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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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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 52- 십계명 속의 보물찾기: 제9,10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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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을 뵈오리라
 
 
사람은 '보는' 것에 의해 지배받는다.

학교에서 급우를 충동적으로 칼로 찌른 학생이 그 까닭을 묻자 영화 '친구'를 여러 차례 봤더니 자신도 모르게 그만 모방을 하게 됐다고 답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가문'이라는 것, '가풍'이라는 것을 따지는 것도 결국은 무엇을 '보고' 자랐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로 딸들은 20~30대 의욕 왕성할 때는 '절대로 엄마의 단점을 안 닮겠다'고 큰소리 뻥뻥 치지만, 이럭저럭 40대를 넘기게 되면 그 안 닮겠다던 '엄마의 단점'을 붕어빵처럼 반복한다. '보는' 것이 무의식과 잠재의식에 잠복해 있다가, 시간이 흐르고 의지(意志)가 약해질 때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좋은 것도 마찬가지다. 요즘 세상에 떡을 만들어 이웃집에 돌리는 자매를 봤다. 그 마음 참 넉넉하다고 칭찬을 했더니, 자신이 어렸을 때 어머니 떡 심부름을 다녔던 것이 마음에 남아 있어서 떡을 하면 나눠줘야 기분이 개운하다는 것이었다. 이 역시 '보는' 것의 영향력을 반영하는 얘기다.

하느님께서는 '보는' 것의 힘을 이용해서 믿음의 성조들을 축복하셨다.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축복할 때 무수한 별과 모래알을 '보여주시고' 그 숫자만큼 자손에 대한 꿈을 꾸게 했다. 땅을 주실 때에도 꼭 가나안 땅과 동서남북을 '보게 하신' 후 그 약속을 실현해 주셨다. 하느님께서는 '보는' 것의 힘을 비전(vision)과 믿음에 적용하셨던 것이다.

유혹하는 자, 사탄(Satan)은 태초에 하와를 '보게' 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유혹에도 성공했다.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창세 3,6).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유혹에 빠졌던 것도 옥상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었다(2사무 11,2-4 참조).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윈도우 쇼핑 갔다가 성공하고 돌아온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유혹의 원리를 알고 계셨기에 유혹자가 도시를 '보여주며'(마태 4,8; 루카 4,5 참조) 유혹했을 때 중심을 지키고 물리치실 수 있었다.

본래 성경에는 9계명과 10계명이 한 문장 속에 묶여 있다.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탈출 20,17).

그러니까 이 두 계명은 결국 한 묶음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두 계명은 그 앞의 계명들과 관계가 있다. 제9계명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는 제6계명과 관련되고 제10계명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는 제7계명과 관련된다.

얼핏 보면 이들 두 계명은 앞의 두 계명의 귀찮은 반복인 듯이 보인다. 또 약간의 저항감도 생긴다. 행하지만 않으면 됐지 마음으로 욕심을 품는 것까지 못하게 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두 계명을 조금만 영성적으로 깊이 새겨보면 이 두 계명은 우리 영성생활에 새로운 차원을 열어준다. 곧 우리 마음이 육체와 물질에 탐욕을 품고 우리 눈이 그것들에 사로잡히게 될 때 우리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을 잃게 된다는 원리를 가르쳐 준다. 이 두 계명의 요지는 마음이 탐욕(貪慾)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그 마음이 보다 소중한 가치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여덟 가지 참된 행복을 선언하실 때 바로 이 점을 파고드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신앙생활의 목적을 단 하나로 요약한다면 '하느님을 뵙는 것'이다. 하느님을 뵙게 되면 모든 것이 이뤄진다. 기도의 응답, 사랑의 나눔, 지복직관 등 모두 가능해진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 뵈올 것이며, 하느님을 닮게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다. 깨끗한 마음은 하느님을 뵙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깨끗한 마음을 가짐으로써, 우리는 지금부터 벌써 하느님께서 보시는 대로 모든 것을 보고, 타인을 '이웃'으로 받아들이며, 우리의 육체와 이웃의 육체, 곧 인간의 육체를 성령의 성전으로, 하느님 아름다움의 표현으로 감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2519항).

결국, '탐내지 말라'는 9번째와 10번째 계명은 우리의 참 행복을 보장해 주기 위한 계명인 것이다. 참 행복을 갈망하는 인간은, 현세 재물에 대한 무절제한 애착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뵙고 참 행복을 누리게 될 때 그 갈망이 충족된다.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는 그의 「진복팔단 강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느님을 뵈오리라는 약속은 모든 행복을 초월합니다. 성서에서 본다고 말하는 것은 곧 소유한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을 뵙는 사람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것을 모두 얻은 것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548항).

그러므로 하느님을 뵙는 데 방해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당장 물리쳐야 한다. 남의 아내를 탐내는 것도 남의 재물을 탐내는 것도 결국 자신의 마음을 더럽힌다. 탐욕은 기도할 때 분심 잡념이 들게 하는 주범이 된다. 마음에 때가 덕지덕지 묻으면 기도할 때 도무지 하느님을 볼 수가 없다.

우리 마음이 탐욕으로 점령되지 않도록 주의할 일이다.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살인, 간음, 불륜, 도둑질, 거짓 증언, 중상이 나온다"(마태 15,19). 그러니 우리 마음을 이를 대체할 대안(代案)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

"형제 여러분,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십시오"(필리 4,8).

요즘 세상에는 온통 9계명과 10계명을 거스르도록 우리를 유혹하는 볼거리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기에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교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그리스도교적 정결에는 사회 분위기의 정화가 요구되며, 또한 대중 홍보 수단들은 타인을 존중하는 신중한 보도를 내는 것이 요구된다.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만연된 선정적 풍토에서 해방되고, 변태적 호기심과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공연을 피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525항).

그렇다고 환경 탓만 하는 것도 금물이다. 자신의 마음은 자신이 지켜야 하는 것이다. 잠언은 우리게 권고한다.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거기에서 생명의 샘이 흘러나온다"(잠언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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