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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기도를 배우다 (18) 하느님의 뜻에 따라 기도하시는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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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배우다 (18) 하느님의 뜻에 따라 기도하시는 성령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로마 8,27).

 

 

문맥 보기

 

기도하면서 느끼는 나약함은 기도할 때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청하는 것이 좋은지 모른다는 데 있다(26절). 

27절에서 바오로는 성령의 중재 기도를 ‘하느님의 뜻에 따라’라는 표현으로 더욱 구체화하여 소개한다. 

이 구절은 신약에서 유일하게 성령의 중재 활동을 언급한 구절이다. 성령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궁극 목적은 이어지는 28-30절에 소개된다. 성령은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선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을 신뢰하고, 평온하게 그리스도의 모습과 닮아 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도록 기도하신다.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

 

누가 우리 마음을 살필 수 있을까? 누가 우리 마음 밑바닥에 흐르는 말없는 탄식을 꿰뚫어 볼 수 있을까? 

오로지 하느님만 인간의 마음을 아신다.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호 에라우논 타스 카르디아스 ὁ ἐραυνῶν τὰϛ καρδίαϛ)”이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을 가리킬 때 종종 사용된다(1역대 28,9; 29,17; 시편 7,10; 139,1.23; 예레 17,10 참조).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은 종종 인간적 태도를 취하시는 분으로 소개된다. 그분은 굽어보시고, 

인간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시며, 인간의 가난과 비참을 측은히 여기신다. 

하느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당신의 창조물인 인간을 샅샅이 살피고 아시는 분이다.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살펴보시어 아십니다. 

제가 앉거나 서거나 당신께서는 아시고 제 생각을 멀리서도 알아채십니다”(시편 139,1-2).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악을 보시며 그것을 판단하기도 하신다. 

그러나 인간은 그분의 판단을 헤아리기 힘들다. 하느님께서 아시는 ‘성령의 생각’은 

우리를 위한 성령의 중재 내용, 곧 “말로 다할 수 없는 탄식”(26절)을 의미한다. 

26절에서 성령의 중재 기도가 “말할 수 없는 탄식”인 이유가 27절에서 설명된다. 

하느님은 인간의 마음, 인간 내면의 비밀을 꿰뚫어 보실 수 있는 분이어서 말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성령의 탄식이 인간이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는 적절한 언어의 꼴을 갖추지 않아도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신다. 이 구절에서 바오로는 

“하느님은 기도할 때 우리의 말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을 평가하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 준다”

(오리게네스, 《로마서 강해》 7,6).

 

하느님이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라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믿는 이들이 성령을 통해 바치는 기도, 

곧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을 듣고자 하느님께서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도 보여 준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고, 내가 청한 것을 하느님께서 자꾸 

잊어버리기나 하신다는 듯 되풀이해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종종 긍정적 답변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성령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기도하기 때문에 항상 하느님께서 그 기도를 받아들이신다. 

하느님의 뜻은 인간의 무지와 나약 때문에 좌절되지 않고 그것을 충만히 완성한다. 

성령이 우리를 위해 중재 기도를 하고 하느님께서 그 성령의 생각을 받아들이시기 때문이다.

 

 

중재자인 성령

 

‘간구하다’로 번역된 동사(엔튄카노 ἐντυγχάνω)는 ‘긴급하게 어떤 것을 계속 청하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청하는 대상이 하느님이므로 이 동사는 ‘중재하다’를 의미한다. 

바오로는 이 개념을 어디에서 가져왔을까? 당시 유다교에는 천사 같은 하늘의 중재자가 

하느님과 인간을 중재한다는 개념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쿰란 공동체 회원들도 

성령을 통해 하느님께 기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는 어떤 인간도 당신에게서 갈라지면 의롭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영원히 당신 종에게 

당신의 호의를 베풀어 달라고 당신이 저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기도합니다”(1 QH 16,11-12). 

그러나 성령의 중재 기도에 대한 바오로의 확신은 아마도 자신의 나약과 무능력을 받쳐주는 

하느님의 힘을 체험했던 초대 그리스도인의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체험은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에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을 언급한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법정에 넘길 때, 무슨 말을 할까 미리 걱정하지 마라. 

그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시는 대로 말하여라.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다”(마르 13,11).

 

 

하느님의 뜻에 따라

 

27절에서 성령의 중재 개념은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여, 또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카타 테온 κατὰ θεὸν)”라는 표현으로 더욱 명확하게 밝혀진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청하는 제자들에게, 기도할 때 무엇을 먼저 청해야 할지

순서를 정하면서 기도의 모범을 보여 주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태 6,9-10).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기도하는 법과 자세를 잃어버렸다. 이제 성령이 그런 그리스도인을 돕기 위해 오시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를 위해 기도하신다.

 

하느님의 뜻에 따른 성령의 기도는 성령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우리를 일깨운다. 

성령은 예전에 없던 새로운 기도 방식을 창안해 내신 것이 아니다. 

성령의 중재 기도는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기도를 다시 떠올리게 하여 

그것을 계속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성령의 일은 ‘하느님 아들’의 죽음과 부활로 시작된 

하느님의 일을 믿는 이들이 계속하게 하는 것이다. 성령은 단독으로 활동하지 않고 항상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일하신다. 아버지와 아들은 성령을 통해 행동하고 성령에 의해 대표된다.

 

여기서 성령은 삼위의 한 위격이라기보다 인간과 하나가 되어 모든 것을 함께하는 

인격적 존재로 간주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성령은 인간의 마음과 일치하고 

그 안에 적절한 기도의 형태를 형성시키신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성령은 

우리 인생의 길을 비추는 내면의 스승이며 영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성령의 기도 목적

 

믿는 이들이 항상 희망에 차 있고 평화를 간직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성령이 하느님 뜻에 따라 살아가도록 기도해 주시기 때문이다(8,26-27 참조). 

무엇 때문에 성령은 우리를 위해 그런 기도를 하시는가? 이어지는 28-30절은 성령의 중요한 

기도 목표가 하느님 계획의 완성, 곧 믿는 이들이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상을 닮아가게 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성령은 기도 중에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알게 하고, 장차 그리스도처럼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 

우리의 미래임을 상기시키신다. 성령은 우리의 시선을 현재에 두면서도 미래를 향해 이끌어가신다.

 

 

바오로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

 

바오로 사도여, 제가 기도할 때 저 혼자가 아니라 성령께서 함께 기도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성령은 항상 하느님이 ‘아빠, 아버지’이심을 떠올리게 하십니다. 

그분은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는 저를 도와주십니다. 기도한다고 해서 삶의 

모든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것이며 하느님께서 무엇을 바라시는지도 알 수 없지만, 

하느님께서 저를 사랑하시며 저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이 당신 계획의 모자이크 

조각들이라고 계속 말씀하시기에 저는 희망을 갖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 마음을 살펴보시고 

성령을 통해 오늘도 내일도 제 삶을 그리스도 곁으로 끌어당기며 제가 거대한 

하느님 가족에 속한다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기도는, 성령의 생명력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의 현존에 참여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며 그분과 친교를 나누는 일치를 뜻합니다”(장 라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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