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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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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 59- 대가들에게 배우는 기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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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로운 기도와 청
 
 우리는 언어를 잘 사용해야 한다. 언어를 막 사용하면 사람이 억울하게 다치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간혹 우리는 "그런 기도는 틀린 기도야!"라고 단정 짓는다. 이것은  무자비한 단정이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런 기도'를 들어주시기도 하신다.

'틀린 기도'는 없다. 다만 '수준 낮은 기도'가 있을 따름이다. 사람은 그 자신의 영성적 수준에 따라서 기도를 한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기도의 동기와 목적이 현세적인 것일 수 있다. 그러다가 영적인 눈을 뜨면 점점 기도 지향이 초월적인 것, 곧 하느님을 경외함, 영원한 생명, 지복직관 등으로 고양(高揚)된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수준이 낮은 기도도, 수준이 높은 기도도 모두 인정해 주신다. 눈높이를 맞춰주신다. 그러면서 각 사람의 영적 관심이 점차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의'로 이끌어 주신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는 야베츠의 기도와 아구르의 기도에서 대조되는 수준 차이를 만나게 된다. 야베츠는 하느님께 '현세적인 축복'을 청했던 반면, 아구르는 "오로지 하느님을 잘 섬기고 살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기도를 바쳤다. 그런데 이 두 기도는 응답받았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구약에서 야베츠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다. 역대기 상 4장 9-10절에 그의 기도가 실린 것 외에는 어디에서도 야베츠를 찾아볼 수 없다. 그에 관해 이렇게 기록돼 있다.

"야베츠는 자기 형제들보다 존경을 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내가 고통 속에서 낳았다'고 하면서 그에게 야베츠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야베츠는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이렇게 빌었다. '부디 저에게 복을 내리시어 제 영토를 넓혀 주시고, 당신의 손길이 저와 함께 있어 제가 고통을 받지 않도록 재앙을 막아 주십시오.' 그러자 하느님께서 그가 청한 것을 이루어 주셨다"(1역대 4,9-10).

평범해 보이는 이 기도 뒤에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깨닫지 못하고 지나가는 놀랍고 강력한 진리가 숨어 있다.

첫째, 야베츠는 "부디 저에게 복을 주세요" 하고 기도했다. 히브리어로 '야베츠'는 '고통'을 뜻한다. 성서 시대에 한 사람의 이름은 대개의 경우 그의 미래에 대한 예언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그 이름은 순탄하지 못한 미래를 보여준다. 그러나 야베츠 그는 적극적이고 간절하게 하느님께 복을 구했다. 하느님의 복은 구하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다. "여러분이 가지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야고 4,2).

복을 꼭 세상의 부귀영화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 더 귀한 복들이 많이 있다. 이 복들을 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야베츠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았기 때문에 하느님께 무엇을 달라고 구하지 않았다. 주실 복을 하느님이 결정하시도록 맡겼다.

둘째, "영토를 넓혀주세요" 하고 기도했다. 우리는 간혹 실패의 경험이 있을 때 '내 인생이 결국 이 지경에 이른 건가? 내 인생은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일까?'하고 실망한 적이 있을 것이다. 야베츠는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이보다 더 큰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어!"라고 용기 있게 다시 일어설 줄 알았다. 그는 자신의 삶이 이미 결정됐다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영토(領土)를 넓혀 달라고 청했다. 여기서 영토는 단지 땅(土)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지평' 또는 '삶의 영역'을 뜻하는 것으로도 알아들을 수 있다.

셋째, "주님의 손으로 저를 도와주세요" 하고 기도했다. 우리는 영토(영역)를 넓히기 위해 너무 큰 일을 시도할 때도 있다. 때로는 실패도 한다. 야베츠는 자신의 영토가 넓어지고 감당해야 할 일들이 늘어나자 주님 도움이 필요함을 금방 알게 됐다. 그는 하느님의 '위대한 손길'에 의지해야 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는 구체적 삶의 질곡에서 하느님께 도움의 손길을 청할 줄 알았다.

넷째, "제가 환난을 벗어나게 해주세요"하고 기도했다. 시험당할 때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는가? 대부분의 경우 굴복하지 않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한다. 야베츠는 "환난 속에서 나를 지켜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고 "환난을 벗어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이는 예수님이 주님의 기도에서 가르쳐 주신 것과 같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루카 11,4).

우리도 야베츠나 예수님과 똑같이 기도해야 한다. 유혹이나 환난을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유혹을 최대한 멀리함으로써 하느님의 일에 협력하는 우리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구르의 기도는 잠언 30장, '아구르의 잠언' 내용 중 일부이다. 아구르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신은 다른 사람에 비해 지혜도 없고 슬기도 없고 하느님을 아는 지식도 깨치지 못한 사람이라고 고백하지만 그야말로 진정 하느님께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저는 당신께 두 가지를 간청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잠언 30,7-9).

그가 하느님께 간청한 첫째는 '허위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죽기 전의 소원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이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인생의 굴곡을 경험한 후 지나온 날들을 생각해 볼 때, 정말 헛된 것에 매여 산 날이 얼마나 많았나를 깨달은 자의 기도임을 알 수 있다.

둘째는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마시고, 먹고 살 만큼만 주십시오"라는 기도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넉넉하고 부유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가난하게 하지 마시고, 부유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하지만 진정 무엇을 위해 부유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부유함으로 말미암아 저지를 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아구르의 기도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 무엇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청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가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소유가 많아짐으로 인해 하느님을 외면하지 않게 되기를 청했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부유함보다 하느님과 더불어 사는 부족함이 낫다는 간구였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많은 것을 이루려 하고 많은 것을 누리려 한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늘 상기해야 한다. 하느님을 잃는 것은 곧 생명을 잃는 것이라는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말씀하셨다.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태 1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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