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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124)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 (41) - 신약(새 계약)의 효시, 예레미야 (하)

약속에 충실했던 ‘레캅인’ 통해 계명 중요성 역설


 

■ 새 계약

예레미야 예언자의 독보성은 그가 신약 곧 ‘새 계약’ 시대의 도래를 일찌감치 예언했다는 사실에 있다. 그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함과 동시에 70년 귀양살이 후 예루살렘에 찾아올 새 영광에 대해서도 다채롭게 예언한다. 바로 그 맥락에서 예레미야는 ‘새 계약’에 대한 거시적 계획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선포한다. 이는 구약 시대에 발설된 예언 메시지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본문은 이렇다.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은 내가 저희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그때에는 더 이상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자기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예레 31,31-34).

예언 말씀의 요지는 “조상들이 옛 계약을 깨뜨렸다. 그래서 새 계약을 맺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옛 계약은 돌판에 새겨진 계약, 곧 십계명 판으로 맺은 계약이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을 깼다가 그토록 혼쭐이 나고도 또 깨뜨리는 답답한 짓을 반복하였다. 법이 ‘돌판’에, 곧 우리 바깥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왜 이것을 지켜야 되는가?”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새 계약이 맺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법을 ‘돌판’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 주신다고 하셨다. 이는 나중에 신약시대에 와서 실제로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하여 완전히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그때에는 더 이상 아무도 자기 이웃이나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도 성취되었다. 참으로 놀랍고 신나는 사실이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새 계약’을 오늘날 미사의 원형인 성목요일 성찬례라는 형식을 통해서 맺으셨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5).
 
이로써 예레미야 예언자가 선포한 예언말씀이 약 600년 후에 글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언급한 ‘신약’(새 계약)이라는 용어는 그리스도교의 핵심 개념이 되었다. 이런 까닭에 그는 이사야, 에제키엘과 함께 ‘대예언자’라 불리는 것이다.


■ 레캅인

구약이든 신약이든, 중요한 것은 상호간에 그 계약을 지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예레미야서는 매우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를 전한다. 바로 ‘레캅인들’과 관련된 에피소드(예레 35장 참조)다.

이야기의 전말은 이렇다.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킴이 다스리던 때에, 하느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레캅 집안’ 사람들을 주님의 집으로 불러다가 포도주 대접을 하도록 명하신다. 예레미야는 분부대로 행한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정중히 사양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조상 레캅의 아들 여호나답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모든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 자신과 아내와 아들딸들이 평생 포도주를 마시지 않습니다”(예레 35,6-8).

이는 일종의 ‘나지르인 서원’과 유사한 가족 서원이라 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후손들이 조상의 뜻을 받들어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철저히 실행했다는 사실이다. 하느님은 이에 크게 감동하시어 이를 당신의 예언 메시지를 전하는 데에 탁월한 상징으로 삼으셨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겨냥하여 이런 예언말씀을 내리신다.

“레캅의 아들 여호나답의 자손들은 자기네 조상들이 내린 명령을 지켰지만, 이 백성은 나에게 순종하지 않았다”(예레 35,16).

반면, 레캅인들에게는 축복의 말씀이 내려진다.

“레캅의 아들 여호나답에게서 언제나 내 앞에 서 있을 자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예레 35,19).

여기서 ‘내 앞에 서 있을 자’는 하느님을 가까이 섬기며 축복을 누리는 사람을 가리킨다. 하느님께서 얼마나 흡족하셨으면 이런 선언이 내려졌을까. 이 예언 말씀을 전한 예레미야 예언자의 심중에는 어떤 감흥이 일었을까. 아마도 찰나적이지만 이런 깨달음의 탄성으로써 기도를 가름하지 않았을까.

천년의 전설이 될지어다, 레캅인의 미담.
“들어는 보았는가.
레캅이라 불리는 이의 아들이 하늘 사랑에 벅차,
온 가족을 불러놓고 ‘평생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했대,
‘그러면 하늘 복 받는다’ 했대.
그랬더니 그 아들의 아들의 손자의 손자의 사돈의 팔촌까지
듣는 이 족족 곧이곧대로 따랐대.
그랬더니 하늘이 감동했대.
그래서 하늘의 은택으로 잘 먹고 잘 살았대.”

“그런 법이 어딨어, 난 동의 못해!
그건 옛적 그분 이야기고, 오늘 우린 달라!
뭐가 문제야, 이건 단지 다들 마시는 음료수일 뿐인데!
무의미한 것에 목숨 걸 일은 아니지.”
거부의 명분은 수두룩하건만,
어쩌자고 저 맹꽁이들은
한낱 사람의 말을 ‘절대’로 받들어 모신 것일까.
세상 어느 천지에 저런 어리석음이 또 있을까.

하늘의 절대 명령도 귓등으로 들어 흘리고,
케 세라 세라(que sera, sera), 될 대로 되라
흥얼대기 일쑤인 마당에,
저네들은 기어코 경탄이로다, 충격이로다, 깨우침이로다.

오호라,
배후를 봤던 것이로구나.
그 인간적 권고에 숨겨진 신적 권위를 직감했던 것이로구나.
그리하여 약속된 대박 천복(天福)을 받아냈던 것이로구나.
그리하여 자손대대 천년을 위한, 황금같은 가르침인 것이로구나.

사람에게서 발해진 것이건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것이건,
계명이건 규정이건 법규건(신명 4,1-4 참조)
그것이 우리의 영원한 동경(憧憬)을 지향하는 한,
그 준행은 우리의 하나뿐인 선택!

당신께서는 규정을 내리시어
열심히 지키게 하셨습니다.

아, 당신 법령을 지킬 수 있도록
저의 길이 굳건하였으면!

그러면 당신의 모든 계명을 바라보며
제가 부끄럽지 않으리이다(시편 119,4-6).

계명의 배지(badge)는
정의, 사랑, 전능, 초시간이 노니는 당신의 품.
그러기에 말씀순명은
그 어떤 개혁보다도 위대한 개혁이며
그 어떤 사랑보다도 숭고한 사랑이며
그 어떤 창조보다도 참신한 창조이며
그 어떤 미래보다도 새로운 미래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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