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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127)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 (44) - 깜짝 캐스팅, 키루스 왕

칙령 발표로 70년 유배 종지부… 예루살렘 귀향길 열어



■ 슬픔의 노래

지난 글들에서, 뽑힌 이스라엘 인재들의 바빌론 유배에 대해서 누차 언급하였다. 머나먼 이국에서의 강제 타향살이! 얼마나 고달팠을까?

패자의 수모와 생활고 역시 만만치 않았겠지만, 짐작건대 그들을 가장 괴롭힌 것은 ‘버림받은 자’의 절망이었을 터다.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 봐도 ‘예루살렘’이 멸망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불패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부동의 근거가 있었다.

첫째 근거는 “네 왕좌가 영원하리라”(2사무 7,16 참조)라고 다윗 왕가에 주셨던 약속이었다.

둘째 근거는 “내 이름을 거기에 두겠다. 내 눈도 거기에 두겠다. 내 마음도 거기에 두겠다. 거기 내가 있겠다”(신명 26,2 이외 참조)라고 예루살렘 성전에 두고 내리신 약속이었다.

그런데 왕조가 끝장나고 성전이 허물어졌다! 이만저만한 충격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까닭을 모를 그들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나오면서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었다.

“너희가 이 법을 지키면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탈출 19,5-6 참조).

바로 이 계약이 깨진 것이었다. 성찰해 보니 하느님께서 ‘계약’을 파기할 만도 하셨다. 아니 계약을 깬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었다. 율법의 첫 계명을 깨고 온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 빠졌던 것이다. 계약이 깨지니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이상 ‘우리의 하느님’이 되어 주질 않으셨다. 그리하여 버림받은 꼴이 되어 버린 이스라엘. 이보다 더 큰 절망이 어디 있겠는가.

고국에 남아있건 바빌론에 끌려갔건, 이 절망은 눈물이 되었다. 예레미야의 ‘애가’는 그 눈물방울의 집적이다.
 
“내 눈은 쉬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멈출 줄을 모르네”(애가 3,49).

하지만 어떤 비탄에서도 우리가 붙잡고 매달릴 한 가닥 희망이 있다. 그것은 주님의 자애다.

“주님의 자애는 다함이 없고 그분의 자비는 끝이 없어 아침마다 새롭다네. 당신의 신의는 크기도 합니다”(애가 3,22-23).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기도도 막히는 그 순간에, 우리가 움켜잡을 것은 오직 주님의 ‘끝없는 자애’뿐이다.


■ 70년 복역기간이 차고

하느님 사람의 시계는 세상의 시계와 엇박자로 돈다. 세상이 태평세월을 구가할 때는 뜬금없이 심판을 예고한다. 세상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는 희망을 선포한다. 깨진 계약, 그리하여 초래된 왕조의 몰락과 예루살렘 성전의 함락, 그리고 유배, 이 파국의 상황에서 예언자들이 전한 하느님의 메시지는 ‘희망’ 일색이었다.

희망의 근거로서 예레미야는 ‘새 계약’(예레 31,31-34), 에제키엘은 ‘새 마음’(에제 36,26-28)을 내세웠음을 먼저 글에서 확인했다. 제2이사야(원조 이사야의 제자급)는 ‘새 창조’를 내세운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바빌론 유배는 확실히 이스라엘의 반역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이었으며, 자신들의 죄를 씻기 위하여 치러야 했던 복역 기간이었다. 제2이사야는 이런 배경에서 그 종료를 선포한다.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이사 40,2).

정확을 기하자면 복역 기간은 70년이다. 이는 예레미야에게 알려준 기간이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바빌론에서 일흔 해를 다 채우면 내가 너희를 찾아, 너희를 이곳에 다시 데려오리라는 은혜로운 나의 약속을 너희에게 이루어 주겠다’”(예레 29,10).

제2이사야는 “바야흐로 이 기간이 채워졌다”고 선언한 셈이었다. 이어, 그는 창조주 하느님께서 새 역사를 창조하실 것임을 선포한다.

“너의 구원자이신 주님, 너를 모태에서부터 빚어 만드신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주님, 모든 것을 만든 이다. 나는 혼자서 하늘을 펼치고 나 홀로 땅을 넓혔다… 나는 키루스에 대하여 말한다. ‘그는 나의 목자. 그가 나의 뜻을 모두 성취시키며 예루살렘을 두고 ‘그것은 재건되고 성전은 그 기초가 세워지리라’ 하고 말하리라’… 나는 빛을 만드는 이요 어둠을 창조하는 이다. 나는 행복을 주는 이요 불행을 일으키는 이다”(이사 44,24.28 45,7).

굵은 글자체에 주목하여 읽으면 ‘창조’의 주님이 ‘희망’의 근거임을 금세 직감하게 된다. 예언이 그렇듯이 이 말씀은 사후 기록이 아니라 사건에 앞서 내린 예고다. 그러기에 ‘희망’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요지는 ‘창조주’ 하느님께서 절단난 70년 역사의 질곡을 뒤집을 ‘새 역사’를 창조하신다는 말씀이다. 이를 위해 하느님께서 기발하게 등장시킨 인물이 바로 키루스 왕이었다.


■ 키루스 칙령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향을 법적으로 보장해 준 것은 ‘키루스 칙령’이었다. 이는 기원전 538년에 반포되었다. 1차 유배가 기원전 605년에 시작되었으니 기원전 538년은, 이동 및 정착과정의 시간손실을 감안하여 계산하면, 정확히 70년이 채워진 해였던 셈이다.

이 역사적인 시점에서 하느님은 페르시아(오늘날 이란) 왕국을 일으켜 바빌론(오늘날 이라크) 왕국을 치신다. 왕의 이름은 키루스.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는 야훼를 공경하는 인물이었다. 깜짝 캐스팅?! 그는 곧바로 칙령을 내린다.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이제 그들이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집을 짓게 하여라”(에즈 1,2-3).

이리하여 유배지 포로들의 귀향길이 열리게 된다. 알다가도 모르겠는 하느님의 구원섭리에 경탄할 뿐이다. 하느님께서는 키루스를 어떻게 사로잡으셨을까. 키루스는 어떤 기도를 바쳤을까. 우리에겐 가시지 않는 수수께끼다. 가는귀에 들려오는 그의 투박한 기도소리에선 향기가 묻어난다.

나를 불쑥 찾아오신 이시여,
내 왕국을 일으켜 세우신 이시여,
내가 알면서도 모르는 이시여,

명하신 대로,
바빌론을 쳐 무찌르고,
끌려온 백성의 귀향을 허하는 칙령을 반포했사오니,
내 앞길 굽어 살피소서.

나를 불쑥 찾아오신 이시여,
내 왕국을 일으켜 세우신 이시여,
내가 알면서도 모르는 이시여,

내가 아는 것은
당신이 이 바닥 700년 ‘불멸의 전설’ 모세의 하느님이시라는 것.
내가 어렴풋이 아는 것은
당신으로 인하여 얼떨결에 내게 지상의 권세가 쥐어졌다는 것.
내가 모르는 것은
끔찍이도 당신 백성을 돌보시는 당신 사랑의 깊이.

나를 불쑥 찾아오신 이시여,
내 왕국을 일으켜 세우신 이시여,
내가 알면서도 모르는 이시여,

홀연 나를 떠나지 마소서.
돌연 내 왕국을 허물지 마소서.
문득 내가 당신을 흠모하게 하소서.

엎디어 청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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