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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40) 나의 은사 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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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40) 나의 은사 계발
 
‘이미 받았다고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 교황은 누구나 될 수 있단다

내 외부 활동이 뜸했던 시절, 해마다 가을걷이철이 되면 손수 농사지은 쌀과 순무를 들고 날 찾아오는 부부가 있었다. 나에게 세례를 받은 은혜를 결코 잊을 수 없다는 그들의 신앙에 되레 은혜를 받곤 했다. 다 좋은데, 그들이 돌아가면서 남기는 인사말이 늘 부담이었다.

“성인 사제 되세요.”

쌀과 순무 값으로 치러야하는 값치고는 너무 비싼 숙제였다. 그냥 사제로 사는 것도 벅찬 일인데 성인 사제라니!

하지만 이후 그보다 훨씬 더한 영적 잔소리꾼 송해붕 세례자 요한을 만난 이후 나의 이 푸념은 쑥-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금시초문인 독자들을 위하여 참고로 말하자면 송해붕 세례자 요한은 6·25때 24살의 나이로 고촌 천등고개에서 순교한 분으로서, 지금의 미래사목연구소가 고촌에 자리 잡게 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분은 생전에 늘 이렇게 강조했다.

“너 성인 성녀 되기를 힘쓰라. 변변한 성인 성녀가 아니라, 완전한 성인 성녀 되기를 힘쓰라.”

오늘 우리네 영적 정서에는 좀 무리인 듯한 이 주문이 바티칸과 통했는지, 최근 요한 바오로 2세와 요한 23세 교황의 시성식이 내년에 동시에 거행된다는 낭보가 들려왔다. 우리와 동시대를 산 인물의 시성식이라 더 반갑게 여겨진다.

차제에 요한 23세 교황의 성인스런 발상을 즐겨보자. 요한 23세가 교황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브루노라는 소년이 장차 자신이 무엇이 되면 좋을지 묻는 편지를 보내왔다.

“친애하는 교황님, 저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요. 저는 경찰이나 교황이 되고 싶은데, 교황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교황은 이런 답장을 보냈다.

“귀여운 브루노, 나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한다니 몇 마디 적어 보내마. 우선 경찰은 즉석에서 바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도록 해라. 그리고 교황은 누구나 될 수 있단다. 내가 교황이 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야. 혹시 로마에 올 일이 있거든 나를 만나러 오렴. 이 모든 문제에 대해 너와 이야기를 나눈다면 몹시 기쁘겠구나.”

요한 23세의 조언이 통쾌한 것은 그가 ‘경찰’에 대한 존경심을 가졌다는 데 있다. ‘경찰’직도 그가 보기에 ‘교황’직 못지않게 하늘이 내려준 천직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그것들을 따로따로 나누어 주십니다”(1코린 12,11).
 

■ 카리스마

성령을 믿는 것 곧 ‘크레도 인 스피리툼 상툼’(Credo in Spiritum Sanctum)은 성령의 은사를 믿고 발휘하는 것을 포함한다.

성령의 은사를 ‘카리스마’(charisma)라고 한다. 복수형은 ‘카리스마타’(charismata)다. 이는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선물이다.

보통 세속적으로 쓰는 ‘카리스마’라는 단어가 여기서 왔다. 딴 말이 아니다. “그 사람 참 카리스마가 있네!” 카리스마가 있다? 어떤 느낌이 드는가? 뭔가 범상치 않은, 땅에서 생긴 것이 아닌 것 같고, 천부적으로 위에서 뭔가 부어주신 것 같은 아우라. 그걸 카리스마라 칭한다.

사도 바오로는 이 카리스마가 모두에게 부어졌음을 강조한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 이 모든 것을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일으키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그것들을 따로따로 나누어 주십니다”(1코린 12,7.11).

성령은 믿는 이들 각자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셨다. 신자들은 그 은사에 근거하여 다양한 임무와 직책을 위임 받았다.

코린토1서 12장은 공동체의 건설에 유익을 끼치는 아홉 가지 성령의 은사를 열거한다. 이 은사들을 우리는 선교 은사, 표적 은사 그리고 계시 은사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선교의 은사가 있다. 여기에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속한다.

다음으로, 표적(表蹟)의 은사가 있다. 여기에는 믿음의 은사, 치유의 은사, 기적의 은사가 속한다.

끝으로, 계시의 은사가 있다. 여기에는 예언의 은사, 식별의 은사, 이상한 언어와 해석의 은사가 속한다.

중요한 것은 이 성령의 은사들이 모두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다는 사실이다(1코린 12,7 참조).
 

■ 은사 발휘

하느님이 나에게 은사를 주실 때는, 순리적으로 주신다. 하느님은 당신이 하시는 일 가운데 거슬러서 하시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이미 순리가 하느님의 법칙이니까. 당신은 당신 법칙을 써먹으시지 당신 스스로 거스르지 않으신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 은사를 주실 때 소질, 성품, 경력 등을 면밀히 보시면서 적절하게 예술적으로 주신다. 심지어 고통스런 경험까지도 은사의 계기로 삼으신다. 고통의 체험을 위로의 은사로 승화시켜 활용하시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누구든지 자기 은사가 있다. 혹여 “나는 받은 은사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고해성사를 볼 일이다. 거짓말한 죄, 은사발휘 안한 죄, 그 귀한 은사에다가 곰팡이 피게 한 죄를 지었기 때문이니.

한때 아인슈타인은 조국 이스라엘로부터 대통령직을 제의받았었다. “국회는 만장일치로 당신을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했습니다. 조국을 위해 봉사해 주십시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이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물리학을 가르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렇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자리다. 그네들 문화에선 학자가 정치에 뛰어드는 일이 없다. 각자 고유분야 전문가로서의 명예를 더 중요시한다. 이는 경륜이며 안목이다. 나아가 국가 저력의 비밀이기도 하다.

교회는 오케스트라다. 다양한 은사가 모여 아름다운 곡률을 연주하는 협연인 것이다. 관악기 연주자가 현악기 연주자에게 왜 그것을 연주하느냐고 탓하지 않고 자신의 악기연주에 몰두하듯이, 교회의 모든 분야의 투신하는 사람들은 다른 분야의 투신자들을 포용하면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하여 최대한 조화를 이루며 합심하여 감동적인 화음을 만들어 내야 한다.

성령은 사용할수록 많아지고, 봉사를 위해 내어놓을수록 불어난다. 성령은 감추어둘수록 줄어들고, 나만을 위해 움켜쥘수록 사그라진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25,29).

이 말씀은 은사발휘를 게을리 한 사람을 향한 경고인 동시에 교회를 향한 경종이다. 물론 여기서는 현상적인 것을 말한다. 곧 더 넉넉해진다는 것은, 그 사람이 자기 은사를 계속 쓰고 발휘하니까 결과적으로 더 받은 것이 된다는 얘기고, 이미 가졌는데 안 써먹으니까 없어져서 결국 빼앗기는 꼴이 되고 만다는 얘기다.

은사는 ‘이미 받았다고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성령의 은사를 우리는 이미 세례 때 받았고, 견진성사 때 겹쳐서 받았다. 주님은 이렇게 주셨는데 우리는 써먹지 않으면서 없다고 우기기 다반사다.

성령은 무주공산이다. 무주공산이 뭔가? 임자 없는 땅이란 말이다. 그러니 한마디로 성령은 써먹는 사람이 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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