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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38) 우리 삶 안에서 성령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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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38) 우리 삶 안에서 성령의 역할

우리 위해 중재하고 대신 기도하는 ‘보호자 성령’



■ 성령께 맡겼더니

어느 본당에 주교님이 방문하셨다. 본당 신부는 미사 집전을 주교님이 하시기로 예정되어 있었기에, “강론은 당연히 주교님께서 하시겠지”라고 느긋하게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웬걸! 주교님께서 제의를 입으시다가 “오늘 내가 목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러니 자네가 강론을 하게”라며 본당신부에게 미루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본당신부는 즉흥적으로 강론을 시작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자신에게 화가 난 그는 변명삼아 한 마디 덧붙였다.

“교우 여러분, 지금까지 제가 준비해서 강론을 했을 때는 그런대로 만족스웠는데, 갑자기 주교님을 대신해서 강론을 하게 되어 성령님께 맡겼더니 글쎄 이 모양이 됐습니다.”

물론, 지어낸 이야기이다. 이 허구의 이야기에 “만일 본당 신부가 강론 전에 진정으로 성령께 도움을 청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토를 달고 싶다. 이는 짐작이 아니라 체험에서 나온 확신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소집 계획을 발표한 날, 교황 요한 23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날 밤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고 한다.

“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거냐? 교회를 이끄는 이가 교황이냐, 아니면 성령이시냐? 성령이 맞지 않느냐? 그러니 어서 자거라.”

교황 요한 23세는 잠이 왔을까? 틀림없이 잘 잤을 것이다. 성령께 맡겼기 때문이다.


■ 삼위일체 안에서 성령

성령의 역할을 파악하려면 삼위일체의 신비 안에서 성령의 고유 위상을 규명해야 한다.

성부, 성자, 성령, 세분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지난 날, 교회는 삼위일체를 ‘신비’라 결론지었다. 설명으로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삼위일체는 바로 이것을 전제로 한다.

초기 교회 300여 년간, 성령은 삼위일체나 ‘성령 하느님’에 대한 언급 없이 그저 하느님의 영, 또는 예수님의 영 정도로 취급되었다. 그러다가 358년 칼체돈 공의회에서 비로소 하느님의 한 ‘위격’(person), 성부 및 성자와 구별되는 분으로 고백되기 시작했고, 381년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 삼위일체라는 표현이 비로소 명시적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이 ‘위’라는 말은 라틴어로 ‘페르소나’(persona), 영어로 ‘퍼슨’(person)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이 ‘위’는 사람을 세는 단위다. 세는 단위는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을 셀 때는 ‘명’을 쓰는데 한국에서는 죽은 영혼을 셀 때 ‘위’를 쓴다. 사람 ‘인’(人) 자에 설 ‘입’(立)자를 쓴 ‘위’(位)! 따라서 한자어 삼위일체(三位一體)는 서양식으로 얘기하면 ‘세명일체’, 순수 한국말로 ‘세명한몸’, 곧 “하느님이 세 명인데 한 몸이다”가 되는 것이다.

여기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영성이 숨어 있다. 앞서 서양식의 세는 단위에서 ‘위격’이나 ‘인격’은 모두 ‘퍼슨’(person)이라 이야기했다. 이 인격 개념을 성경적으로 알아들으면, 인권 의식과 생명 존중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곧 하느님 한 분, 두 분, 세 분, 이렇게 하느님을 세는 단위 ‘퍼슨’이 결국 우리 인간을 세는 단위와도 같다는 것은 심오한 복음이다.

다시 상기해 보자.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가지고 태어났다. 우리 안에 하느님의 성품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인간을 셀 때 감히 하느님을 세는 단위로 센다! 이는 위대한 사상이다. 또한 우리 앞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업수이 여기면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된다. 진정한 생명 존중과 인권 의식은 이 신앙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중반까지, 성령과 삼위일체 논의는 ‘사변적’으로 흘렀다. “어디에 성령이 작용하고 나는 어떻게 성령을 경험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고 “성령은 어떤 분이고 성령과 성부, 성령과 성자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골몰했다. 이를 내재적(內在的) 삼위일체론이라 한다.

여기에서 다시 물어야 한다. 좀 더 이기적이고 실용적으로 물을 필요가 있다. “삼위일체가 나의 삶, 나의 구원과 무슨 상관인가?”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얼마나 좋은 분이신지 알게 된다. 이 물음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다.

먼저, 성부는 ‘우리 앞에 계시는 하느님’이시다. 이는 ‘먼저, 시간적으로 앞에’라는 의미다. 성부 하느님은 근원이시고 목표, 시작이요 마침이시다. 생명을 주시고, 생명의 근거 되시고, 생명의 마감을 정하시는 분이다.

다음으로, 성자는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해 계시는 하느님’이시다. 성자는 강생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어 우리를 위해 계시는 분이다. 이 ‘임마누엘’ 주님이 죄인의 대변자, 억압받고 소외받는 자의 변호인, 찾는 이와 묻는 이의 스승, 고통받고 절망한 자의 목소리가 되신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이시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능력을 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탄식해 주시는 분이다. 그리하여 새로움, 평화, 쇄신을 가져다주시는 분이다.


■ 파라클리토

예수님은 성령께 별명을 붙여주셨다. 파라클리토 성령이다. 라틴어로는 ‘파라클리투스’(paraclitus)라 하고, 그리스어로는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라 한다. 여기서 ‘파라’는 ‘~옆에’라는 뜻. ‘클레토스’는 ‘불러서 세우신 분’이다. 합쳐서 ‘내 옆에 서 계신 분’이 된다.

구약시대 모세의 지팡이를 연상케 한다. 모세는 주님의 증표인 지팡이를 들고 다녔다. 구약의 백성들은 추상적인 것을 잘 알지 못했고, 지팡이처럼 뭔가 시각적인 것을 좋아한다. 뭔가 번개 같은 걸 동원해서 오시는 하느님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주님께서 모세와 백성들의 눈높이에 맞춰주신 것이다. 그래 모세한테 “성령이 임했다”고 말로만 하면 확신이 덜하니까 주님께서 모세한테 큰 지팡이 하나를 주신 것이다.

“너 이거 들고 다니면서 딱 뻗치면 내 권능이 드러나리라. 이것으로 바위를 치면 어떻게 돼? 물이 터지리라”(탈출 4,1-9 참조).

우리에게도 주님은 말씀하신다. “다들 지팡이 하나씩 줄게, 지팡이.” 성령은 결국 지팡이다.

이 파라클리토 성령이 신약에서는 더 확연히 드러난다. 작별의 때가 가까워 오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키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슬픔에 잠긴다. 이때 예수님은 파라클리토 성령을 약속하신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파라클리토),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요한 15,26-27).

자신이 제자들 곁을 떠나게 되겠지만 대신에 그들을 도울 보호자이신 성령이 함께 하실 것을 확신시켜주시기 위한 말씀이었다. 그런데 실상 제자들이 “그래서 그러셨구나” 하며 무릎을 친 것은 나중에 실제로 성령의 강림을 체험하고 난 다음이었다.

파라클리토는 이처럼 대변인, 보호자, 위로자라는 뜻 외에도 ‘깊은 한숨’, 곧 탄식의 의미도 있다. 말 그대로 성령은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며 우리를 위해 중재하신다. 로마서 8장은 이런 파라클리토 성령을 필요로 하는 인류 전체, 더 나아가 이 지구의 상태를 잘 요약해 준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로마 8,22-23).

성령은 탄식하시며 우리를 위해 대신 기도해 주시기까지 한다.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26).

탄식이 뭔가. 한숨, 신음…. 내가 병석에서 끙~ 하고 내는 소리는 누구 소리인가? 성령의 소리다. 성령의 신음소리다. 그러기에 그저 벽만 바라보고 끙~ 그러면 내 작은 신음소리지만, 하늘을 바라보면 기도가 되는 것이다. 이 한숨기도, 신음기도를 잘 바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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