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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 51- 십계명 속의 보물찾기: 제8계명
name 운영자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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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 통하는 사회가 돼야
 
사실 확인은 안 했지만, 한 2년 전에 일본인 친구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본 상품은 믿고 사도 된다. 특히 식품은 더욱 그렇다. 법적으로 허가 기준도 까다로울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일본에선 한 번 '사기'가 드러나면 그것으로 회사는 끝장이다. 사람도 그것으로 끝장이다. 다시는 '그 바닥'에서 생존할 수 없도록 생매장된다. 이것이 오늘의 일본을 있게 만든 일본의 상도덕(商道德)이다.

그런 일본이 어찌 역사(歷史)는 왜곡으로 일삼고 있을까? 그것이 의아스러웠지만, 필자는 일본의 백화점을 둘러보고 나서 그 친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었다. 정량(定量) 및 성분(成分) 등이 자세히 그리고 친절히 써 있는 상품들에, 그리고 그것을 일일이 파악해두고 손님에게 설명해 주는 직원들 태도에 믿음이 갔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창 기생충알 김치 파동으로 한중(韓中)간에 설전이 오가고 있을 때 일본은 이 문제에서 비껴 있었다. 이는 일본이 중국에서 식료품을 수입할 때 중국 현지에서 생산과정을 꼼꼼하게 검증하는 제도적 절차를 밟기 때문이란다. 요컨대, 일본은 적어도 경제행위에 관한한 거짓, 사기, 기만이 사회에 발붙일 틈을 주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완비하고 있다는 얘기다.

 황우석 사태를 바라보노라니 이런 일본이 부럽게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황우석 사태를 보고 흥분한다. '속았다'며 치를 떨기도 한다. 여당과 야당 정치인들도 언제는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경쟁을 하더니 이제 와서는 서로 책임공방을 해대고 있다.

 우리는 황우석 사태를 이런 수준으로 서로 '손가락질'하고 끝내서는 안 된다. 황우석 사태는 대한민국 문화의 문제고 가치관 문제다. 국민 모두가 연루된 문제인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국민 모두가 공범이다. '거짓'을 쉽게 관용하는 대한민국 풍토가 문제인 것이다.  

 이것을 차제에 깊이 '치료'하지 못하면 황우석보다 더한 사람이 다시 나타나도 또 다시 속을 수밖에 없게 돼 있다. 냉정히 성찰하건대, 어려서부터 '거짓을 권하는 사회'에 적응하도록 훈련을 받는 것이 우리의 교육풍토다. 학교에 가서도 '거짓'이 빨리 성과를 올리고, 사회에서도 '거짓'을 일삼는 자가 버젓이 승진을 하고, '거짓'이 드러나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용납하는 사회적 병폐, 이것이 우리 모두가 앓고 있는 고질병인 것이다.

 지난해 말 김수환 추기경님이 흘리셨다는 눈물은 바로 이런 비극적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내지 대한민국의 정신적 어르신으로서 뼈아픈 자책이 아니었을까. 사실 그 눈물은 우리 모두가 흘려야 할 눈물이었다. 양식이 있는 자라면 이제라도 울어야 한다. 눈물이 나오지 않으면 마음으로라도 울어야 한다.  

 '기회를 다시 주자'며 촛불시위를 하는 이들도 있다. 필자는 죄인들에게 너그러운 편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다르다. 필자는 단언한다. 황우석에게 다시 기회를 주면, 우리 나라는 망한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영영 거짓을 척결할 수 없게 된다. 국제적으로 '거짓이 쉽게 통하는 사회'라는 낙인이 찍히면 경제신임도마저 추락하고 말게 돼 있다. 배아복제 연구의 윤리성 문제를 떠나서라도, '거짓'을 일삼아온 황우석은 이 땅에서 연구활동을 접어야 한다.

 인간 황우석에게는 다시 기회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진실성'을 생명으로 하는 과학도로서 재기할 기회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를 미워하며 손가락질 할 필요도 없다. 그가 회개하고 참된 삶을 회복하도록 사랑으로 품는 것이 그리스도인 본분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는 계명은 "진실이 통하는 사회가 되도록 하라"는 말과 같다. '진실'이 '거짓'에게 지는 일보다 더 억울하고 불의한 일이 없다. 진실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바로 지옥이다. 이 때문에 유다인들이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에게 내리는 가장 무거운 벌이 "진실을 말해도 믿어 주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거짓은 사회의 건전한 기강을 깨뜨리고 정의를 파괴하는 주범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 거짓 증언에 대해서 극단적 언사(言辭)까지 사용하시며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누가 어떤 사건을 보거나 알고 있어서 증인이 됐는데, 증언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으리라는 소리를 듣고서도 알리지 않아 죄를 짓고 그 죗값을 지게 될 경우,〔…〕그는 자기가 죄를 지었음을 고백해야 한다"(레위 5,1.5).

 거짓 증언 때문에 사람이 엉터리 판결을 유도하는 것, 그것은 살인 행위나 마찬가지이다. 거짓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야훼께서는 모든 종류의 거짓을 역겨워하신다.

 "이 여섯 가지를 주님께서 미워하시고 이 일곱 가지를 그분께서 역겨워하신다. 거만한 눈과 거짓말하는 혀, 무고한 피를 흘리는 손, 간악한 계획을 꾸미는 마음, 악한 일을 하려고 서둘러 달려가는 두 발, 거짓말을 퍼뜨리는 거짓 증인, 형제들 사이에 싸움을 일으키는 자다"(잠언 6,16-19).

 우리는 다음의 잠언이 들려주는 경고를 새겨들을 줄 알아야 한다.

 "마음이 빗나간 자는 행복을 얻을 수 없고 혀가 비틀린 자는 불행 속에 빠진다"(잠언 17,20).

 요즈음 과거사 청산을 한다고 위원회까지 만들어 추진 중에 있다. 해방 후 60년이 넘도록 과거사가 은폐됐다는 것도 비극이다. 하지만 대부분 증거가 인멸된 오늘에 와서 진실을 재단한다는 것, 그것도 '이데올로기'와 '당리당략'의 때묻은 양심들이 나서서 위험한 칼장난을 한다는 것도 일면 염려스러운 일이다. 진실을 규명한다는 것은 확실히 중요한 일이로되 그 일을 맡는다는 것은 '두렵고 떨리는 일'인 것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월간 「참 소중한 당신」 연재 글에서 다음과 같이 신중(愼重)을 촉구한 바 있다.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표심을 따라, 공천가능성을 따라, 기회를 따라/ 당적을 옮긴 의원님들이 던질 것인가/ 복지부동, 수뢰, 직권남용으로/ 얼룩진 공무원님들이 던질 것인가/ 정권의 대세가 기우는 대로, 이권의 바람이 부는 대로/ 이현령비현령의 칼을 휘두른 검찰님들이 던질 것인가/ 지조보다, 신의보다, 진실보다/ 생존(生存)의 윤리를 더 귀히 여기는 우리네 소시민이 던질 것인가.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요한 8,7 참조)했거늘,/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혹시라도 무고한 생명이 다치지 않을까/ 밤잠을 설칠 수 있는 자만이/ 그 고역을 맡으라.

 설령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그 악역이 주어지거든,/ 먼저 목욕재계하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괴로워하는 양심을 청하며/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모으라.  

 도대체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정녕 누구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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