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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116)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 (33) - 하늘의 사람, 엘리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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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116)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 (33) - 하늘의 사람, 엘리야 (하)

우상숭배 빠진 이스라엘 백성 보며 화가 치밀어



■ 예언자 중 예언자

엘리야 예언자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신약성경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신약성경에서 엘리야는 크게 세 가지 시각에서 언급된다. 첫째는 세례자 요한과의 상관관계다. 세례자 요한의 갑작스런 출현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그를 엘리야의 환생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드러나고 있다.

“요한은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마태 3,4 2열왕 1,8 참조).

둘째는 예수님과의 상관관계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반기를 넘어서면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르 8,27)라고 제자들에게 물었을 때, 지목된 인물이 엘리야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마르 8,28).

셋째는 구약전체에서의 위상이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에서 예수님께서 “모세 및 엘리야”(마태 17,3 참조)와 대화를 나누시는 대목이 극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여기서 모세는 ‘율법서’를 엘리야는 ‘예언서’를 대표하는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다면 엘리야는 말 그대로 예언자 중의 예언자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어떤 근거에서 이런 평가가 나온 것일까? 지난 호에서 우리는 엘리야 예언자의 초기 활약 가운데 카르멜 산에서의 진검승부와 그 직후 그가 빠진 치명적인 슬럼프에 묵상의 초점을 맞춰보았다. 그 말미에서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며 호렙 산에 들어가는 장면까지 추적해 보았다.

호렙 산! 거기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리고 그 이후 그의 활약상은 어땠을까? 어떠하였기에 후대는 그를 예언자 중의 예언자로 길이 기리고 있는 것일까? 이것이 우리들이 궁금해 할 가치가 있는 관심사다.


■ 호렙 산에서

호렙 산 어드메쯤일까? 엘리야는 거기 한 동굴에 임시 둥지를 튼다. 그날 밤 홀연 야훼 하느님의 말씀이 들려왔다. “엘리야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1열왕 19,9)

엘리야의 답변은 원문 대조를 해보니 공동번역 성경이 보다 본문에 충실하기에 편의상 공동번역을 그대로 옮겨보기로 한다.

“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신과 맺은 계약을 저버리는 것을 보고 만군의 하느님 야훼를 생각하여 가슴에 불이 붙고 있습니다. 이 백성은 당신의 제단을 헐었을 뿐 아니라 당신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죽였습니다”(1열왕 19,10 공동번역).

이에 “나아가 산 위, 주님 앞에 서 있으라”는 하느님의 분부가 다시 내려진다. 그때 아주 큰 바람이 불어온다. 이어 지진이 일어나고, 불이 지나간다. 여기서 잠깐! 바람, 지진, 불 이 세 가지는 농경 문화권에서 우상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요소들이라 여겨지는 것들이다.

그러나 성경 본문은 이 우상숭배자들의 믿음을 단호히 부정하는 내용을 전한다. 곧 큰 바람과 지진과 불길이 이는 가운데에도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았다는 사실이 크게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단 말인가? 이윽고 고요한 가운데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1열왕 19,12)가 들려왔다. 그토록 기다리던 하느님의 임재다. 이 ‘소리’(히브리어 ‘콜: qol’)는 ‘말씀’을 가리킨다. 이는 앞의 세 가지에 비교할 때 하나의 극명한 대조다. 이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우쳐준다. 즉, 하느님은 바람, 지진, 불 등이 상징하는 요란스런 형식이나 예식에 임장(臨場)하시지 않는다. 대신 말씀 속에 은은히 존재하신다.

주님의 내림(來臨)을 감지한 엘리야는 즉시 움직인다.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섰다”(1열왕 19,13). 다시 주님의 물음이 들려온다.

“엘리야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1열왕 19,13)

이어지는 엘리야의 답변은 방금 전의 것과 똑같다. 여기서도 똑같은 문장이 두 번이나 “밑줄 쫘-악” 하며 전하는 중후한 영적 메시지를 놓치지 말 일이다. “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신과 맺은 계약을 저버리는 것을 보고 만군의 하느님 야훼를 생각하여 가슴에 불이 붙고 있습니다…”(1열왕 19,14 공동번역).

여기 이 표현, “만군의 하느님 야훼를 생각하여 가슴에 불이 붙고 있습니다”! 좀 더 세게 번역하면 “주님 위하는 생각에 열화(烈火)가 부글댄다” 쯤이 된다. 가히 독보적 열성이다. 곰곰 시간을 거슬러 이 때 엘리야를 상상으로 그려보자니, 쿵쾅대는 그의 심장 박동이 들려오는 듯하다.

별빛도 흑암 속에 잠든 이 밤,
심장이 부글거려
잠 못 이루나니.
강퍅한 이스라엘 백성
당신과 맺은 계약 허투루 깨트림에,
더불어 저마다 제 세상 무법천지로 놀아남에,
타들어가는 주님의 애간장 속절없이 애처로워서,
제 심장 부글거려
잠 못 이루나니.

초목들도 밤기운에 거나하게 취한 이 시각,
가슴이 미어터져
몸을 뒤척이나니.
우매한 이스라엘 자손들
감히 주님의 제단 마구 허물어 댐에
더불어 도처에 우상, 굿당, 점집들을 우수수 끌어들임에,
끓어오르는 주님의 진노 두렵도록 전율하여서,
제 가슴 미어터져
몸을 뒤척이나니.

벌레 소리도 깊은 적막에 숨어든 이 미명에,
마음이 산란하여
오금을 졸이고 있나니.
완악한 제 골육
무엄하게 주님의 예언자들 베어 죽임에,
더불어 당신을 거부하고, 배척하고, 등짐에,
고조되는 심판의 귀결 안타까워서,
제 마음 산란하여
여태 웅크린 채 오금을 졸이고 있나니.

야훼 나의 주님,
이를 어찌하리이까.
정녕 어찌하리이까.


■ 소임을 다하고

엘리야는 하늘 사람! 방금의 발설에서는 과연 ‘하늘 사람’의 고뇌가 묻어난다. 어느 ‘땅 사람’이 하느님 마음을 헤아리며 저토록 안타까워 할 수 있을까. 하느님께서는 엘리야의 저 마음씀씀이를 흐뭇하게 여기시며, 남은 소임을 분부하신다. 다마스쿠스 광야 길로 돌아가, 몇몇 인물에게 기름부어 왕으로 세우고 엘리사를 제자로 삼을 것, 그리고 ‘남은 자 칠천명’(1열왕 19,18 참조)에 희망을 두고 용기백배 예언직을 수행할 것!

어련하랴. 엘리야는 말씀 그대로 이행하고 임무를 완수한 후 불수레를 타고 승천한다. 워낙에 당시 우상숭배의 정도와 규모가 고약스러워 하늘에서 비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내려졌으니, 그렇게 초자연적으로 귀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죽 옷 차림을 하고(2열왕 1,8 참조) 까마귀와 천사들이 날라다 준 음식으로 연명했던 그, 그가 행한 이적이 얼마나 하늘스러웠으면 집회서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헌사를 바쳤을까.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집회 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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