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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18- 기도 생활의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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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마음 여는 열쇠 '기도'
 
 
금년 들어 인천교구는 사회 각 분야 명사들을 초청해 매월 사제들을 위한 특강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5월17일에는 예수회 서명원 신부가 불교에 대해 강의했다. 서 신부는 프랑스인으로서 프랑스 파리 제7대학에서 불교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인도에서도 상당 기간 불교 이론 및 명상법을 익혔다고 한다. 그리스도교 문화 속에서 자란 서양 사람이 파악한 불교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서 신부는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그리스도교와 불교를 위시한 동양 영성 사이에 올바른 대화가 이루어지면 그리스도교가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전망을 피력하면서 기도방법의 토착화가 피할 수 없는 과제라는 요지로 강연했다. 그러면서 그는 '올바른 대화'를 위한 전제조건을 분명히 제시했다. 그것은 지기지피(知己知彼)였다. 물론 그는 '지피지기'라 얘기했다. 그러나 설명은 나를 알고 남을 알아야 한다는 논리로 전개해 나갔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입장이 분명했다. 그는 대화를 위한 '자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지기지피'가 돼 있지 않으면 대화에 나설 자격이 없다는 말이었다. 서명원 신부는 대화를 위한 자격(곧 '지피지기')을 전혀 갖추지 못한 수녀님이 불교와 대화를 시도하다가 거의 '비구니'가 돼 가톨릭 정체성 자체를 잃어버린 예를 경종으로 들려주기까지 했다. (오해하지 마시라. 필자는 이런 얘기를 하다가 욕을 얻어먹은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필자는 '대화' 자체를 문제 삼은 적은 한번도 없다. 다만 '남의 것'을 배우려 하기 전에 '자신의 것'을 확실히 배우라는 말을 강조했을 따름이다. 이것은 기본이다. 대화에 나서기 전에 먼저 성서를 한번 통독하고 가라는 말이다. 복음의 핵심이 뭔지는 알아두고 가라는 것이다. 그러고서 하는 대화를 누가 문제 삼겠는가.)

재미있는 대목은 그가 하버드대 출신 현각 스님과 자신을 비교하는 부분이었다. 서 신부는 그가 오랫동안 불교를 탐구하고 불자들과 대화를 나눠 왔으면서도 꿋꿋하게 그리스도인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 만남'을 꼽았다. 그리고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다는 현각 스님이 불교를 접하고서 불자가 된 것은 그에게 예수님과 인격적 만남이 결여돼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서명원 신부 이야기는 오늘 필자가 다루고자 하는 '기도생활의 기초'라는 주제에 핵심적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서 신부는 우리에게 그리스도교 기도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 만남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기도란 무엇일까? 말 뜻대로라면 기도(祈禱)는 하느님께 '비는 것'이다. 옥편에는 기(祈)자도 '빌 기'이며 도(禱)자도 '빌 도'라고 나와 있다. 이것은 기도의 일반적 의미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기도는 그 이상을 의미한다. 물론 '비는 것'도 포함하지만 그것을 넘어 하느님과의 사랑이 넘치는 대화와 사귐까지 뜻한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을 만난다. 마치 사람을 만나듯이 하느님을 만난다. 차이가 있다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만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 만남을 통해서 사람 사이 만남에서 있을 수 있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부탁, 도움의 요청, 위로, 치유, 상담, 나눔, 사랑, 심지어 배반과 회개까지 말이다.

이처럼 기도는 살아 계시는 '참 하느님과 생생하고 인격적인 만남'(가톨릭교회교리서 2591항)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이며 나눔이다.

첫째, 기도는 대화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에 우리는 서로 말을 주고받는다. 그 내용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로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말하는 재미보다는 듣는 재미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 기도도 마찬가지다. 기도가 깊어질수록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듣는 것에 더 매력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기도를 갓 배우는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말을 많이 하고 계속 무엇을 달라고 기도한다. 하지만 기도의 체험이 쌓일수록 예수님이 하셨듯이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루가 22,42)라고 기도하는 것이 최고 기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당신 뜻대로 하소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전폭적 신뢰 곧 믿음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침묵하며 주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되는 것이 가장 완전한 기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

둘째, 기도는 나눔이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과 사랑을 나눈다. 이것은 기도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흔히 기도할 때에 하느님을 너무 무섭게 생각하고 아예 하느님은 사랑의 대상이 아닌 줄로 여긴다. 그렇게까지 표현하지는 않지만 마치 하느님을 저승의 심판관(염라대왕, 옥황상제)으로 상상하고 그분 앞에 서면 주눅이 들기가 일쑤다. 하지만 하느님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시다. 그래서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반기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제물을 바치기 전에 이 하느님의 마음을 먼저 알아다오"(호세 6,6).

그렇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느님이 가장 원하는 것은 사랑이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한담"하고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보이지는 않지만 그 하느님을 향해 사랑의 마음을 품고 있으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전달된다는 것을 점점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초보자들이 기도를 잘할 수 없는 이유는 하느님이 우리 안에 계시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과 만남 속에 이루어지는 대화와 나눔이 실제 살아 있는 것이 되려면 하느님이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에게서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마음의 눈, 영혼의 눈, 신앙의 눈으로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기도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라고 하는 오상(五傷: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받은 5가지 상처)의 은혜를 받았던 비오 신부가 남긴 다음과 같은 명언은 기도가 무엇인지를 잘 종합해 준다. "기도는 우리의 최고 무기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마음을 여는 열쇠입니다."

그렇다. 대화가 됐건 나눔이 됐건, 기도는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마음을 열게 해준다. 그리하여 창조주와 피조물, 구세주와 죄인 사이에 놀랍고 은혜로운 인격적 만남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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