 나타나신 야훼 하느님께 야곱은 감사와 청원과 서원을 합해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면서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저에게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마련해 주시며, 제가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신다면, 주님께서는 저의 하느님이 되시고, 제가 기념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느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께서 주시는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창세 28,20-22).

이 기도를 통해서 야곱은 영적으로 비상한 흥정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정성된 경배와 십일조를 담보로 그의 신변 안전과 생존을 보장받는 기도를 올린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기도는 응답받는다. 이점도 우리가 배울 점이다. 우리도 하느님께 드릴 것은 확실히 드리겠다고 서원함으로써 받을 것을 받아내는 지혜로운 '흥정가'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기도다.

긴 세월이 흐른 후 야곱은 20년 객지생활을 끝내고 형 에사우를 다시 만나러 귀향길에 오른다. 야곱은 에사우의 비위를 맞추고자 선물과 가축들, 나중에는 자기 가족들을 보내며 인간적 방법으로 해결해 보려 했지만 심한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는 야뽁 강에 혼자 남아 두려움, 무력, 낙심에 처하게 된다. '형이 나를 죽이겠다고 벼르던 그 분노를 지금쯤 버렸을까. 장자권과 축복을 도로 달라고 하면 모든 것이 도루묵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럴 수는 없어….'

그에게 생사 문제를 앞에 놓고 홀로 싸워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가 살길은 하느님께 매달리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야곱은 밤을 새워가며 끈질긴 기도를 한다. 성경을 보면 야곱의 기도를 '씨름'이라고 했다. 날이 샐 때까지 씨름하듯 길고 힘든 기도였다.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창세 32,27)하고 떼를 쓰며 드린 끈질긴 기도였다.

야곱은 이 싸움에서 환도뼈를 다치게 된다. 환도뼈란 허리 아래 넓적다리에 있는 뼈를 말한다. 이곳을 생명의 근거지로 생각해 유다인들은 중요한 서약을 할 때 손을 환도뼈 밑에 넣곤 했다. 환도뼈가 다쳤다는 것은 생명을 내걸고 끈질긴 기도를 했다는 것이다. 결국, 야곱은 하느님의 응답을 받고 '하느님과 겨뤄 이긴 자'라는 뜻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것이 기도다. 밤을 새워가며 환도뼈를 다칠 정도로 끈질기게 싸워 응답을 얻어내는 것, 이것이 기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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