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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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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 64-천국의 모습
name 운영자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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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는 삶, 천국의 삶
 
 천국을 갔다왔다는 사람들 증언이 곧잘 있다. 개신교에선 천국 체험담을 책으로 내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그것을 소재로 간증을 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천국을 다녀온 사람들 표현이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 까닭은 그 표현이 사실적 의미를 지니기보다 상징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3차원 공간을 사는 인간이 어떻게 그 이상의 차원의 사정을 다 표현해 내겠는가.

어떤 사람들이 본 천국은 온갖 찬란한 보석들로 가득 차 있다. 어떤 사람들이 본 천국은 온갖 맛있는 과일이 나무마다 주렁주렁 달려있는 그야말로 파라다이스이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천국을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잔치에 비유했다. 예나 지금이나 잔치는 말 그대로 잔치이다. 산해진미와 기쁨과 흥겨움의 향연이다. 그날이 오면 만군의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을 위해 살찌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걸러진 술로 잔치를 베푸신다고 했다. 그날 주님은 모든 민족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덮개를 없애 버리시고, 그들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내시며 백성의 부끄러움을 치워주신다고 했다. 그곳에는 '슬픔과 죽음의 그늘'이 없다(이사 25,6-10ㄱ 참조).

몰라서 그렇지 장차 우리가 가게 될 천국은 잔치 그 이상이다. 잔치는 천국을 표상하기 위한 하나의 상징일 따름이다.

1628년 영국 엘리토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존 번연(John Bunyan)은 영계를 직접 체험하고 천국과 지옥에 대한 글을 썼다. 「존 번연이 본 '천국과 지옥'」이라는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천국을 묘사하고 있다.

"천국은 태양이나 조명이 필요 없이 하느님 영광에서 발산되는 빛만이 천상의 거처를 두루 환하게 비추고 있다. 하느님 빛에 비하면 태양빛은 어두움 같고, 찬란한 다이아몬드와 루비의 반짝거림과 진주의 광채도 하느님 영광에 비하면 타다 남은 석탄과 같았다.

복락과 차분한 기쁨, 환희의 강물이 하느님 앞에서 쉬지 않고 흘러나와 그분의 행복한 처소요 영원한 왕국이 자리 잡고 있는 천국의 모든 복된 주민들에게 흘러간다.

천국에 있는 자들은 모든 행복이 흘러나오는 복된 샘이자 영원한 근원이신 하느님을 뵙는 특권을 맛보며 살아간다. 하느님을 뵙는 것은 끊임없이 우리의 깨달음을 밝히고, 우리 영혼을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1베드 1,8)으로 차고 넘치게 한다.

하느님의 웃는 낯이 우리 영을 한 없이 기쁘게 하는데, 그 이유는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중략)

아래 세상(현세) 성도들은 하느님과 사귐이 자주 단절되지만 이곳(천국)에서 우리는 중단 없이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한다. 아래 세상 성도들은 부분적으로 보고 알지만 이곳에선 완전한 것을 누리며 불완전한 것은 사라졌다. 아래 세상에서는 사랑에 두려움과 고통이 섞여 있지만 이곳에서는 온전한 사랑이기에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이곳에서 우리가 누리는 기쁨은 온전하다. 아래 세상에서는 기쁨의 한쪽 구석에 슬픔과 탄식이 스며있게 마련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죄가 있는 곳에 반드시 슬픔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어느 대목에서는 주인공 에페네투스가 얼마 전에 사별한 친구 주니우스에게서 천국 생활에 대한 증언을 듣는다. 증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느님을 직접 뵈면 사랑과 기쁨으로 충만해지는데, 그것은 직접 맛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형언할 수 없는 충만함이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도 하느님 앞에 서면 너무나 찬란하고 압도적인 영광의 광채를 견디기 힘들다네.

천국에서는 성도들과 천사들이 합하여 거대한 성가대를 이루고 있지. 이곳에 사는 복된 성도들과 천사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것은 오직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묵상하는 것뿐이야.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 우리가 하느님을 향해 품는 사랑의 토대가 되네.(중략)

우리가 아래 세상에서 무엇을 가장 완전한 행복인 줄 알고 살았든 간에 이곳에서 누리는 경험은 우리의 기대를 크게 넘어선다네.(중략)

이곳의 행복은 아무리 큰 가정법을 사용해도 무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복되다네.(중략)

이곳에서 우리가 품는 소원은 잘못된 대상을 선택하는 일도, 성취되지 않는 일도 없다네. 소원이 항상 올바른 데다 반드시 성취되지.(중략)

천국에 대해 말해 주었지만 아직 하고 싶은 말의 천분의 일도 하지 못했고, 이곳에 와서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우리가 누리는 행복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 수 없지. 이제 자네가 할 일은 죽어 소멸하는 육신을 내려놓는 날까지 '믿음과 인내로'(히브 6,12) 기다리는 일일세."

이렇듯이 천국은 인간의 궁극적 목적이며 가장 간절한 열망의 실현이고, 지고하고 결정적인 행복의 상태이다. 천국은 그리스도와 온전히 한 몸이 된 모든 사람들의 복된 공동체이다. 천국은 완성된 형태의 사랑이며 통교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이 서로를 위해 존재하고 서로 사랑하고 있는 곳에 이미 천국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천국에 대한 교회 가르침은 사실 미래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현세에서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현재를 위한 가르침이다. 미래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결국 현재의 연장이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누군가가 앞으로 언젠가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를 조금이라도 알기를 원한다면 현재 자신의 삶을 미래 연장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내 자신의 (신앙적) 삶의 질에 따라서, 나는 이미 지옥, 연옥 또는 천국을 살고 있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를 우리가 자주 들었던 이야기를 통해 쉽게 비교해 볼 수 있다. 진수성찬을 차려 놓은 연회에 많은 사람들이 초청된다. 그런데 참석자들은 식사용으로 모두 길이가 1미터나 되는 젓가락과 숟가락을 제공받는다. 한그룹의 참석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젓가락과 숟가락으로 음식을 담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지 않고 다른 이웃 참석자들 입에 서로 넣어 준다. 그래서 각자 다른 참석자들에게서 음식을 선사받으며 서로 감사하면서 기쁘게 식사를 즐긴다. 그런데 다른 그룹의 참석자들은 음식을 담아 제각기 자기 입으로 넣으려 하나 젓가락과 숟가락이 너무 길어서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팔을 크게 벌리면서 이웃의 몸과 서로 부딪히게 되어 시비가 오가고 비난하며 다투는 아비규환의 혼란이 벌어진다.

똑같은 처지에서 남을 생각하면서 배려하는 사랑이 만발한 곳이 천국이고,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는 삶 자체가 지옥이라는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삶 속에서 천국을 살 수 있다. 나눔의 삶 속에서 우리는 천국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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