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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상식

가톨릭 일반상식과 간단한 교리를 담는 게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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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9)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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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느님이 거룩하지 않으시다면 우리도 거룩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하느님이 우리 하느님이 아니셔도, 우리는 거룩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거룩하신 분이 주 우리 하느님이실 때에는 더 이상 피해 갈 구멍이 없습니다.

더구나 거룩하신 그 하느님이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 집들 사이에 머물고 계실 때에는

거룩함은 중대한 문제가 됩니다. 우리 집들과 우리 자신을 거룩한 분께 합당하게 마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레위기의 관심사는 바로 이 문제입니다. 탈출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명하신 대로 만남의 천막을 지었고, 모든 일을 마치자 구름이

그 천막 위에 머물렀습니다(탈출 40장 참조). 이제 이스라엘 가운데,

천막에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계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거룩해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레위기의 첫 부분에서는 제사에 대해서와(1-7장),

이어 사제 임직 의식에 대해 다루고(8-10장), 그 다음에는 정결과 부정에 관한 법과(11-16장)

성결법이 이어집니다(17-26장). 모든 부분을 살필 수는 없으므로 주로 성결법을 보겠습니다.

탈출기의 계약 법전처럼 레위기의 성결법도 법전의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경에는 신명기의 신명기 법전까지 포함하여 모두 세 개의 법전이 있게 됩니다.

이 법전들은 전체적 짜임새도 비슷하고 개별 규정에 있어서도 많은 공통점들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강조점에는 서로 차이가 있습니다. 계약 법전이 탈출기에서 이집트 탈출에 바로 뒤이어 나오는

법전으로서 자유와 해방을 강조했다면 레위기의 성결법은 거룩함에 중점을 둡니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9,2).

성결법은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요구합니다.

물론 이집트 탈출은 레위기에서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레위기는 이집트 탈출이 무엇보다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하는 과정,

축성의 과정이라고 봅니다.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려고,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주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5).

거룩함(qd)은 따로 떼어냄, 하느님께 속한 것으로 구별함을 의미하고,

 마치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이 되듯이

이스라엘은 이집트 탈출을 통하여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더 이상 다른 민족들처럼 살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앞서 인용한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로

시작되는 레위기 19장을 보면 참으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1-16장의 주제인 정결과 부정에 관한 법이 주로 제의적 정결에 관한 것이어서

어떤 경우에 부정을 타서 예식에 참여할 수 없게 되는지를 설명해 주는 데에 비하여,

성결법은 예식적 정결함만이 아니라 삶의 거룩함 전체를 포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레위기 19장에는 우상 숭배, 안식일, 제사 규정 등 하느님과 직접 관계된

법에서부터 농경과 추수에 관한 법, 도둑질과 사기를 금하는 법,

이웃 특히 약자에 관한 법 등 다양한 법들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한 계명 가운데 하나로 인용하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는 유명한 구절도 여기에서 나옵니다.

제의적인 거룩함만이 아니라 윤리적인 거룩함까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조금 주의할 부분이 있습니다. 레위기의 규정들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올바름을 넘어선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누구나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받아들일 수 있고 받아들여야 하는 규정입니다.

굳이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것을 몰라서 살인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결법은 특정한 사람들을, 하느님께 속한 거룩한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합니다.

조금 실망하실 수도 있겠지만,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고 할 때

‘이웃’의 범위는 이스라엘 동족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속했기 때문에

그들 사이의 관계는 남달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저 누구에게나 마땅히 해야 할 정도로 대하는 것으로 부족하고,

형제이니 너 자신과 같이 여기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이방인을 배척하지도 않습니다.

“너희와 함께 머무르는 이방인을 너희 본토인 가운데 한 사람처럼 여겨야 한다.

그를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34). 뒤집어 말하면

그 이방인은 앞에서 말한 ‘이웃’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한 이웃에 대한 사랑은 거룩한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형제애를 말하고, 이방인에 대한 사랑은 거룩한 공동체가 밖으로 향해 베푸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 역시 특별합니다. 이방인에게 본토인과 같은 대우를 하는 것은 현대에도 어려운 일입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권익 보호, 의료 혜택 등을 생각하면 레위기의 기준은 분명

지금까지도 머나멀게 느껴집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합리적인 기준을 넘어서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은,

그들이 하느님께 속한 이들로서 하느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야 했기 때문입니다(레위 22,31-32).

신약의 표현을 빌면 그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했고 등불이 되어야 했습니다(마태 5,13-15 참조).

거룩하신 하느님을 닮은 삶으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게 하는 것,

그것이 하느님께 속한 거룩한 백성의 역할이었습니다.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1베드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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