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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125)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 (42) - 유배지의 예언자, 에제키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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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125)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 (42) - 유배지의 예언자, 에제키엘

“양 떼 흩어졌는데 찾는 이 없다” 목자들 게으름 질타


 

■ 크바르 강 가에 내린 말씀

“여호야킨 임금의 유배 제오년에, 주님의 말씀이 칼데아인들의 땅 크바르 강 가에 있는, 부즈의 아들 에제키엘 사제에게 내렸다”(에제 1,2-3 참조).

에제키엘은 특이하게 바빌론 유배지에서 예언말씀을 받았다. 여호야킨 임금의 유배 제 오년! 이 해는 정확히 기원전 593년에 해당한다. 시대적 정황 인식을 위해 바빌론 왕 네부카드네자르에 의한 예루살렘 침공 과정을 요약해 보자면 이렇다.

때는 기원전 722년 북왕국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의해 함락되고서 어언 100여 년이 흐른 뒤. 남은 반쪽인 유다왕국은 기원전 605년 여호야킴 왕 통치시절, 당시 최강국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왕으로부터 첫 번째 침공을 받는다. 두 번째 침공은 598년에 일어나는데, 바빌론 군은 어린 여호야킨 왕과 함께 다방면의 인재들을 본국으로 끌고 간다. 사제였던 에제키엘도 그들 무리에 끼여 유배 신세가 된다. 그로부터 5년 후 예언말씀이 내린 것이다.

예루살렘 성의 완전 함락은 587년 세 번째 침공을 통해 이루어진다. 빌미를 제공한 것은 치드키야 왕이었다. 그는 이집트를 끌어들여서 바빌론을 치려했다. 이에 화가 난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을 초토화시켰다. 치드키야는 자식들이 다 죽임을 당하는 꼴을 코앞에서 보아야 하는 수모를 당하고, 본인도 두 눈이 빠진 채 유배지로 끌려가게 된다.

에제키엘이 초창기에 받은 예언은 주로 ‘세 번째’ 침공을 예고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유배지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저 엄중한 심판의 까닭, 과정, 결과에 대해서 실감을 돋우는 문체로 주님의 말씀을 전했다.

이 시기에 고국 유다 땅에서는 선배급인 예레미야가 거의 동일한 내용의 예언말씀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무화과 두 광주리 환시와 함께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을 받았다(예레 24장 참조). 즉, 바빌론으로 끌려간 이들은 ‘잘 익은 무화과’로 비유될 만한 사람들로서 장차 유배지에서 특별보호를 받다가 다시 귀향길에 오르게 될 것이로되, 고국에 머물게 된 이들은 ‘불량 무화과’와 흡사한 사람들로서 향후 여러 민족에 의해 비웃음과 저주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에제키엘의 존재의미가 부각된다. 하느님께서는 유배지의 백성, 곧 이스라엘 민족의 희망 종자(種子)로 뽑혀 끌려온 인재들에게 각성, 양육, 비전을 촉진하기 위해 별도로 에제키엘을 세우셨던 것이다.


■ 새 마음

사실 해외파 에제키엘이 전한 말씀은 국내파 예레미야가 전한 말씀과 내용적으로 통한다. 그렇지 않다면 외려 그것이 문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새 마음’에 관한 것이다. 에제키엘은 예레미야의 ‘새 계약’과 한 맥락을 이루는 ‘새 마음’의 희망을 제시한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가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게 하겠다”(에제 36,26-27).

이 말씀의 일차적 청자는 유배지의 인재그룹이다. 본문을 따르면, 주님께서 주시는 ‘새 영’이 우리 안에 부어지면 돌로 된 마음이 치워지고 살로 된 ‘새 마음’이 생겨, 다시 율법의 ‘규정’과 ‘법규’들을 지킬 수 있게 된다. 이는 예레미야가 선포한 ‘새 계약’의 내용(지난 호 글 참조)과 거의 합치되는 예언이다. 요컨대, 둘은 한 짝을 이룬다. ‘새 계약’의 내용은 ‘새 마음’의 세부 내용으로 더욱 실제화되고, ‘새 마음’의 취지는 ‘새 계약’을 전제로 할 때 더욱 잘 수긍되는 것이다.

유배지 하느님 백성들이 이스라엘의 실효적 ‘미래’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에제키엘은 활약 후기로 갈수록 묵시문학적 예언으로 경도된다. 즉, 그는 희망을 현실의 변혁보다 하느님 주도적 미래의 도래에 둔다. 그러기에 에제키엘서 40장부터 등장하는 ‘새 성전’에 대한 환시와 말씀, 그리고 이와 관련한 전례 및 사제생활 규정 등은 역사 현실에서는 극미하게 구현되었을 뿐이고 그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유보되었던 것이다.


■ 몸소 나서리라

오늘 이 시대 관점에서 읽었을 때, 에제키엘서의 예언 말씀 중 특히 우리 가슴을 때리는 대목은 ‘양 떼’에 대한 탄식과 ‘목자’에 대한 맹타다. 주로 목자들의 태만과 직무유기를 질타하는 34장의 말씀은 매섭다. 이를 빌미로 우리 시대 강력한 위협인 ‘신천지’이단이 기성 그리스도교 목자들을 ‘사탄의 하수인’이라 싸잡아 부정한다. ‘신천지’의 해괴한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서라도 그 힐난의 참뜻을 묵상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그중 한 구절.

“산마다, 높은 언덕마다 내 양 떼가 길을 잃고 헤매었다. 내 양 떼가 온 세상에 흩어졌는데, 찾아보는 자도 없고 찾아오는 자도 없다”(에제 34,6).

이 말씀을 능선으로 삼아 하느님의 개탄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 말씀을 전한 에제키엘이 타임머신을 타고 이 시대에 나타난다면, 하여 지구촌 전 교회를 일주한다면, 과연 그의 입에서는 어떤 말이 튀어나올까. 지그시 눈을 감고 공감해 본다.

텅 빈 수도원
한적한 제단
녹슨 성당 종소리
….
믿음의 폐허에
사쿠라(주-거짓) 봄이 찾아왔구나.

수도원이 풍광을 팔아 고급호텔로
제단이 운치를 팔아 품격 호프집으로
종탑이 유서(遺緖)를 팔아 관광명소로
개조되더니
초과 호황을 맞아
외지 길손들로 북적거리는구나.

어디 갔느냐
새벽부터 벌떼처럼 바지런하던 수도자들,
로마군단을 방불케 하던 교계 사제단들,
종소리에 맞추어 어김없이 삼종기도 올리던 내 백성들….
대체 다들 어디 갔느냐.

슬픔이 북받쳐 말문이 막히네.
못 본 체 하자니 망측한 꼴들에
굳게 감긴 두 눈은 그만 투명창이 되어버리네.

수도자들, 목자들, 목자 까무리들은
진즉 세속재미를 좇아 뿔뿔이 흩어졌고,
일찍이 맡겨놓은 내 새끼들은 뱃속 공허를 채우려
저마다 무리를 떠나 헛군데를 기웃거리는구나.
점집, 명상센터, 마음수련, 사이비종교, 뉴에이지 할 것 없이
‘짝퉁’ 신당(神堂)마다 내 짝사랑 내 백성들로 바글거리고,
내 딸 내 아들들이 ‘힐링’을 팔아먹는 장사치들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구나.
모두들 “흩어진 채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구나(에제 34,5).
‘강도들’(요한 10,1 참조)에 미혹되어 죽음의 길로 치닫는구나.

청승 끝! 나의 애통은 여기까지.
더 두고 볼 수 없어, 내가 몸소 나서리라.
나, 몸소 내 양 떼를 먹이리라.
나, 몸소 그들에게 안식주리라.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주리라(에제 34,16).
이는 나의 말이라 어김이 없다.

언제? 어떻게? 하늘 아버지만이 아시는 비밀이겠지만, 각자 불린 소명과 열정만큼의 몫들이 배당될 것임은 예감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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