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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상식

가톨릭 일반상식과 간단한 교리를 담는 게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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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12)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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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교회의 설립, 그리고 교회 구성원인 그리스도인이 수행하는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은 모두 ‘인류의 구원’과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일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인류의 구원을 위해 봉사합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며,

이는 곧 신경의 마지막 고백인 ‘영원한 삶’에 대한 믿음에 근거합니다.

 

 생활 : 생명

 

생명. 크나큰 숭고함이 느껴지는 말입니다.

살아 숨 쉬는 것은 모두 숭고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를 보거나 누군가의 임종을 지켜볼 때,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숭고함을 느낍니다.

 

생명은 그것을 지닌 존재가 스스로 변화하게 합니다.

가을에 날리는 낙엽, 겨울철의 앙상한 나뭇가지, 봄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순,

여름철의 푸르른 잎사귀…. 생명은 우리를 살게 하고 움직이게 합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움직입니다.

그들 안에 생명의 역동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살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존재는 죽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사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너무나 큰 고통에 직면하거나 삶의 의미나 보람을 느끼지 못할 때,

우리는 삶의 의욕을 잃고 맙니다.

 

고통이 없다면, 살고 싶은 것은 당연합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는 까닭은 죽음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죽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살고 싶습니다.

그것도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살고 싶습니다.

 

저는 얼마 전 제 안에 있는 생명의 역동성을 크게 느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늦은 밤, 무거운 짐을 옮기다가 허리를 다쳤습니다.

그렇게 다친 채로 자다가 중간에 깨어났는데 전신마비처럼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구급차를 부르려 해도 전화기까지 갈 수가 없었고, 독방에 누워있던 터라 혼자서 그 상황에 대처해야 했습니다.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척추가 심하게 다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일었습니다.

해야 할 일과 중요한 일정이 많았던 때라 이를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를 생각했습니다.

특히, 그날 아침 수도원 미사를 제가 집전해야 했기 때문에 옆방의 수사님이 아침 미사에

참석하러 방을 나갈 때를 기다려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두려움과 걱정, 외로움과 어두운 방의 스산한 공기가 저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발끝부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30분이 지나서는 두 무릎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몸을 한쪽 방향으로 돌리는 데에 또 다른 30분이 걸렸습니다.

다시 30분 뒤에는 몸을 뒤집고 침대에서 내려와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 의지로 했다기보다 제 몸이 한 것이었습니다.

제 몸이 생명의 본능에 따라 조금씩 움직이며 편안한 위치를 찾아가더니 결국 나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척추를 다친 것이 아니라 근육이 너무 놀라 일어난 일이었고, 다행히 저는 그날 아침 미사를 집전할 수 있었습니다.

 

 교리 : 하느님의 생명

 

“스스로 한없이 완전하고 복되신 하느님께서는 순수한 호의로 계획을 세우시고,

자유로이 인간을 창조하시어 당신의 복된 생명에 참여하도록 하셨다.

… 하느님께서는 죄 때문에 흩어진 모든 사람을 당신 가족인 교회의 일치 안에 불러 모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때가 찼을 때, 이 일을 이루시고자 당신의 아들을 구속자와 구원자로 보내주셨다.

그분 안에서, 그분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불러 성령 안에서 당신의 자녀로 받아들이시고

당신 복된 삶의 상속자가 되게 하신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항).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시작부터 하느님의 복된 생명과 그 생명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은 인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은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생명의 원천이자 주인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죄 때문에 하느님의 생명으로부터 멀어졌으나,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통해, 성령 안에서 우리를 당신 생명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에게서 받은 우리의 생명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 안에 살아있는 생명의 역동성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교회는 각 사람의 영혼이 …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셨고 불멸한다고 가르친다.

죽음으로 육체와 분리되어도 영혼은 없어지지 않으며, 부활 때 육체와 다시 결합될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366항).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죽음을 예수님의 죽음과 연결 지으며, 죽음을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여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20항).

 

 말씀 : 영원한 생명과 향주삼덕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

교리서가 처음으로 인용하는 성경구절인 이 말씀은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를 말해줍니다.

곧, 참하느님을 아는 것이고 이를 통해 그분을 닮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간직하고 죽은 사람들과 완전히 정화된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된다. 그들은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기 때문에 영원히 하느님을 닮게 될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23항).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8.12-13).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을 때, 우리 영혼이 지니고 갈 것은 바로 향주삼덕,

곧 믿음, 희망, 사랑입니다. 그 가운데에 으뜸인 사랑은 하느님을 온전히 알게 되었을 때,

더욱 충만히 완성될 것입니다.

 

사랑의 계명이 중요한 이유는, 그리고 향주삼덕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하느님 앞에 들고 갈, 영원한 생명이 영원한 불행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이 되게 하는 생명의 열매이자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우리에게는 하느님께 부여받은 생명의 역동성과 숭고함이 있습니다.

이 생명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지상에서 향주삼덕을 통해 그분을 알고 바라고 사랑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고 영원한 삶이 영원한 행복이 되게 하는 힘을 간직하게 됩니다.

 

▶ 살아계신 하느님과 살아있는 나 자신을 생각해 봅시다.

하느님께서 내 생명의 근원이시며 주인이심을 기억합시다.

내가 지닌 생명의 숭고한 신비를 깊이 느끼며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 죽음이 생명의 끝이 아님을 기억합시다.

생명의 본성이 ‘살고 싶은 것’이기에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영원히 살게 되었다는 것에 기뻐합시다.

 

▶ 영원한 생명이 영원한 불행이 아닌 영원한 행복이 되려면

우리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과 깊이 일치되어야 함을 기억합시다.

향주삼덕의 실천이 바로 이러한 길을 열어주는 은총의 열매임을 기억하고 날마다

하느님을 더욱더 믿고 바라고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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