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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 63-성경의 표현들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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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우리 의지 양심 일깨워
 
 
 예수님께서는 지옥에 대해 무시무시한 표현들로 묘사하셨다.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마르 9,48).

사도가 환시로 본 지옥 모습 역시 끔찍하기 짝이 없다.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그 연기는 영원무궁토록 타오르고, 짐승과 그 상에 경배하는 자들, 그리고 짐승의 이름을 뜻하는 표를 받는 자는 누구나 낮에도 밤에도 안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묵시 14,11).

그 지옥에는 이처럼 짐승과 우상을 숭배한 낙인찍힌 사람들뿐 아니라 악마와 그 하수인인 거짓 예언자들도 함께 던져질 것이라고 사도는 환시로 보았다.

"그러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삼켜 버렸습니다. 그들을 속이던 악마는 불과 유황 못에 던져졌는데,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가 이미 들어가 있는 그곳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밤낮으로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묵시 20,9-10).

종말에 대한 이러한 성경 가르침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종말에 대한 성경 가르침은 대부분 상징(象徵)과 비유(比喩)로 알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천국의 이미지들인 하프나 면류관, 금 등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하프는 기쁨과 평안을 강렬하게 암시하는 상징으로 등장하고 있고, 면류관은 하느님과 영원히 일치된 사람들이 하느님 광채와 힘, 기쁨을 함께 누린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또 금은 시간에 매이지 않는 천국의 영원함과 귀중함을 암시한다.

이처럼 지옥의 유황불이나 구더기 등은 이승에서처럼 실재하는 것들이 아니라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상징 언어다. 3차원 공간인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 4차원 이상인 세상을 짐작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분명한 개념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상징 언어로 묘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징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사람은, "비둘기처럼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을 낳으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여기서 잠깐 상징에 대해 좀 더 짚어보자. 상징은 개념으로 표현된 것보다 더 많은 의미들을 포함하고 있다. 예컨대, 누가 어떤 사람에게 "당신은 나의 태양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이 말은 다양한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 태양은 희망이 될 수 있고, 영웅이 될 수 있고, 우상도 될 수 있고, 또 그 밖의 여러 의미로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이 전해주는 종말에 대한 표현들은 우리가 보고 느끼고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의 것을 가리킨다고 봐야 한다. 종말 사건은 3차원 공간의 오관(五官)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그런 현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만약 종말에 대해 "모두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장님들이 코끼리의 부분만을 만지고 몽둥이라느니, 무라느니, 돌이라느니 단정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종말이 담고 있는 폭넓은 의미, 우리에게 개방되지 않은 저 너머의 세계를 인정해야 한다.

교회는 지옥의 존재와 그 영원함을 가르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지옥은 유황불이 들끓고 있고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곳으로 묘사된다.

근래에 와서 신학자들은 지옥에 대해서 심각하게 물었다. "과연 성경이 말하는 그런 지옥이 존재할까?", "그리고 그런 지옥을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몸소 만들어 놓으셨을까?", "그렇다면 그 하느님을 우리는 과연 무한한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 가톨릭교회는 다음 결론에 이르렀다.

첫째, 지옥은 불이 활활 타거나 사람을 질식시키는 그런 장소(라: locus)가 아니라, 인간이 창조된 목적이며 인간이 갈망하는 생명과 행복을 주시는 유일한 분이신 하느님과의 영원한 단절에 처하는 고통의 상태(라: status)를 말한다는 것이다. 죽을 죄를 뉘우치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죽기를 고집해 영원히 하느님과 단절(斷絶)되는 것 자체가 영원한 고통이며 심판이라는 것이다.

지옥이란 이처럼 하느님과 복된 분들과 이루는 친교(親交)를 스스로 결정적으로 거부한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이런 고통을 이미 이 세상에서 죽도록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져야만 할 때 맛보기로 치르게 된다.

둘째, 이런 지옥의 고통은 하느님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떨어져 나감으로써 초래하는 고통이라는 것이다. 곧 선택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지옥에 대한 성경의 단언과 교회 가르침은 우리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위해 책임감을 갖고 자신의 자유를 사용하라는 호소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그것은 회개하라는 절박한 호소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이 지상에서 지옥을 살 수 있다. 하느님을 등지고 하느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사는 이는 지상의 지옥을 살고 있는 셈이다. 한 인간이 이웃을 물리치고 그리스도 공동체를 배척한다면 그의 삶 안엔 이미 지옥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남을 바라볼 줄 모르고 영원히 자기 자신으로만 만족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 방식 자체가 이미 지옥이다. 그래서 흔히 "지옥의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다"고들 한다.

지옥이라는 주제는 예수님의 복음 선포에서 중요한 기능을 갖고 있다. 지옥은 주로 회개를 촉구하시는 말씀 중에 거론된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이야기에서 "인간은 구원될 수도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계신다. 그러니 하느님 주권(主權)에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라고 엄중하게 촉구하신다(히브 9,27; 마태 22,13; 25,26.30-46 참조).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느님의 주권을 자신의 것인 양 착각(錯覺)하는 자체가 지옥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지옥에 대한 예수님 말씀은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 주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양심과 의지를 일깨우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무시무시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킴으로써 우리를 회개의 행동으로 이끌 수 있다면, 예수님의 지옥에 관한 말씀은 원래 의도를 다 성취시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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