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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동영상] 성체의 기적-많은 시청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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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의 기적(동영상 30분 시청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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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체성혈에 대해서 알아본 성체교리

◎ "과연 이 작은 빵안에 예수님이 계시는가?"

빵과 포도주의 형상안에 예수 실재 단순히 상징적 의미로 격하는 ‘위험’ 성체 통해 주님수난·부활 직접체험 / 회개하는 사람이 ‘의인’‘못하는 것이 아니고 안하는 겁니다.’ 스스로 성체 신심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신자라면 최근 공익광고에 나오는 이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성체 신심은 성체 안에 현존하는 그리스도께 다가가려는 마음을 가지면 가질 수록 더욱 깊은 의미로 와 닿는다. 반대로 성체에 대한 공경을 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그 신비에 대한 묵상은 불가능해진다.

삼위일체대축일 바로 다음 주일에 지내는 그리스도의 성체성혈대축일은 성체성사의 제정과 신비를 기념하는 축일이다. 삼위일체대축일이 하느님의 존재 방식에 관한 문제라면 성체성혈대축일은 가톨릭 교회의 존재 방식과 근거, 이유, 그리고 개인의 구원에 관한 문제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신자들은 성찬례를 통해 우리 몸 안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의 의미를 깊이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88년 전국의 신자들이 한마음이 되어 준비하고 성공적으로 치러낸 세계성체대회의 그때 그 열성을 다시 한번 되살려본다.

◇인간적인 의문들
사실 빵의 형상 안에 그리스도가 실재한다는 것을 이성으로 완전히 납득하고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과연 이 작은 빵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말인가.” 최근에 세례를 받은 신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러한 의문을 가져 보았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일부 신자들 중에서는 성체를 평가 절하하고 잘못 해석해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성찬례를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공동 식사로 바라보는 위험스런 시각도 있다. 이런 의문들은 오늘을 사는 신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11세기의 제렌가리우스(?∼1088)는 성체 안에 예수가 실존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상징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었으며, 이후에도 이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사람이 성체성사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러한 의문들은 중세로 넘어오면서 전유럽으로 확산되었고 특히 종교 개혁자들에 의해 강하게 제기됐다.

이런 논란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트리엔트 공의회에 와서 11개의 교리로 정립됐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성체 안에서의 그리스도는 단지 상징 내지는 비유, 효력면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실재적(實在的)으로 존재하며 ▲모든 그리스도 신자는 1년에 적어도 부활절에는 성체를 영해야 하며 ▲대죄중에 있는 자는 성체를 영하기 전에 반드시 고해성사를 보아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교리를 발표했다. 이는 신앙고백으로 정리돼 교황 비오 4세에 의해 발표됐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 성체, 성체성사의 의미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1347∼1380)는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대화’ 서문에서 “영성체 때 영혼이 하느님과 친밀하게 일치되고, 그분의 진리를 깊이 파악했기 때문에 물고기가 바닷물 속에 있고 바닷물이 물고기 속에 있는 것처럼 내 영혼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은 내 영혼 안에 있었다”며 성체성사에서 오는 은총을 찬미했다. 성체·성혈의 사전적 의미는 빵과 포도주라는 외적인 형상 속에 실재로, 본질적으로 현존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다. 이 성체는 세상 끝날까지 인간과 함께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에서 비롯된 실재적인 현존이다. 그리고 미사성제(성찬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이 계속됨으로써 모든 인류는 구원된다.

또 이 성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예수의 몸이 현존하는 성체는 예수의 수난과 부활을 체험하게 하고 성부께로 이르게 한다. 성체는 우리를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성부께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가톨릭 신앙인에 있어 성체에 대한 신심은 매우 중요하다. 성체에 대한 신심이 없으면 모든 신앙생활이 무의미한 것도 이 때문이다.

◇ 실천적인 문제들
이처럼 성체의 의미가 더없이 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적어도 표면적 으 로는) 신자들의 성체 신심은 미약한 것처럼 보인다. 주일미사를 통해 예수의 성체 변화에 감동받지 못하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선 신자들은 예수의 최후의 만찬이 200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실제적 으로 매일 미사안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찬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자세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다.

또 성체와 관련된 성시간, 성체강복 등의 전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성체조배는 진리를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뜨거움을 맛보게 한다. 성체조배에 임하다 보면 그리스도를 직접 눈으로 마주 대하고 서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서 참된 평화를 느낄 수 있다. 성체조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공동체와 성체성사
성체성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공동체다. 신자들은 성체를 받아모심으로써 하느님과 일치를 이룰 수 있으며, 같은 잔치에 참여하는 형제들과도 일치를 이룰 수 있다.

이처럼 성체성사는 성사 그 자체로 그치지 않는다. 같은 그리스도를 나누는 신자들은 한 공동체로서 서로 일치되어야 한다. 사실 성체를 함께 모시는 신자들이 참된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이는 사뭇 역설적이다. 성체 안에는 한 그리스도가 있고, 함께 성체를 모시는 우리는 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 초자연적인 생명의 나눔, 생명의 빵을 나누는 일치의 성사인 성체성사는 단순히 하느님과 신자 개인과의 교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신자들은 공동체의 성장을 체험할 수 있으며 이 공동체를 통해 나타나는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을 개인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성체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과 피를 직접 내주신 그 희생적인 사랑의 모범을 내포하고 있다. 이 점에서 성체는 그리스도의 끊임없는 인간 사랑을 드러낸다.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해 이러한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야 할 의무를 지닌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평화를 오늘도 모든 이와 나누려고 하신다. 성체를 모심 으로써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는 우리는 이러한 ‘평화 확산’의 최선봉에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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