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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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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신앙인은 구도자(求道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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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하여라, 찾아라, 문을 두드려라!”

- 祈福신앙과 求道신앙 사이 

 

갈라 3,1-5; 루카 11,5-13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2020.10.8.; 이기우 신부

 

우리가 지금 보내고 있는 이 10월이 교회적으로는 묵주기도의 달이자 전교성월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문화의 달이기도 하기 때문에, 정체성과 관련성 그리고 사도직이라는

우리 구원의 정통 주제들을 지난 성모 승천 대축일 이후부터 시작하여

9월의 순교자 성월이라는 맥락에서 살펴본 데 이어서 이 달에는 문화의 복음화라는 맥락에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단군왕검께서 이 땅에 나라를 세워 문명을 이룩하신 이래 이 겨레를 움직인 정신적인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지난 개천절에 그 힘은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이화세계(理化世界)라는 뜻이었다고 씀드렸는데

이 뜻을 내세운 배경에는 하느님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두 뜻은 따로따로 볼 것이 아니라  하느님 신앙 안에서 함께 연결해서 보아야 정확합니다.

즉, ‘하느님의 뜻과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면서 인간만이 아니라 천지자연에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널리 이로움을 주는 참된 사람이 되도록 하라’는 뜻으로 풀어야 합니다. 

 

우리 겨레가 이러한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가운데 하느님께 복을 청하는 기복(祈福) 행위들이

민속신앙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계시가 없다 보니 민속신앙이 홍익인간과 이화세계를 위한

축복의 전달체계가 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신적 기운을 내려 받은 개인들, 즉 샤먼이나 무당들은 존재했지만 그들은 깨달음을 얻고자

구도하던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복을 비는 사람들의 지향을 하느님께로 향하게 해주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사람들이 하느님께 복을 청하기는 했지만 그 복은 건국의 이념이 지향하는 바처럼 이타적이고

공동체적이라기보다는 본인에게 이득이 되는 재물의 획득, 무병장수, 자손의 번창 같은 일체의 개인적 욕심을

주로 겨냥하게 되었으며 이는 모두 현세적 차원에 머문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우리 겨레가 공동체적 차원과 내세의 영원한 생명 차원의 복을 기원하게 된 때는

이 땅에 천주교가 들어오고 나서부터입니다. 

 

천주교는 세상에 오신 하느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였고, 그리스도를 믿는 참 신앙을 전했는데,

그 신앙이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터무니없는 핑계로 성리학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조선 조정과

유림으로부터 배척을 받고 박해를 당해야 했습니다.

지금은 박해가 종식되고 신앙과 선교의 자유가 허용되었지만, 한 번 자리잡은 기복신앙의 분위기는

좀처럼 공동체적이고 영원한 생명 차원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일반 시민들은 물론 지식인들에게까지, 심지어는 교회에 들어와 신앙생활을 이미 하고 있는

신자들에게도 기복신앙이 워낙 넓고 깊이 퍼져 있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기복신앙을 졸업하도록 촉구하면서 참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주고

또 그 신앙을 십자가와 부활로 증거해서 체험하게 하고 깨닫게 해 주어야 하는 계몽기적 상황에 있습니다. 

 

  “청하라, 찾으라 그리고 문을 두드려라!” 하신 예수님의 요청은, “청하는 대로 받고, 찾는 대로 얻으며,

문을 두드리는 대로 열리리라.”는 약속 때문에 기복신앙의 관점에서는 만사형통의 주문처럼 보일 것이

거의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 끝에 붙어 있는 약속의 실체는 바로 성령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현세적이고 개인적인 복이 아니며 더군다나 물질적인 복이 아닌 것입니다.

리고 이 약속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희생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성숙한 신앙을 위하여 기복적인 민속신앙에서도 취해야 할 자세는 있으니, 그것은 정성입니다.

또한 깨달음을 향한 불가의 구도자세에서도 우리는 배울 것이 많습니다.

다만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려는 해탈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로까지 나아가는 구원이

목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민속신앙과 불가의 수행자세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정성과 구도정신에 있어서 공동체적이고도

내세에로 열려진 보편성을 더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 신앙은 지금 여기서부터 그 영원한 생명을 진리로서 추구해야 합니다. 

 

  이 모든 조건을 보증해 주는 것이 성체성사와 거룩한 변화입니다.

천지신명이 아니라 예수님께로 선명하게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구도의 차원이 현세와 내세를

모두 아우르는 보편성을 지녀야 하되 구체적으로 우리 이웃이 지금 여기서 울부짖는 필요와

요청에 응답할 수 있는 깨어있는 마음으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찰라처럼 보여지는 그 필요와 요청을 마치 영원의 부르심인 것처럼 알아들을 수 있는 귀야말로

거룩하게 변화된 구도자의 모습입니다.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민속문화에 담긴 미풍양속을 존중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복적 요소에

매몰되어서도 곤란합니다.

또한 이해관계를 두고 늘 갈라지게 마련인 우리 사회의 갈등 현실에 휩쓸려 들어가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공허한 관념에로 빠져들어도 곤란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인생과 가정의 현실에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많은 신앙인들이 기복신앙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성체성사에서 해결책을 얻거나 해결할 기운을 얻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필요와 문제들은 우리가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고 주어진 십자가를 외면하지 않고

성실하게 짊어질 때, 부활의 은총으로 봄볕에 눈 녹듯이 덤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허락하시는 진리와 정의와 사랑을 청하고 찾으며 문을 두드리십시오.

청하는 대로 받고, 찾는 대로 얻으며, 문을 두드리는 대로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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