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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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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천국의 시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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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시민권

 

필리 3,17-4,1; 루카 16,1-8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2020.11.6.; 이기우 신부

 

고대 로마 제국에서 시민권은 자유민이든 노예든 비시민에 대한 특권이었습니다. 

로마 시민은 납세와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면 공직에도 나아갈 수 있고, 국가의 법적 보호를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유다인으로서 그의 부모가 로마의 귀족 자격을 얻었기에 그도 로마 시민권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로부터 고발을 당했을 때, 로마 시민권자의 권리로서 로마 황제가 주관하는 재판을 요구할 수 있었고 

그래서 고발당한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이송될 수 있었으며 그 결과로 복음이 로마로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체제를 모방한 현대 미국에도 시민권 제도가 이와 유사해서, 

오늘날에도 미국의 시민권자가 되는 일은 전 세계에서 미국을 동경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고대 로마제국에서나 현대 미국에서 시민권자가 되는 가장 큰 조건은 국가에 대한 충성을 서약하고 

그 증거로서 납세와 국방과 공직 봉사 등의 기본 의무를 이행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세금을 납부하지 않거나 국방의 의무 이행을 거절하거나 공직을 맡아서 사리사욕으로 채우는 기회로 삼는 행위는 

스스로 국가와 시민 사회에 대한 충성심이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어서 시민권이 박탈되어야 하는 사유에 해당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필리피 교우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당부를 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절절합니다. 

“형제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다른 이들도 눈여겨 보십시오.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자주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 

 

다른 공동체의 교우들에게는 차마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털어놓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함부로 자기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자칫하면 잘난 척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 교만하다는 핀잔을 받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인 이야기이건만, 

사도 바오로가 불쑥 하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서로 깊이 신뢰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시의 세태가 신앙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반신앙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삼고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는 어리석은 자들은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의 당부는 그 다음 대목에서 더 고조됩니다. 그 초점이 천국 시민론입니다. 

하늘의 시민이므로 시민권자답게 처신하라는 당부는 로마 시민권자로서, 

아직 그 당시까지는 그 권리를 꺼내들지 않고 있던 그가, 평소에 인식하고 있던 시민의 의무와 권리를 짐작하게 해 줍니다. 

즉, 천국의 시민으로 인정받고 있던 필리피 교우들은 천국에 대한 충성을 서약한 이들로서 

그로 말미암은 기본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이었던 겁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대한 충성과 의무 이행으로 하느님께 충실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신 바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복음 내용입니다. 

바로, 약은 집사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그 나라의 현실을 알기 쉽게 설명하시려고 청중에게 익숙한 

여러 가지 사회적 소재를 동원하여 비유로 가르치신 바 있었지만, 때로는 불의하고 부당한 사회 현실을 소재로 하되 

역설적인 반어법을 구사하여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하느님께로 향하도록 역전시키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의하고 부당한 사회 현실을 직접 고발하는 일회적 처방을 내리시는 대신에, 

이를 에둘러 비판하는 의미에 더하여 하느님과의 관계에 적용하는 근본적 처방을 내리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는 ‘불의한’ 행실을 저지른 집사가 하느님 앞에서는 ‘약은’ 처신을 감행한 집사로 바뀝니다. 

시민권자로서의 충성 서약과 의무 이행을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역설적인 반어법으로써 근본적인 처방을 내리신 이유는 그동안 당신의 복음을 듣고 기적까지 목격하면서도

 뜨뜻미지근한 반응만 보이던 군중에 대해서 답답하셨던 심경을 드러내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고 푸념하듯 말씀하신 것만 보아도 

어렵지 않게 그분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자기네 뱃속을 하느님으로 알거나 수치스러운 줄도 모르고 

거리낌없이 죄를 도모할 때에는 더 영리할 뿐만 아니라 창의적이기까지 하지요. 

오늘날 요청되는 복음적 교회 쇄신에 있어서도 그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저마다 위로부터 기운과 도움이 주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렇게 편하게 천국의 시민권이 얻어질 것 같지는 않은데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누구나 단 한 번뿐입니다. 그리고 그 인생의 현재는 오늘 하루이고, 

이 하루라는 시간은 공간으로는 우리가 만들고 가꾸고 발전시킬 수 있는 천국의 범주이기도 합니다. 

이 시공을 우리가 복음적으로 바꾸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우리는 천국의 시민으로서 행세할 수 있습니다. 

탈렌트의 비유에서 자기 재능을 썩히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이에게 

예수님께서는 그저 ‘게으른 종’이라고만 부르신 것이 아니고 ‘이 악하고 불충한 종’이라고까지 질책하신 까닭을 

잊지 마시고, 영리한 하늘 나라의 집사를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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