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첫째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너의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마태 26.14-27.66)
겨우 뺨 한 대 맞고
(신은근 신부. 마산교구 신안동성당 주임)
그는 술을 잘 못했다.
하루는 회사에서 회식이 있었는데 그날따라 상급자가 자꾸만
술을 권했다. 한두 잔은 받았지만
계속 권하기에 거절했더니 느닷없이 뺨을 때리는 것이었다.
자신도 중간 간부이고 그 자리엔 부하직원도 있었는데
창피하고 분했다.
하지만 분위기 때문에 참았다.
집에 와서도 분이 삭지 않아 다음날 출근하지 않았다.
이참에 회사를 그만두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사표를 쓰려니 뭔가 씁쓸해 기도하러 성당에 갔다.
제대 뒤 십자가를 보며 말없이 앉아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음성이 들렸다.
겨우 뺨 한 대 맞은 것갖고 그렇게 억울해하냐?
나는 멸시와 천대 속에서 십자가를 지고 갔다.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며 부끄러워졌다.
다음 날 출근했다.
그런데 하필 그날 뺨을 때렸던 상급자가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었다.
그 상급자가 처리했던 일에 문제점이 발견된 것이다.
그는 내색하지 않고 변호해주었다.
일이 마무리된 뒤 그 간부는 예비교우가 되었고
세례까지 받았딴다. 작은 기적이다.
수난 복음을 요약하자면 아주 간단하다.
죄 없는 분이 죄인으로 몰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다.
누가 그분을 죄인으로 몰았는가?
우선은 열렬히 환연했떤 군중이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들었떤 사람들인데도
그들이 가장 큰 목소리로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다.
군인들과 구경 나왔떤 이들도 외면한다.
십자가에 달렸떤 강도마저 모욕한다.
철저하게 극한상황으로 몰린 예수님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변명 없이 죽음의 길을 가신다.
등 돌린 이들을 개의치 않고 가신다.
분하고 억울한 체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누가 억울하게 했던가?
그들은 내 인생에 십자가를 준 이들이다.
아직도 그들을 원망해야 할까?
수난 복음은 이 점을 돌아보게 한다.
십자가 없는 곳에 부활은 오지 않는다고 했다.
부활은 주님의 개입이다.
운명을 바꾸는 은총이다.
성지주일에는 성지 가지와 함께 전례에 참석한다.
새 임금이 등장하면 나뭇가지로 환영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십자가의 예수님을 임금님으로 모시겠따는 것이다.
삶 속에 숨어있는 십자가를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은총 없이는 어렵다.
기도하며 절제하자.
인내가 힘들어질 때 성지 가지를 바라보자.
우리 역시 수난 복음의 청중들이다.
나쁜 날씨란 없다.
추운 날씨는 추운 대로.
더운 날씨는 더운 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원하는 날씨를 만들 수는 없지만
주어지는 날씨를 즐기며 현명하게 살 수는 있다.
부딪치는 인생에서 감사의 시각을
더 많이 느끼는 이가 부활의 사람이다.
(가톨릭 다이제스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